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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영 Oct 21. 2022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면 돼

메테오라의 얼음산

 델피로 가는 일정이 메테오라로 바뀐 건 순전히 버스 창구의 잘생긴 청년 때문이었다. 새벽같이 나왔지만 처음 가보는 버스터미널을 찾는 건 쉽지 않았다. 동이 터올 무렵이 될 때까지 난 바로 뒤에 있는 터미널을 찾지 못해 이리저리 길을 헤매고 다녔다. 어느 집앞에서 동네 주민에게 길을 물었지만 그는 영어를 전혀 하지 못했고, 난 그리스어를 알아듣지 못했다. 택시를 탈까 했는데 짐을 실으라고 친절히 트렁크를 열어준 택시기사의 친절이 무서워 택시도 타지 못했다. 우여곡절 끝에 결국 터미널을 찾긴 했지만 10분 정도 늦어 델피 가는 버스를 놓쳤다. 이미 짐을 다 싸고 떠날 차림으로 나왔는데 일정이 변경되니 곤란해졌다. 난감해하는 내 표정을 보더니 창구에 있던 잘생기고 친절한 청년이 싱긋 웃으며 권했다. 

 “메테오라는 어때요?” 

 그 웃음을 보고 난 버스표를 구매해 버렸다. 그래. 어차피 가려고 했던 곳이니까.

 메테오라는 그리스 중부 테살리아 지방에 있다. 바위 산 꼭대기에 수도원이 여러 채 지어져 있는 곳으로 메테오라(Meteora)라는 단어가 그리스어로 ‘공중에 떠 있다’는 뜻이다. 11세기부터 수도사들이 은둔해 살다가 14세기부터 수도원이 지어졌다고 하는데, 커다란 바위 위에 수도원만 덩그러니 놓여 있는 모습을 보고 너무 궁금해서 꼭 가보고 싶었던 곳이다. 평소라면 아테네에서 5~6시간 정도면 갈 수 있지만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눈보라가 어찌나 치던지 시간이 지체되어 7시간이나 걸렸다. 졸다 깨다 반복하며 창 밖의 풍경을 보노라니 낮은 구릉에 점점이 올리브 나무만 간간이 눈에 띄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저 멀리 거대한 돌산이 보였다. 그동안 높은 산 하나 보이지 않던 풍경에 거대한 돌산이 눈에 들어오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평지에 거인이 돌덩이 하나를 놓은 것 마냥 메테오라가 있는 돌산은 꽤나 눈에 띄었고, 또 위용있었다. 

 메테오라 아래에 있는 마을, 칼람바카에 내렸다. 버스에서 내려 마을 쪽으로 걸으니 마치 손녀 마중 나온 양 자연스레 걸어오던 할아버지와 마주쳤다. 코가 빨갛고 모자를 쓴 할아버지였다. 그는 또 아주 자연스럽게, 이건 마치 정해져 있던 일이었다는 듯 나에게 방을 찾냐고 물어봤다. 아마도 아테네나 다른 큰 도시에서 버스가 도착할 때쯤 슬슬 정류장에 나와 이런 식으로 관광객들에게 방을 홍보했을 터였다. 겨울이라 호객꾼도 없겠다, 숙소 예약도 안 한 터라 할아버지를 따라 나섰다. 나에게 동행은 없었지만 비수기인지라 할아버지는 흔쾌히 2인실을 보여줬다. 방은 그럭저럭 괜찮았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2인실 가격은 예산을 살짝 넘어선 수준이었다. 좀 비싸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내 맘을 알아챘는지 할아버지는 잽싸게 나를 다시 숙소 아래 작은 가게로 데려가더니 이것저것 보여주고 설명도 해주었다. 식료품이랑 기념품을 파는 작은 가게엔 여러 잡동사니들이 얼핏 보기엔 정신 사납게, 하지만 나름 일련의 질서를 지키며 자리하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전형적인 그리스 시골 사람이었다. 과장되게 친절했고 호들갑스러웠다. 나에게 그리스식 인사도 알려주고 가게에서 콜라도 사주었다. 버스에서 내릴 때부터 방에 오기까지 홀린 것처럼 할아버지에게 영업 당한 나는 콜라까지 얻어 마시며 할아버지 말에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아무래도 방값으로 이득을 본 게 아닌가 싶은데 사람은 나빠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도대체 날 뭘 보고 믿는지 퇴근 시간이 되자 숙소를 아예 나에게 맡기고 집으로 가버렸다. 골 때리는 할아버지였다. 창밖으로 할아버지가 골목을 유유히 걸어 내려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밤이 되어 깜깜한 시골 마을에 찬 공기가 돌았다. 내일은 메테오라에 갈 것이므로 일찍 잠을 청했다. 

