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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영 Oct 21. 2022

언제가 떠날 때인지 당신은 이미 안다

이스탄불의 눈보라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형기 시인이 시 <낙화>에서 노래하듯, 무성한 녹음이 진 여름과 열매 맺는 가을로 가기 위해 봄 한철 격정적으로 핀 꽃들은 한 순간에 진다. 모든 것엔 때가 있고, 사람에겐 자기 자리를 떠나야 할 순간이 온다. 누구나 살면서 인생의 다음 단계를 마음에 품고 있다. 수험 공부를 할 땐 대학에 간 자신을 상상하게 되고, 대학에 가면 이후의 진로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취업을 하면 어떤가. 일이 적성에 정말 맞는지 고민하면서 나의 다음 진로는 무엇일까 궁금해 한다. 사람은 무언가를 시작하고 진행하고 그만두는 인생의 수레바퀴를 여럿 거치며 성장한다. 삶엔 정답이 없지만 각 단계마다 내가 옳은 선택을 했는지 끊임없이 확인받고 싶은 것이 사람이다. 나에게 머뭄과 떠남에 대해 가르쳐 준 도시가 있다. 히잡을 둘러 쓴 여인들, 보스포러스 해협을 가로지르는 다리 위를 가득 채운 낚시꾼들, 때때마다 모스크에서 들려오는 아잔 소리……. 낭만의 도시, 이스탄불이다.  


 이슬람 문화권에 가보지 않은 사람에게 이스탄불이 얼마나 매력적인 곳인지 말해주고 싶다. 처음 공항에 도착했을 때 가장 눈에 띄는 건 히잡을 쓴 여인들이다. 시내를 돌아다닐 때 가장 귀에 자주 들려오는 건 때마다 도시에 울려퍼지는 아잔(이슬람에서 신도들에게 예배시간을 알리는 소리) 소리다. 유럽과 아시아 대륙을 가로지르는 보스포러스 해협을 가장 많이 에워싸는 건 다리를 가득 채운 낚시꾼들이다. 이방인의 눈으로 봤을 때 보이는 낯선 풍경은 며칠 머물다보면 대개 흐릿해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스탄불은 그곳에 좀 더 깊게 들어갔을 때 오히려 그 풍경들이 진하게 다가온다. 지하철에 붙여진 각종 다양한 스타일의 히잡 광고를 볼 때, 아잔을 제창하다 살짝 목이 갈라지는 소리를 들을 때, 낚시꾼들이 잘 보이는 다리 위 카페에 앉아 터키식 차를 마실 때 이스탄불은 좀 더 친근하고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오래 지낼 수록 그 진가를 알 수 있는 곳이 바로 이스탄불이다. 

 내게 이스탄불은 ‘머뭄’의 도시다. 오고 가며 이스탄불에서 경유를 하느라 좀 더 둘러볼 여유가 있었고, 터키를 반 바퀴 돌고 다시 돌아온 곳도 이스탄불이었다. 여행의 중심지였는데다 예상치 못하게 길게 머물게 되어 나중엔 거의 집처럼 느껴졌다. 이스탄불은 머물면 머물 수록 새로운 면이 많아서 오래 있어도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길거리 벤치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으면 웬 아줌마가 귀엽다는 듯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지나가기도 했고, “Korean is our friend!”라며 한국인 여행객만 골라 다가가는 할아버지를 만나기도 했다. 심심하면 보스포러스 해협에 갔다. 바닷가엔 출렁이는 파도 위에 정착해 생선 굽는 연기를 화려하게 풍기는 배들이 있었다. 고등어 케밥을 파는 배들이다. 빵 안에 화롯불에 알맞게 구운 고등어, 토마토, 양파가 들어있는 고등어 케밥을 한 입 베어물면 입안에서 바다향이 났다. 아무것도 하기 싫은 귀찮은 날엔 과자와 맥주를 사서 숙소에 펼쳐 놓았다. 그러면 지나가는 아무나 자리에 앉았고 처음 보는 사람과 함께 수다 떨며 즐겼다. 그 즐거움의 한가운데엔 같은 숙소에 머물고 있던 친구들이 있었다. 

