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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달 Jun 18. 2024

"연년세세"를 읽고

기억하는 일

이순일은 아버지가 한국전쟁 때 돌아가셨다. 어머니도 잃었다. 백부와 백모는 이순일을 버리고 도망을 갔다. 철원에 사는 할아버지가 이순일을 키웠다. 어느 날 고모가 와서 공부를 시키겠다며 김포로 데려갔다. 그러나 열 식구의 뒷바라지를 하는 식모 역할이었다. 한증언과 결혼을 하여 첫째 한영진, 둘째 한세진, 셋째 한민수를 낳았다. 한영진은 백화점에서 이불을 판다. 하고 싶은 일을 다 하며 살 수 없다는 엄마의 말을 잘 듣는 장녀이다. 한영진은 김원상과 결혼을 하여 시가의 집을 물려받아 4층은 부모님을 살라고 하고 5층에는 자신들이 산다. 엄마는 딸 가족의 살림을 도맡아 한다. 새벽에 일어나 밤늦은 시간까지 일을 해도 끝이 없다. 이순일은 일흔둘이다. 피곤하다는 말을 둘째에게만 한다. 무릎이 아파서 더 이상 할아버지 산소에 갈 수 없어 파묘를 한 후 화장을 해 뿌렸다.  아들 한만수는 국내에서 취업이 되지 않아 뉴질랜드에서 공부를 한다. 이순일은 한민수에게 하고 싶은 일을 다 하며 살라고 말한다. 그는 아마 한국에서 살지 않을 것이다. 한세진은 결혼을 하지 않았다. 시나리오 작가이다. 미국 군인과 결혼을 해서 미국에 살고 있는 이순일의 이모 윤부경이 연락을 했다. 아들 노먼과 한국에 방문했다. 노먼은 엄마가 양공주였다고 말하는 한국 교포들을 증오하며 한국말을 쓰지 않는다. 한세진은 노먼이 한국말을 안다고 생각한다. 노몬은 결혼하여 제이미를 낳았다. 한세진이 작가로 초청되어 미국에 가게 되었을 때 제이미를 만난다.


" 그게 무엇이든, 자기 손으로 건넨 것이 그 아이들의 손으로 넘어가 쪼개졌고 그 파편을 쥐고 있느라 아이들이 피를 흘리는 거라고 이순일은 생각했다."


 나는 전쟁고아라는 말을 들었을 때 이해가 되지 않았다. 과거에는 식구들이 많은 대가족 단위로 살았기에 친척들이 있는데 왜 아이들은 고아가 되었을까, 어른들은 모두 죽은 것일까, 그래서 아이들을 해외로 입양을 보내야 했는가, 내가 알고 있는 우리나라 가족 중심의 문화, 따뜻한 정 문화와 동떨어져 있었다.

 고아가 된 사연은 다양하다. 영화 <국제시장>처럼 피난 가는 중에 손을 놓칠 수도 있다. 동화 <몽실이>처럼 부모, 고모네가 모두 죽을 수도 있다. 소설 <연년세세>에서 이순일은 고아가 되지는 않았지만 부모가 죽자 백부, 백모에게 버림받고 고모에게 학대받는 경우도 있다. 이순일의 이모 윤부경처럼 영어를 모른 채 미국 군인을 따라가는 경우도 있다. 전쟁과 가난은 우리의 고귀한 정신을 송두리째 빼앗는다.

 그해는 그랬다. 그러나 제목처럼 한해 한 해는 세월이 되었다. 그들의 역사는 조금 나아질 뿐 다시 대물림 되기도 한다. 장녀의 역할을 강요하며 그녀의 인생을 희생시키고 미국에 간 이모처럼 한만수도 뉴질랜드로 간다. 그러나 여전히 차별은 있다. 외국은 우리에게 관심을 가진다. 한강의 기적과 촛불 집회에 대하여. 그리고 왜 아이들을 여전히 입양 보내는지 질문도 한다.

 할아버지는 흙이 되었다. 뼈를 화장하여 뿌려 더 이상 할아버지의 존재는 사라졌다. 이순일이 자식들에게 어떤 상처의 파편도 남기도 싶지 않은 마음이 아닐까. 그러나 우리에게 남은 숙제가 많아 보인다. 그들의 상처를 기억하는 것이다. 스스로를 모욕하지 않기 위해서는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한다.

 황정은의 문체는 담백하다. 김애란의 문체처럼 시적이지 않다. 그래도 마음 깊이 묵직한 아픔을 남긴다. "글씨일 뿐인데, 심성 같다고 생각했다" 글귀처럼 그녀의 문장은 감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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