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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커니 Aug 31. 2022

콘텐츠 제작으로 일희일비하는 하루

잘하다가 못하다가 좌절하다가 기대하다가


호기롭게 시작한 전업주부의 알바는 곧 벽에 부딪혔다. 콘텐츠를 만드는 일 즉, 블로그 포스팅이나 인스타그램 카드 뉴스를 만드는 일이 맨땅에 헤딩하는 일이라는 현실을 직시하게 된것이다. 같은 것도 매번 새롭고 다른 것으로 만들어 내야 하고, 기대에 부응해야 하고, 회사에 해를 끼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 완성된 모든 결과물에 대한 그 어떤 피드백도 공유되는 분위기에서 부담감은 커지고 있었다.

설령 만들었다 해도 실상은 대표님의 의견이 가장 강하지만, 대외적으로 회사의 이미지와 의도에 맞지 않으면 그 콘텐츠는 즉각 사장된다. 지금 내 폰에는 블로그 글이나 인스타그램 이미지들이 잔뜩 사장되어있다. 내 폰은 콘텐츠의 무덤인가?


어느 날 카드 뉴스를 제작하면서 아이디어나 센스가 부족함을 무척이나 많이 느꼈다. 10대와 20대 공부하고 일을 하며 앞에 꽉 막힌 벽이 있는 거 같았던 그 감정과 비슷했다. 어려운 문제는 미루었지만 결국은 못풀게 되었고, 힘들게 들어간 대기업에 3개월 다니고 더 나은 직장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으로 그만두었다. 당시에는 부족함을 느끼면 버티고 노력하기보다는 회피했었고, 그게 부족함을 메꾸는 과정이라 생각했다. 그런 행동은 단순 회피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40대가 되어서야 깨달았다. 결과적으로 그 어떤 노력도 하지 않은 사람처럼 느껴져 매우 후회스러웠었다.


나의 부족함을 무엇으로 채워야 할지에 대한 고민으로 꽉 차있던 어느 날 어김없이 해결책으로 난 사직을 생각했다. '확 관둬 버릴까? 나보다 잘 하는 사람이 있는데 왜 날 고용한거지?' 놀랍게도 예전에 내가 했던 그 방식의 생각을 고수하고 있었다. 노력하지 않고 단순 회피하는 사람이라는 깨달음을 얻은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난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더이상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하다 안되면 다시 집으로 돌아가면 그만이지만 이번 일이 내 인생에서 노력을 요하는 마지막 일이 될거 같은 예감이 들었다. 40대 이기에 부담없이 해볼수 있고, 40대 이기에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냥 해보는 데까지는 열심히 해보자고 맘을 먹었다.


처음 입사시 블로그 콘텐츠만 하는 걸로 알고 들어왔다. '인스타그램도 하실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라는 대표님의 말에 덥썩 해보겠다고 했으니 업무의 영역이 입사하고 일주일만에 확대되었다. 디자인 쪽에는 문외한인 내가 이미지위주의 채널인 인스타그램을 담당하게 되면서 부족함을 느낀건 당연했다. 당황하는 나를 보며 나이 어린 선배 직원이 '스타트업은 두루 두루 할줄 아는 사람을 원한다'고 귀뜸해줬다. 초기 스타트업은 고비용을 투입할 수 없으니 현재의 자원을 이용해서 최대의 성과를 내야 한다. 그렇기에 현재 자원의 퀄러티가 조금은 떨어지더라도 어느 정도 감수하는 면이 있기는 하다. 내가 스타트업에 취업할 수 있는 이유였다.


본격적으로 이미지에 대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감각이 부족한데다가 회사의 컬러와 폰트는 정해져있었다. 거기에 트렌디한 감성을 넣고 싶은 욕심이 생기니 부족함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글쓰기까지는 어떻게든 되는데 원하는 이미지를 만드는 일은 쉽지 않았다. 요즘 미리캔버스나 캔바를 이용해서 초보자도 그럴듯한 이미지를 만들 수 있는 건 사실이다. 실제로 그런 이미지를 만든적도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생산성 툴이 익숙해지고 그럴듯한 이미지들이 쌓이면 쌓일 수록 점점 어설프게 느껴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분명 툴을 다루는 나의 스킬은 늘었는데 반대로 이미지의 퀄러티는 낮아지고 있었다. 이미지를 보는 눈이 달라진 걸까? 내 스타일이 바뀐 걸까?


