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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영 Oct 21. 2022

가끔은 엉뚱한 길로 들어서기

베트남 시골 마을의 미용사

 내 몸에서 가장 자신있는 부위를 말하라면 단연코 머리카락을 꼽겠다. 내 머릿결은 학창시절 누구나 인정할 정도로 비단결 같았다. 찰랑찰랑 긴 생머리를 길게 늘어뜨리면 샴푸 광고에서나 볼 수 있는 윤기가 좌르르 흘렀다. 물론 지금은 잦은 펌, 염색, 탈색으로 그런 머릿결을 기대하기 힘들지만 아직까지 내 마음속 1위는 머리카락이다. 길고 곧게 뻗은 흑단의 머리카락에 잘 어울리는 흰 피부였으면 더 좋았겠지만, 내 피부는 노랗다. 게다가 조금만 햇빛을 봐도 잘 타서 여름이면 항상 피부가 까무잡잡하곤 하다. 나의 까무잡잡한 피부와 흑단 머리카락의 콤비네이션은 베트남에서 제 역량을 발휘했다. 

 내가 아시아인이란 걸 몸소 깨닫고 싶으면 유럽이나 중동, 또는 남미에 가면 된다. 내 피부가 좀 하얀가 싶은 느낌을 받고 싶으면 동남아에 가면 된다. 외모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날 것이어서, 어느 나라 혹은 문화에 가느냐에 따라 사기꾼에게 사기를 당할 수도 있고, 예쁘고 멋지다는 찬양을 받을 수도 있다. 내가 아무 것도 하지 않았는데 그저 생김새만 가지고도 이런 대우를 받을 수 있다는 걸 알면 생각보다 큰 현실 타격이 온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베트남에서 현지인 취급을 받았다. 

 민의 모터바이크 뒤에 올라탔을 때였다. 민은 내 베트남 친구다. 우리나라 정부 산하 기관에서 개발도상국 정부 관계자나 기업인들을 초대해 e-Business에 대한 트레이닝을 해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선배가 진행하는 이 프로그램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난 몽골, 우크라이나, 나이지리아, 카자흐스탄 등지의 여러 나라 참가자들과 친해졌다. 민은 참가자 중 한 명으로 하노이에서 온 교수였다. 교수님이라고 하기엔 너무 젊고 예쁜 민은 내가 하노이에 온 다음 날 자신의 모터바이크를 끌고 숙소 앞으로 날 데리러 왔다. 

 처음 모터바이크 뒤에 올라탔을 때의 기분을 잊지 못한다. 똑같은 구시가지를 걸을 때보다 높은 시선에서 그리고 빠른 속도로 바라보니 마치 4D 영화를 보는 느낌이었다. 논(야자수 잎으로 만든 원뿔 형의 베트남 전통 모자)을 쓰고 깐항(나무 목대 양쪽에 바구니를 단 베트남 전통 바구니)을 인 거리의 행상을 지나치고, 아침 시간의 분주한 쌀국수 가게들과 열대 과일을 파는 사람들 사이를 민은 노련한 운전솜씨로 이리저리 피해 다녔다. 

 베트남 사람들에게 감탄한 것은 모터바이크를 마치 그들의 일부처럼 여기는 태도 때문이었다. 장인 솜씨 같은 운전실력은 기본이거니와, 시장 사이사이를 모터바이크가 왔다갔다 해도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다. 마치 서로 걷고 있는 사람끼리 마주치듯 사람과 모터바이크가 스쳐갔고 서로를 노련하게 피해갔다. 퇴근 시간 무렵의 대로는 더욱 장관이었다. 수백대의 모터바이크가 신호에 따라 물결치듯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는 모습은 절로 입이 벌어졌다. 난 결코 베트남에서 모터바이크 운전을 하지 못할 것이지만, 민의 뒤에서 하노이의 이런 정경을 보는 건 아주 좋아했다. 