 아침에 일어나니 날씨가 화창했다. 창문을 열자 전날 밤 할아버지가 집으로 향하던 골목길을 중심으로 마을에 장이 서 있었다. 시골의 풍성한 장을 보니 절로 기분이 활기차졌다. 아테네에선 1유로에 오렌지를 6개밖에 안 줬는데 여기는 한 바가지 가득 담아 줬다. 모두가 친절하고 웃음을 얼굴에 머금고 있었다. 메테오라에 등반해 올라갈 예정이라 먹을 것과 물을 사고 어디로 올라가면 되는지 사람들에게 물어봤다. 친절한 시골 사람이 길을 알려주었다. 

 “저기 저 길로 올라가면 돼요.”

 그가 가리킨 곳은 동네 교회였다. 정확히는 교회 뒤쪽으로 산으로 오르는 작은 오솔길이 보였다. 고맙다고 인사하고 오렌지와 물이 든 비닐봉지를 손에 쥔 채 길로 들어섰다. 

 내가 상상했던 등반을 먼저 고백해야겠다. 메테오라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커다란 돌 위에 덩그러니 올려진 수도원이다. 수도원이 ‘덩그러니’ 놓여 있다는 표현이 어색하긴 하지만 그보다 더 적절한 표현도 없다. 역사적으로 수도사들은 종교로 핍박 받을 때마다 저마다의 창의적인 방법으로 살아 남곤 했다. 터키 카파도키아에선 돌에 구멍을 뚫고 그 안에서 살아가거나, 지하동굴을 만들어 숨어 지냈다. 메테오라 역시 수도사들이 살아남기 위한 방안으로 시작되었다. 아무도 올라오지 못할 만한 높은 돌산 위에 수도원을 짓는다는 생각을 누가 하겠는가. 누군가 지었다는 걸 생각해내기 힘들 정도로 돌과 한몸처럼 붙어 있는 수도원의 모습을 보노라면 ‘저기에 어떻게 올라가지?’ 궁금해지기 마련이다. 여행 책자를 봐도 걸어서 올라간단 말뿐, 자세한 길을 안내해 주진 않았다. 

 산에 돌이 좀 많은 수준이 아니다. 암벽등반을 해야 올라갈 정도의 거대한 바위산이다. 매끈한 돌산 위의 수도원. 아마도 길을 따라가다보면 어느 순간 부터 절벽을 옆에 끼고 걸어야 할 지도 모른다. 잘못 발을 디디면 낭떠러지로 떨어질 수도 있다. 그리고 적절한 공간에 도착하면 저 위 수도원에서 내려주는 도르래와 밧줄에 의지한 바구니를 타고 위로 올라갈 지도 모른다. 바구니를 타기 전엔 수도원으로 연결된 초인종을 눌러야 할 수도 있다. 내 신상을 밝히고 적합하지 않은 방문객이면 되돌아와야 할 수도 있다. 수도사들은 바닥까지 끌리는 커다란 로브로 얼굴을 가린 채 다니겠지? 나는 구름 위에 숨겨진 라퓨타 성을 찾아가는 들뜬 마음으로 길을 나섰다. 오래된 교회엔 몇몇 사람들이 구경을 하거나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비밀의 문을 혼자만 알고 있는 사람처럼 사람들을 지나 작은 오솔길로 들어섰다. 