첫 번째로 만든 건 북토크 카드 뉴스이다.

작가들의 인터뷰 형식으로 만들었더니 반응이 좋았었다. 대표님께 바로 승인을 받았다. 어떨결에 만들었다고나 할까? 암튼간에 처음 만든 거 치고는 대표님의 승인이 바로 나서 모두 신기해 하는 눈치였다. 난 속으로 이래서 날 뽑았구나 자만했고 내가 이미지를 만드는 일에 재능이 있나보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두 번째 만든 캠페인 카드뉴스 였다.

폰에 카톡 형식으로 대화를 주고 받는 이미지를 만들려고 했었다. 회사 컬러를 다양하게 섞어가며 만들어보았다. 수십장을 만들며 컬러가 좀 더 밝았으면, 좀 더 산뜻했으면, 글씨체가 좀 더 이뻤으면 이라고 핑계를 대며  드는 이미지를 만들 수 없다는 당위성을 부여했다.


반면에 선배 직원은 나를 안타까워 하며 직접 해보겠다고 하더니 순식간에 괜찮은 이미지를 만들었다. 순간 좌절했다. 난 안될거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첫 번째 카드뉴스를 만들고 자만했던 내가 이번에는 인스타그램을 운영할 수 있을지에 대해 의심하기 시작했다. 10대나 20대가 아닌 40대에 일희일비하다니 부끄러웠다. 40대는 적어도 자잘한 감정의 동요는 자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가 40대이기에 또 그럴수 있다고 생각했다. 다음날 대표님의 승인으로 내용 즉 메세지는 나의 아이디어로, 이미지 프레임은 선배가 만든 걸로 하기로 했다. 내용이 채택 되니 어제의 좌절감은 또 어디론가 사라졌다. 이런 내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사장된 이미지들


세 번째는 실사사진 업로드였다. 이때부터 조금씩 요령이 생기기 시작했다. 꼭 회사 컬러와 폰트를 고집하지 않아도 되는 분위기를 파악했다. 크게 벗어나지만 않게 하자고 생각했다. 색 조합을 알려주는 사이트에 들어가 회사 컬러와 최대한 비슷한 컬러와 가장 어울리는 컬러를 골랐다. 그 컬러를 이용해서 이래 저래 조합했고 이미지를 만들었다. 사진을 이쁘게 찍어보았다. 그동안 북리뷰 인스타그램과 블로그를 운영하며 책 사진을 많이 찍었었다. 책과 비슷한 물건인 A4 검사결과지를 책이라 생각하고 이렇게 저렇게 찍으며 실력 발휘를 해보겠다고 맘먹었다. 하지만 이건 책이 아니었다. 책의 느낌이 살지 않았다. 배경을 하얗게 하면 종이 자체가 붕 떠있는 것처럼 보였고 회사 컬러를 쓰자니 너무 둔탁해서 싫었다. 미리 준비해둔 컬러를 이용해 이미지를 만들었고 눈치를 챘는지 못챘는지 안전하게 인스타그램에 올라갔다.





잘하기도 하고 못하기도 하면서 스타트업에서 최고령 신입으로 살아가고 있다. 잘해서 좋아하는 티를 내거나 못해서 좌절하면 나잇값 못한다는 얘기를 들을까 감정 조절에 특히 신경쓴다. 요즘은 컴퓨터만 켜면 글을 쓰거나 컬러 조합을 보거나 핀터레스트에서 인스타그램 피드를 찾아본다. 글쓰기를 위해 책을 읽고 트렌디한 감각을 키우기 위해 요즘 유행하는 책들을 살펴본다. 40대가 되니 더이상 '잘하는 사람이 되자'는 목표는 세우지 않는다. '어제 몰랐던거 오늘 배우자' 라는 목표를 세우고 발전하게 될거라 믿으며 일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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