 여느 때처럼 민의 뒤에 앉아 있다 빨간 신호로 멈춰 서 있을 때였다. 우리 옆에 자연스레 멈춘 모터바이크에 탄 사람이 나에게 무슨 말을 걸었다. 알아듣지 못하는 베트남어에 어리둥절해 있을 때 민이 웃으며 대신 답을 해줬다. 신호가 바뀌어 출발했을 때 물었다. 

 “저 사람 뭐라고 한 거야?” 

 민은 아주 웃기다는 투로 대답했다. 

 “너한테 길 물어봤어.”

 나는 빵 터져서 신나게 웃어댔다. 지갑 걱정은 이제 하지 않아도 되겠단 생각을 했다. 나를 하노이 지리를 너무 잘 알 것 같은 토박이로 본다면야, 뭐가 두려운가! 

 민과 헤어져 호치민으로 넘어갈 땐 베트남 항공을 탔다. 온통 까만 머리카락을 지닌 사람들 곁에서 내 존재는 파묻혔다. 비행기가 이륙하고, 스튜어디스가 사람들이 잘 있는지 한 바퀴 돌며 나에게 말을 걸었다. 역시 현지어였다. 내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하고 있자 스튜어디스가 깜빡 놀란 표정을 짓더니 웃으며 영어로 말했다. 

 “미안해요! 음료 뭐 드시겠어요?”

 주변에 앉아 있던 베트남 사람들이 함께 깔깔깔 웃었다. 

  머리카락이 제 능력을 제대로 발휘한 것은 메콩강 투어 마지막날이었다. 캄보디아로 넘어가기 전날 밤, 나는 투어 일행 중 한국 사람 두 명을 만났다. 여행을 많이 한 티가 나는 아저씨 둘이었는데, 희한하게 여행자의 느낌보단 고독하고 재미없는 순례자의 느낌이 더 났다. 어쩐지 나중에 알고보니 그들은 독실한 크리스찬이었다. 그 중 한 명이 나에게 선교하느라 새벽까지 말이 이어져서 끊느라 아주 애먹었다. 겨우 빠져나와 숙소로 가니, 영업 시간 끝났다고 셔터까지 내려져 있었다. 호텔 앞에서 문 열어 달라고 두드릴 땐 진작에 말 끊을 걸 후회 했지만, 아저씨들은 의외로 새로운 문화를 경험하는데 거침이 없는 사람들이어서 하느님 말씀을 전달받기 전까진 함께 아주 즐거운 저녁 시간을 보냈다. 그들은 나에게 재미있는 제안을 했다. 

 “머리 감으러 가자고요?”

 “네, 베트남 미용실에서 머리 감으면 간단한 두피, 얼굴 마사지를 함께 해줘요. 가격이 무척 저렴해요. 가볼래요?”

 우리는 이미 대도시라면 어림없을 가격에 두툼한 고기가 듬뿍 들어간 거리의 쌀국수로 배를 채웠고, 내 종아리 반만한 얇기의 다리로 시클로를 끄는 소년과 동네 한바퀴까지 돌고난 후 였다. 느닷없이 머리를 감으러 가자는 제안에 움찔했으나, 이런 경험을 또 어디가서 해보겠나 싶어 그들을 따라나섰다. 

 아저씨들은 동네에 하나쯤 있는 미용실에 거침없이 문을 열고 들어갔다. 10평 정도 되는 작은 미용실이었지만 나름 깔끔한 구석이 있었다. 양쪽 벽면에 틈새없이 거울이 붙어 있어 공간이 넓어 보였고, 간격을 맞춰 사무실에서 쓸법한 바퀴 달린 의자들이 줄 지어 놓여 있었다. 그러나 거울에 달려 있는 조잡한 조화나 직원들의 옷차림은 촌스럽기 그지 없어서 새삼 침을 꿀꺽 삼키게 되었다. 젊은 여자들이 제 발로 동네 미용실을 가는 일이 어디 있던가. 내가 패션에 대단한 안목이 있다거나 미에 높은 기준이 있는 건 아니지만, 아줌마 파마를 하러 내 발로 동네 미용실을 찾아갈 용기가 있진 않다. 모름지기 미용실은 나보다 한 발짝 미에 대해 앞서가야 하는 곳이고, 그곳의 직원들은 누가 봐도 따라하고 싶은 헤어스타일을 하고 있어야 한다. 인식하고 있진 않았지만 내가 그동안 갔던 미용실은 다 그런 곳이었고 그래서 안심이 되었다. 전문가의 손을 거쳐 조금 더 세련되어져 나갈 것이란 믿음. 그 믿음을 미용실에서 얻지 못할 때 예기치 못한 불안감이 든다는 걸, 베트남의 어느 이름 모를 시골 동네 미용실에 들어서면서 알게 되었다. 