 마끼꼬는 홀로 유럽을, 텐은 일 년 짜리 오픈 항공권을 사놓고 전세계를 여행하고 있었다. 오래 여행을 한 사람들은 보기에도 아주 여유가 있었다. 그들은 시간에 휘둘리지 않았고, 유명한 관광지를 봐야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지도 않았다. 그건 그들이 원래 그런 성향인 것도 있지만 긴 여행을 하며 자연스레 몸에 체득된 본능같은 것이었다. 천천히 음미하듯 도시를 바라봤고, 사람들과 물 흐르듯 어울리다 자연스레 헤어졌으며,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말이 통했다. 우리는 여느 배낭여행자가 그렇듯 사람들이 오고가는 숙소의 거실에서 만나 친해졌고 맘이 잘 맞아 매일 같이 붙어 다녔다. 이스탄불엔 유명한 유적지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모두 깊은 관심이 있지 않았다. 난 무료입장인 블루모스크 한 군데만 돌아보고 그 유명한 아야소피아는 들어가보지도 않은 상태였다. 다만 우리는 매일 뭘 할까 어슬렁 거리다 좋은 아이디어가 생각나면 함께 나가 시내를 돌아다니곤 했다. 

 한 번은 텐이 기가막힌 정보를 알려줬다. 텐은 아주 조용한 성격인데다 지나치게 호들갑거리지 않아 뭘 알고 있어도 들썩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텐이 데려가는 식당들은 하나같이 가격은 매우 저렴한데 맛은 심각할 정도로 맛있었다. 그런 텐의 추천이었다. “마도라고, 유명한 돈두르마 카페가 있어.” 돈두르마는 염소젖으로 만든 아이스크림이다. 독특하게 점성이 있어 식감이 쫀득쫀득하다. 어찌나 쫀득거리는지, 인사동 같은 곳에서 터키인들이 돈두르마로 떨어지지 않는 아이스크림 쇼 하는 걸 볼 수 있다. ’마도’는 돈두르마를 전문적으로 파는 가게인데 이스탄불에 몇 군데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그 날 일정은 아이스크림이 되었다. 

 우리는 트램을 타고 탁심 거리로 갔다. 느릿느릿 트램이 한가운데를 기어다니는 유럽적인 탁심은 이스탄불의 현대를 보여주는 거리였다. 여행자가 가득한 술탄 아흐멧 광장 근처에서만 놀다 세련된 탁심으로 오자 눈이 휘둥그레해졌다. 길거리 아이스크림 상점일 거라 생각했던 ‘마도’ 역시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세련된 카페였다. 나는 누군가 추천해준 녹차 아이스크림을 선택했다. 한입 입에 넣자 쫀득하면서도 진한 녹차 우유 같은 맛이 났다. 무릎을 탁 쳤다. 진지하게 한국에 돌아가서 돈두르마 사업을 해볼까 고민할 정도로 맛있었다. 신나게 아이스크림을 먹고 우리는 천천히 탁심을 구경하다 걸어서 숙소로 돌아왔다.

 다음 날은 한국인 동생 혜영까지 합세해 이스탄불에서 가장 높은 참르자 언덕에 갔다. 아시안 지역에 도착하자 거리에 ‘마도’가 있길래 또 돈두르마를 먹었다. 버스를 기다리며 홍합밥도 사 먹었다. 버스표를 잘못 사는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무사히 언덕에 도착했다. 언덕에서 본 풍경은 기가 막혔다. 이스탄불이 파노라마로 길게 한 눈에 들어왔다. 붉은 지붕의 집들 아래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보스포러스 대교가 아름답게 자리하고 있었다. 우리는 마르마라 해까지 보이는 것 같다는 둥 호들갑을 떨었다. 이스탄불이 전부 보이는 전경을 보며 먹는 식사가 맛이 없을리 없다. 공원 벤치에 자리를 잡고 가져온 간식과 근처에서 파는 괴즐레메를 사 함께 나누어 먹었다. 옆에 있던 터키인들이 우리를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참르자 언덕을 내려올 때 봤던 석양을 잊을 수가 없다. 새빨간 하늘을 배경으로 까만 그림자가 된 이스탄불의 건물들이 2차원으로 보였다. 그건 마치 커다란 그림자 극장 같았다. 간간히 보이는 모스크의 둥근 돔과 뾰족한 첨탑 그림자가 비현실적이었다. 해가 지면서 날이 추워졌다. 겨울옷을 여며도 바다에서 불어오는 찬 바람은 절로 따뜻한 국물을 생각나게 했다. 빵이 진열대 한가득 올려져 있는 가게 앞을 지나가며 누군가 스치듯 말했다. 