 길은 흔한 등산의 초입로와 다르지 않았다. 나무가 우거졌고, 숲길은 아담하고 조용했다. 천천히 등산하듯 길을 걸었다. 지금은 평범한 산처럼 보이지만 곧 도르레와 바구니가 어딘가에서 나타나리라. 겨울이지만 잎들이 떨어지지 않아 숲이 무성했다. 고요하고 적막한 숲속에 오렌지와 물을 든 비닐봉지가 옷에 부딪히는 소리만 버스럭버스럭 울렸다. 시골의 후한 인심 덕에 오렌지 무더기가 1kg나 되어서 비닐봉지는 산에 들고가는 것 치고 부피가 꽤 컸다. 추운 날씨에 장갑은 꼈지만 때론 손이 시려 봉지를 손목에 걸고 손을 주머니에 넣고 걸었다. 버스럭버스럭. 버스럭버스럭. 아무리 공중의 수도원이라지만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 곳에 가는 사람이 나 혼자 밖에 없다는 게 의아했다. 겨울이라 사람들이 없는 거겠지, 생각하며 나는 더욱 신실한 순례자가 된 듯 열심히 걸었다.  

 이상했다. 길을 가다보면 절벽이 나오고, 고개를 들면 깎아지르듯 높은 절벽 위에 수도원이 있어야 하는데 가면 갈 수록 울창한 숲만 나오고 돌산 같은 건 보이지도 않았다. 게다가 길은 점점 험해져 나중엔 길 자체를 찾기 힘들었다. 주머니에서 손을 뺀진 이미 오래였다. 경사가 어찌나 심한 지, 손을 사용해서 네 발 기 듯 산을 올랐다. 험악한 돌이 불친절하게 솟아오른 지면에 울창한 나무들이 겹쳐진 산길은 등산로가 아니라 이미 능선 어딘가인 것 같았다. 망했다는 생각이 불쑥불쑥 솟아올랐다. 갈 길이 잘 보이지 않는 건 둘째치고 돌아갈 길도 이젠 보이지 않았다. 아직 해가 한창인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쓰윽 탁. 쓰윽 탁. 네 발로 산을 오르며 손을 다음 위치로 옮기면 비닐봉지가 바스락 움직이며 지면에 탁탁 부딪혔다. 오른손 올리고 왼손을 올리면 오렌지가 든 비닐봉지가 탁. 탁탁. 바스락바스락. 다음에 살 땐 반만 달라고 부탁해야 겠다. 내 사정에 이렇게 많은 오렌지를 받은 거 자체가 욕심이었다. 땅바닥이 얼어 살얼음이 껴 있는 흙은 그 자체로 미끄러웠다. 발이 몇 번이나 미끄러졌는데 그 때마다 손이 중심을 잡기 위해 다시 애써 땅을 짚었고 그 때마다 오렌지와 물통들은 비닐봉지 안을 신나게 굴러다녔다. 아이구 내 신세야. 

 방향을 잡으려고 고개를 들었다. 저 위쪽에 편평한 길 같은 게 있는 것 같았다. 딱 봐도 올라가면 방향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무조건 위로 올라가자 마음 먹었다. 산에서 길을 잃으면 아래로 가는 게 아니라 위로 올라가야 한다지 않은가. 그런 상식이 기억날 정도로 정신이 깨끗한 상태는 아니었지만 살고자 하는 생존본능은 절로 옳은 방향으로 나를 이끌었다. 방향이 정해지자 오렌지와 물통들은 더욱 바빠졌다. 쓰윽 탁탁 버스럭버스럭 헉헉. 쓰윽 탁탁 버스럭버스럭 헉헉. 숨이 가빠왔다. 메테오라고 뭐고 우선 길을 찾고 봐야했다. 이런 환경에선 종교 탄압이니 뭐니 잡으러 왔던 사람들도 그냥 돌아가기 바빴을 것이다. 현명한 수도사들이여, 왜 공중에 수도원을 지었는지 이제서야 그 의중을 알겠나이다. 이제 저에게 길을 알려주소서. 아니면 도르래에 매달린 바구니라도! 