 손님 없던 미용실이 갑자기 분주해졌다. 머리를 감겠다고 이야기하니 2층으로 안내를 받았다. 머리를 감겨주는 침대와 세면대가 나란히 뉘여있었다. 우리는 각자 자리를 잡고 누워, 머리 감는 서비스를 받았다. 짧은 머리의 아저씨 둘에 비해 등까지 내려오는 치렁치렁한 내 머리는 감기는데 오래 걸렸다. 여성 손님에게 직원들은 훨씬 더 꼼꼼하고 세세하게 샴푸를 하고 마사지를 하는 듯했다. 아마도 난 그 시골동네 미용실에 처음 방문한 한국 아가씨 였을 것이다. 작은 미용실의 직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최상의 서비스를 보여주기 위해 고군분투 했다. 나 역시 처음 받아보는 서비스에 몸둘 바 몰라 이상하게 몸이 베베 꼬였다. 한국이라면 미용실에서 머리 감는 것 정도야 익숙한 일 아닌가. 그런데도 이 어색한 공기가 무엇인지 그때까진 알지 못했다. 

 마사지가 끝나고, 젖은 머리를 수건에 돌돌 만 채 1층으로 안내 받았다. 아저씨들은 진작에 다 끝나고 머리까지 말라 있었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그들은 머리를 말려주지도 않은 것 같았는데, 나는 친절히 거울 앞 의자로 안내해주었다. 직원 두 명이 드라이기를 들고 열심히 내 머리를 말리기 시작했다. 거울로 미용실을 둘러보았다. 아저씨들은 지루한 표정으로 내 순서가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손님은 없었고 멀리 떨어진 채 직원들 사이로 왔다갔다 하며 가끔씩 내 진행상황을 살피는, 밝은 염색 머리에 샤기컷을 한 젊은 남자 한 명이 눈에 띄었다. 감이 왔다. 저 사람이 이 미용실의 주인이었다. 

 부리부리한 눈에 시원한 이목구비의 남자는 웃을 때 하얗고 가지런한 치아가 아주 예뻤다. 분명 이 동네에서 인기 많은 잘생긴 오빠일 게 분명했다. 꽃무늬 자수가 섬세하게 그려진 흰 망사(!) 셔츠를 멋드러지게 차려입은 그는 재미없는 옷차림의 한국 아저씨 둘보다 더 패셔니스타였다. 키는 작았지만 나름의 카리스마가 있었다. 그는 먹잇감의 동태를 살피는 사자처럼 조심스럽게 먼 곳에서 나를 지켜봤다. 미용실 직원들이 나를 언제쯤 놔줄지 알 수 없었다. 머리만 말려주면 그것만으로도 고맙다고 일어날 참이었으나, 분위기는 그렇지 않았다. 머리가 거의 다 말라갈 때쯤 그가 조심스레 내 쪽으로 다가와 도구를 쥐었다. 그제야 이 어색한 공기의 이유를 알았다. 머나먼 나라에서 온 이방인에게 솜씨를 보여주고 싶은 건 바로 이 남자였다는 걸. 찰랑찰랑 물결치는 내 머리를 보고도 그냥 지나치면 미용사가 아니라는 듯, 그는 익숙한 솜씨로 내 머리카락을 손에 쥐었다. 

