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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케이 Jul 16. 2024

유한함의 특별함

언제 끝날 지 모르기 때문에 더 최선을 다하고 싶어지는 마음

스물네 살.

아직 어려도 한참 어린 축에 속하는 나이라고 생각하는데도, 갈수록 주변에 좋은 말과 마음을 아끼는 사람들이 많아짐을 느낀다. "좋아해" "미안해" "고마워" 같은 말이, 마음이, 떠오르지 않는 게 아니라 떠올라도 여러 가지 이유로 망설이다 속으로 삼키는 모양이다.

그중 가장 큰 이유 중 한 가지는 전에 진심으로 좋은 말과 마음을 쏟았던 상대와 자의로든 타의로든 멀어진 경험일 것이다. 꼭 사람이 아니더라도 한 때는 자신의 인생에 큰 동요를 일으켰던 무언가를 그 반의 반의 반만큼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게 되거나, 아예 잃어버리는 경험을 하고 나면 소위 말하는 '현타'가 오기 마련이다. '아무리 애써도 멀어져 버릴 순간이고, 물건이고, 사람이라면 애초에 왜 정성 들여 아껴야 할까?' 하고.

비슷한 맥락에서 아래 만화 속 장면이 인기를 얻어 인터넷에 떠돌아다니기도 했다.

"내가 사랑한 것들은 언젠간 날 울게 만든다" - 신지오 "베리베리 다이스키"

나라고 해서 그 현타를 겪어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첫사랑으로 6년을 넘게 만나 결혼할 줄 알았던 남자친구에게 이별통보를 받고 완전히 멘탈이 붕괴된 상태에서 스스로에게 물었던 기억이 난다. '내가 또 사랑을 할 수 있을까?'

누군가와 처음부터 다시 서로의 취향, 성격 같은 것에 대해 묻고, 알아가고, 사랑하고, 그 사랑이 결실을 맺어 서로에게 새로운 가족이 되기까지 노력할 자신이 들지 않았다. 제대로 노력해보고 싶은 상대를 만난다 해도 그 상대마저 어떠한 이유로 나를 떠난다면 정말 넉다운이 될 것 같아 무서웠다.


그렇지만 기억은 신의 선물이고, 망각은 신의 축복이라고 시간이 흐르면서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그 친구의 마지막 모습이 아픔을 주었다고 그 이전에 나에게 행복이 된 모든 다른 순간들을 부정하거나, 애써 떠올리지 않으려 할 필요는 없는 거였다. 오히려 선물 같은 기억들은 그저 포장지를 풀어헤친 상태로 내버려 두면, 가끔 들여다보고 웃을 수 있는 힘이 되었다. 

'그래, 우리가 이만큼이나 서로를 사랑하던 때가 있었지. 참 예뻤다.'

다만 그러한 선물을 같이 매만지거나 새롭게 더 주고받을 상대가 없어졌기 때문에, 잘해봐야 보관 상태에 머무른 기억에는 먼지가 쌓였다. 어느 날은 어려서 운동을 좋아했던 그 친구의 다리 이곳저곳에 있던 흉이나, 보조개 같은 것이 희미하게밖에 기억나지 않는 것을 깨닫고 기분이 묘했다. 그렇지만 이내 그런 것조차 평생 조금도 잊히지 않는다면 정말 괴로울 것이라고, 잘된 일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더랬다.


그렇게 차츰차츰 낫는 과정에서 사랑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고 내린 결론은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예상치못한 한순간에 끝나버릴 수 있는거라면, 언제 끝나도 내 삶을 무너뜨릴 만큼의 아쉬움이 남지 않게 최선의 최선을 다해버리자는 것이었다. 그냥 사랑 자체를 포기하는 옵션을 고려하기에 (솔직히 어느 누구에게도 쉽게 가능할 거 같지 않지만) 나는 늘 사랑을 너무 사랑하는 사람이었으니. 어차피 또 무엇을, 누군가를 사랑해버리고 말 거면 아주 뽕을 뽑아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사랑의 대상은 사람 뿐만이 아니라 사물, 장소, 나아가 '지금'이 되어서, 

나는 동네 마트를 돌아 걷는 10분짜리 짧은 산책길도, 아파트 1층에서 근무하시는 컨시어지 직원분도, 매 해 찾아오는 여름의 밤공기도 있는 힘껏 좋아하는 중이다. 매일 보고 있지만 그 매일이 언제 달라질 지 모르는 게 인생이어서, 게으르게 미루지 않고 좋아하는 중이다.

그러면 신기하게, 힘이 바닥나는 게 아니라 자꾸만 생겨난다.

오늘 사랑한 것은 빨갛게 잘 익은 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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