 “아, 라면 먹고 싶다.” 

 나도 중얼거리듯 한국어로 말했다. 

 “라면이나 우동이나 먹고 싶다.”

 누군가 해석했고, 마끼꼬는 일본어로 화답했다. 

 “라멘또까 우돈또까 타베따이데스.”

 못지 않게 비슷한 두 문장을 우리는 서로에게 가르쳐주며 언덕을 내려왔다. 라면이나 우동이나 먹고 싶다. 라멘또까 우돈또까 타베따이데스. 내내 함께 먹고 즐겼던 마끼꼬였지만 그 순간만큼 동질감을 느꼈던 적은 없었다. 우리는 찬 바람 불 때 뜨끈한 국물 한 모금이 얼마나 맛깔나는 지 아는 나라 사람들 아닌가! 나에게 첫 일본 문장을 가르쳐 준 마끼꼬. 삼겹살과 한국 관광을 좋아하는 마끼꼬. 기무라 타쿠야와 동갑이라며 자신을 소개했던 마끼꼬. 무엇이든 제안하면 큰 눈에 서글서글한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오케이” 했던 마끼꼬. 돌아오는 수상버스 안에서 우리는 라면 꿈을 꾸며 함께 꾸벅꾸벅 졸았다. 

 같이 먹고 걸으며 수다 떠는 게 좋았다. 그러다 지치면 또 어딘가 들어가 먹으며 수다를 떨었다. 그렇게 계속 먹고 이야기를 했음에도 숙소에 돌아오면 또 과자를 펼쳐 놓고 파티를 벌였다. 이스탄불에서 가장 결정하기 어려웠던 것은 ‘언제 이 도시를 떠날지’ 였다. 친구들과 어울리는 매일이 즐거웠고, 머물면 머물수록 매력적인 도시였지만 언제고 안녕해야 할 곳이었다. 일정상으론 진작 떠났어야 했지만 나는 바로 가는 게 아쉬워 며칠을 더 머물고 출발하는 비행기표를 샀다. 우리는 가끔 서로의 여행 일정을 물었지만 더 길게 이야기하진 않았다. 그러나 각자가 다음 여정을 염두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될 때 새삼 나의 여행도 돌이켜보았다. 우린 떠날 것을 알기에 ‘지금’을 최선을 다해 즐겼다. 그리고 지금을 잘 지내면서도 항상 ‘다음’을 마음에 품고 있었다. 


 나는 “그만둘거야.”를 입에 달고 살았다. 회사 일이 재미없던 건 아니지만 정말 짜증나고 힘이 들 땐 “그만둘거야.”라고 말했다. 그럴 때마다 남편이 내게 한 말이 있다. “언제건 그만둬. 그만둘 때가 되면 자연스레 알게 될거야.” 남편은 이력이 재미있는 사람이다. 서울에서 대학을 나왔지만 졸업하고 부모님이 하시는 소 농장을 물려받기 위해 다시 시골집으로 내려가 소 농사를 10년 넘게 했다. 지금은 농장 일을 그만두고 목수 일을 하고 있다. 요샌 농사 짓는 부모님의 직업을 물려받아 현대식으로 업그레이드하는 자식들이 많아졌지만, 그 때만 해도 드물었다. 처음 남편을 봤을 때 “저 오빠 소 키운대.”라는 말에 눈이 휘둥그레져서 남편을 바라봤다. 허허허 웃으며 걸어오는 남편 뒤에 후광이 비쳤다. 양복 입고 동태 눈깔을 한 채 사무실에서 일하는 남자들만 보다 살아있는 사람을 처음 보는 기분이었다. 자신의 인생을 오로지 자신의 선택으로 살아온 사람의 자유로움이 풍겼다. 남편이 오래도록 정성들여 운영했던 소 농사를 그만두기로 결정 했을 때, 가만히 누워 있다 ‘이제 그만둬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평소에 했던 고민과 생각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다 어느 순간 마음에 두둥실 떠올랐으리라. 남편이 내게 해준 조언이 바로 그것이었다. 