 흥미진진해졌다. 그가 만들어 갈 작품이 어떤 모양이 될 지, 그 때부턴 모두의 눈이 그의 손과 내 머리카락에 집중되었다. 나와 시골의 젊은 미용사는 링 위에 대치된 권투 선수들이었다. 나는 ‘어디 솜씨 한 번 볼까’하는 눈빛을 보냈고, 그는 내 쪽은 쳐다보지도 않은 채 자신감 가득한 눈초리로 머리카락만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매직기’를 든 그의 오른손이 올라갔다. 왼손은 내 머리카락을 적절한 힘으로 잡고 있었다. 도구가 내 머리카락을 잡고 빠져나가는 순간은 찰나였다. 잡고 빠져나가고, 또 잡고 빠져나가고. 중간중간 스타일을 점검하는 것 또한 잊지 않았다. 예상은 했지만 손놀림이 예사롭지 않았다. 매우 집중한 모습으로 모두에게 ‘내 실력 보고있지?’ 말하는 듯했다. 어딜가나 직업 정신이 투철한 사람은 존경할 수밖에 없다. 난 ‘머리 감는 서비스’엔 전혀 포함되어 있지 않은 ‘원장님 서비스’를 받고 있는 중이었다. 그의 손을 스쳐간 머리카락들이 정돈되는 게 보이자 감탄이 나왔다. 예술적인 손놀림이었다. 

 최종 스타일이 기대됐다. 그의 머리카락 다루는 실력은 노련했고, 인정할 만했다. 머리를 자연스럽게 정리해주려나? 살짝 웨이브를 넣으려나?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도구를 거친 내 머리는 쫙쫙 곧게 뻗어 나갔다. 처음 모습이 어땠지? 기억 나지 않았다. 그는 있는 대로 내 머리를 펴고 있었다. 이렇게 볼륨감 없는 헤어스타일이라니. 서서히 불안해져갔다. 슬픈 예감은 언제나 틀리지 않다. 마지막 한 가닥의 앞머리가 납작하게 눌려 얼굴 앞에 조심스레 놓였다. 그는 끝까지 프로페셔널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거울 앞엔 생에 가장 곧게 뻗은 생머리의 내가 앉아 있었다. 이젠 하노이 뿐 아니라 이 시골동네에서도 길을 물어보게 생긴 것이다. 미용사는 자기 할 일을 다 했다는 듯 쿨하게 자리를 뜨려고 했다. 이대로 그를 보낼 수 없었다. 나는 원장님을 붙잡았다. 흑단의 머리카락이 반질반질 윤이 나는 나와 흰 망사 셔츠를 멋들어지게 차려 입은 남자가 나란히 섰다. 우리는 미용실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남자는 건치를 드러내며 활짝 웃었다.

 난 곧게 뻗은 머리로 치장한 채 미용실을 나섰다. 야밤에 난데없이 갈 데도 없고, 아저씨들과 남은 수다나 떨어야지 싶었는데 느닷없이 전도를 당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생머리가 좋으셨나보다. 나도 어울리건 아니건 나의 그런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그건 겉으로 보이는 스타일보다도, 낯선 동네에서 우연히 만난 투철한 직업정신을 가진 미용사의 혼이 담겨 있기 때문일 것이다. 

 베트남 속담에 ‘자주 먹는 밥은 지겹고, 가끔 먹는 퍼(베트남 쌀국수)는 맛있다’는 말이 있다. 매일 같은 스타일의 머리를 하고 자주 가는 식당에 가 밥을 먹고 즐겨보는 유튜브 채널을 보는 삶에 익숙하지 않은가? 때론 ‘이건 좀 엉뚱한 것 같은데?’ 라는 생각이 들면, 그게 무엇이든 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의도치 않은 시도가 예상치 못한 기쁨과 즐거움을 불러일으키기도 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친구의 모터바이크 뒤에 올라타 한 뼘 높은 시선으로 세상을 본다든지, 프로페셔널한 미용사에게 머리 손질을 받는다든지 하는 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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