 고지에 거의 다다랐다. 가고자 했던 편평한 길이 마치 찬란히 빛나는 빛처럼 눈앞에 들어왔다. 오렌지들이 마지막 힘을 내어 탁탁 소리를 내고, 산을 오르느라 내내 구부정했던 허리를 펴자 내 눈 앞에 들어온 것은 어마어마하게 넓은 아스팔트 도로였다. 예상치 못한 장면에 어안이 벙벙해 길을 따라 시선을 보내자 그 끝에 수도원이 있었다. 그렇다. 21세기의 수도사들은 도르래가 아니라 차를 타고 수도원에 들어갔던 것이다! 그제야 왜 진작에 차를 타고 올라갈 방법이 있는지 알아보지 않은 자신을 한탄했다. 아무리 수도원이라도 어쨌든 관광지 아닌가. 수많은 관광객들이 한꺼번에 올라갈 방법은 당연히 도르래가 아닐 것이다. 숙소의 할아버지에게도, 친절한 상인들에게도 물어볼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는데도 걸어가는 것만 생각했던 건 비밀의 문을 여는 것 같은 경험을 하고 싶단 내 작은 욕심 때문이었다. 도로엔 차가 한 대도 없었다. 휘잉 빈 바람만 부는 아스팔트 도로를 따라 수도원에 갔다. 문은 굳게 닫혀 열리지 않았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수도원을 개방하지 않는 날이었다. 문 열어주세요. 오렌지들이 울고 있었다. 

 햇빛이 찬란했다. 걷기에 딱 좋은 날이었다. 저 멀리 메테오라에서 가장 큰 수도원인 ‘그레이트 메테오라’가 보였다. 그냥 보기에도 멀었지만 나는 걸어서 여기까지 올라온 사람이었다. 저 정도 거리의 평지를 못 걸을 이유가 없었다. 발걸음을 옮겼다. 몇 미터 내려가고 있으니 차 한 대가 올라왔다. 차는 경쾌한 소리를 내며 수도원에서 적당한 거리에 정차를 했다. 아시아인 가족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시끌시끌 떠들면서 차에서 내렸다. 즐거워 보이는 그들을 지나치며 내 갈 길을 가려는데,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순간 내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건 한국말이었다! 어…어…어… 하며 멈춰선 채 그들이 수도원 쪽으로 가는 걸 보다 정신이 번뜩 들어 입을 열었다.

 “거기 문 닫혔어요!” 

 나는 한국인 가족에게 차를 얻어타고 그레이트 메테오라로 향했다. 내가 가려는 방향을 들은 사람들이 호들갑을 떨며 거기는 걸어서 가기에 너무 멀다고 나를 태운 것이다. 그들은 이미 온 방향이지만 선뜻 날 데려다 준 호의가 고마워 오렌지를 만지작거렸다. 하지만 호의는 호의대로 받는 게 예의일 것 같아 고맙단 말만으로 헤어졌다. 내 소중한 오렌지는 아직까진 내가 보관하는 게 맞는 것도 같고. 나는 차를 한 번 더 얻어탔다. 수도원을 구경하며 만난 스페인 가족들이 내가 걸어서 길을 가는 걸 보자 또 친절하게 칼람바카까지 태워다 준 것이다. 차를 타고 마을로 내려가는 길은 아주 넓고 쾌적했다. 

 인생을 살아가며 메테오라 같은 험지를 만날 때가 또 있을까 생각한다. 지금이야 웃으며 말하지만 산속에서 길을 잃었을 때의 심정은 절박했다. 혹시라도 그와 같은 상황에 다시 처한다면, 나는 찻길을 먼저 알아볼 정도로 현명해져 있길 바라기도 하지만 예전의 나처럼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을 용기도 있길 바란다. 어찌되었든 다시 길을 찾을 수 있었던 건,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 앞을 향해 나아갔기 때문이다. 게다가 좋은 사람들을 만나 차까지 얻어탔으니, 결국엔 이것이 해피엔딩 아닌가. 

 그레이트 메테오라에 섰을 때 그 어마어마한 규모에 압도되어 한동안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었다. 거대한 돌산 위 거대한 수도원을 곧바로 볼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그레이트 메테오라가 살짝 동떨어진 돌산 위에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차를 타고 내린 곳에서 정면으로 수도원을 감상하고, 아래쪽으로 연결된 계단을 통해 올라갈 수 있다. 난 위대한 수도원을 바라보다 무언가 발견했다. 내가 서 있는 이곳과 그레이트 메테오라를 잇는 몇 개의 선, 그리고 그 선에 연결되어 선을 따라 공중을 오르내리는 커다란 바구니. 그 안에 타고 있는 사람. 바로, 도르래에 연결된 바구니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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