 사람은 자신이 가는 길 위에서 무수히 많은 생각과 염원을 지닌 채 걷는다. 그것이 마음이 되고, 마음은 어느 순간 자신에게 다시 길을 안내해준다. 언제가 떠날 때인지, 시작할 때인지, 계속할 때인지, 그만둘 때인지,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다. 나는 ‘그만둔다’ 말은 많이 했지만 정작 그만두지 않았다. 열심히 버티고 버텨 승진도 여러 번 했다. 어떤 길을 갈 때, 그 길이 익숙해 지게 되면 험난한 돌이 굴러와도 날렵하게 피할 수 있게 된다. 나의 회사 생활은 그랬다. 어느 정도 업무가 익숙해지고 경력이 쌓이자 일도 재밌고 사람들과의 관계도 즐거웠다. 정말로 그만두게 되었을 때, 알게 되었다. 이제 때가 되었다는 것을. 그건 이성적으로 생각해 내린 결정이었지만 근본은 마음이었다. 그동안의 경험과 고민과 생각들이 잘 뒤섞인 마음덩어리가 어딘가에 잘 숨어있다 때가 되었을 때 적절히 떠올라 나에게 가르쳐주었던 것이다.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는 말한다. 모든 인간에겐 삶의 보물이 숨겨져 있지만, 그 보물을 찾으려면 스스로 마음의 소리에 귀기울여야 한다고. 마음은 보물을 찾기 위해 떠나야 할 때가 언제인지, 어디로 떠나야 할 지 알고 있다. 인생의 방향을 정하는데엔 거창한 계획이나 미신이 필요없다. 그저 내면에 숨겨진 마음의 신호를 들으려 노력해야한다.   


 어느 날 아침 마끼꼬가 조용히 오스트리아로 떠났다. 전날 인사는 미리 했지만 마끼꼬가 없는 아침이 그렇게 허전할 수 없었다. 저녁엔 혜영이 밤버스를 타고 셀축으로 떠났다. 나와 텐이 혜영을 배웅 나갔다. 친구들을 보내며 나도 떠날 때가 되었다는 걸 어렴풋이 느꼈다. 여행사에서 연락이 왔다. 눈보라로 비행기 시간이 앞당겨졌다는 것이다. 여행하면 결정해야 하는 순간이 많다. 동행을 만나 일정을 조율하고, 머물려던 장소에서 금방 떠나게 되기도 하고 일찍 떠나려던 장소에서 오래 머물게 되기도 한다. 난 예정보다 일찍 떠나게 된 일정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마음이 말하고 있었다. 이젠 이곳을 떠날 때라고. 

 해도 뜨지 않은 이른 새벽, 배낭을 메고 점퍼의 지퍼를 끝까지 끌어 올렸다. 모자와 장갑을 쓰고 밖에 나오자 찬공기가 코를 스쳤다. 놀랍게도 텐이 배웅 나와 있었다. 텐이 언제까지 이스탄불에 머물진 몰랐다. 그러나 그도 곧 떠날 것이다. “저렇게 배웅 나와주는 친구는 처음이야.” 혜영이 떠나기 전에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여행지에서 만난 친구들은 떠날 때 굳이 서로 배웅하지 않는 게 자연스러웠다. 모두가 떠나고 도착하는 일상이었으니 말이다. 텐은 내가 갈 준비하는 걸 조용히 바라보며 여전히 말이 없었다. 몇 마디 작별인사를 했지만 우린 울지 않았다. 서로 가려고 하는 길을 가는 것일 뿐, 인생에서 영원한 만남이나 작별이 어디 있던가. 부산한 또 다른 여행의 시작일 뿐이었다. 이스탄불에 눈보라가 온다더니 레반터(지중해의 강한 동풍)가 부는 것인지도 몰랐다. 산티아고는 레반터가 불 때 사막의 향기와 사랑하는 여인을 느꼈다. 그리고 여행을 시작했다. 나에게도 레반터가 불기 시작했다. 다시 여행을 시작할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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