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현영 Oct 21. 2022

나는 너에게 어떤 사람인가

데니즐리 가는 버스

 사람들은 곤경에 처한 사람을 돕고 싶어한다. 나는 여행하며 많은 어려움에 닥쳤고, 그 때마다 날 도와준 사람들 덕분에 무사히 여행을 끝마칠 수 있었다. 

 마카오에 갔을 때의 일이다. 난 막 숙소에 짐을 내려놓고 나와 세나도 광장에 가는 버스를 찾고 있었다. 버스정류장은 어렵지 않게 찾았지만 어떤 버스가 맞는지 확인하고 싶어 길거리에 있는 사람을 붙잡고 물어봤다. 일행이었던 두 사람은 내가 세나도 광장으로 간다고 하자 무덤덤하게 말했다.

 “우리랑 같이 택시타요. 우리도 그쪽 가는 길이거든요.”

 마치 매일 보는 사람이 ‘오늘 점심 김치찌개 어때’  물어보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제안이었다. 덩달아 나도 자연스레 일행에 끼게 되었다. 얼떨결에 모르는 사람들의 택시를 얻어 타게 되었지만 태워준 사람들은 나를 크게 궁금해 하지 않았다. 여행 왔냐 어느 나라 사람이냐 등 으레 물어보게 되는 질문과 답을 몇 마디 주고 받았고, 곧 세나도 광장에 도착했다. 택시에서 내린 후 그들은 아주 쿨하게 “굿바이” 한마디만 하고 제갈길을 갔다. 바쁜 와중에 나까지 챙긴 듯한 분위기였다. 따뜻하지만 시원한 행동거지. 덕분에 짧은 만남이었는데도 마카오 사람들과의 카풀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여행을 하다 도움 받은 일은 이 때 뿐만이 아니었다. 터키 여행하는 중 셀축에서 출발해 한밤중에 이스탄불에 도착한 적이 있었다. 10시간 넘는 장거리 버스 여행에 피곤이 쌓인 나는 얼른 숙소에 들어가 짐을 풀고 싶었으나, 처음 와보는 버스터미널에서 길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지하철역을 찾느라 터미널 안을 여러 번 헤매던 나는 결국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전철역 위치를 물어봤다. 엄마와 아들처럼 보이는 두 사람이었다. 아들은 건장한 청년이었고, 아들의 엄마로 보이는 중년 여성은 어느 나라에서나 볼법한 평범한 아줌마였다. 오밤중에 커다란 배낭을 멘 여행객을 본 엄마와 아들은 잠시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하더니 길을 알려주는 게 아니라 아예 나를 지하철역까지 데려다 주었다. 지하철역이 터미널 밖에 있어서 안에서만 찾던 나에겐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들은 지하철 역 개찰구까지 함께 가더니 그들의 돈으로 표까지 사서 내 손에 건네주었다.  

 모르는 사람들의 택시를 얻어타거나 모르는 사람들이 사준 전철표를 덥썩 받는 게 위험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나 나름대로 여행하며 터득한 지혜가 있다. 그건 바로 내가 먼저 도움을 청한 사람들의 도움은 받는다는 것이다. 여행지에서 사기를 당하거나 위험에 처할 때는 대부분 현지인이 먼저 다가왔을 때 일어날 확률이 높다. 나는 혼자 여행할 땐 누가 다가와서 말을 걸거나 도움을 준다고 할 때 대부분 거절한다. 그러나 내가 먼저 도움을 청한 사람들의 도움은 흔쾌히 받는다. 어떤 사람에게 도움을 청할 지 결정하는 것도 나름 중요한 안목이 필요한데, 나와 반경 10m 안에서 비슷한 행동을 하고 있는(예를 들어 버스를 기다린다거나 터미널에 도착했거나) 정말 평범해 보이는 사람들에게 말을 거는 것이 가장 효과가 좋았다. 

 나는 여행지에 갔을 때 길을 묻거나 현지 사정을 묻는 걸 꺼려하지 않는다. 어떤 땐 내가 필요한 것 이상으로 도와주려고 할 때도 있어 정중히 거절하기도 한다. 포르투갈의 작은 도시 포르투에 도착했을 때였다. 나는 기차역에서 나와 숙소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여러 대의 버스가 오고가고, 함께 기다리던 사람들이 사라지길 여러 번. 아무리 기다려도 버스가 오지 않자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 주변에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콧수염을 단 착해 보이는 아저씨와 눈이 마주쳤다. 그에게 버스편을 물어보자, “주말이라 그 버스는 다니지 않아요.”란 대답을 들었다. 숙소로 가는 다른 방법을 모르는 나는 순간 당황했다. 난감해 하는 내 표정을 보자, 아저씨는 나보다 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안타까워 하는 모습이 얼굴에 드러나던 아저씨는 주머니에 손을 넣더니 주섬주섬 뒤지기 시작했다. 뭘 하는가 싶어 바라보자, 곧 이어 지폐 몇 장을 꺼내 나에게 수줍게 건네주려는 것 아닌가. 돈이 필요한 건 아니었는데 그런 도움까지 주려고 하니 너무 놀라서 나도 모르게 손사래치며 뒷걸음질을 쳤다. 아저씨는 머쓱해하며 돈을 손에 쥐고 꼼지락거렸다. 난 고맙다는 말을 여러 번 했다. 

 도움을 가장 많이 받고, 재미있었던 곳은 터키의 고속버스 안이었다. 터키의 장거리 버스는 여러모로 재미있는 구석이 많다. 땅덩어리가 크다보니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할 때 6~10시간은 기본이고, 버스 안에 항상 차장이 있다는 점이 재미있다. 이들은 승객들을 챙기는 역할을 하는데, 인원점검을 하는 것이 가장 큰 일이지만 독특하게도 간식을 나눠주는 일도 한다. 터키의 고속버스는 이동시간이 길어서 그런지 파운드 케익 같은 간식을 항상 나눠주었다. 차장이 승객들을 돌면서 손소독제를 뿌려주면 간식 배분이 시작되었다는 뜻이었다. 비행기에서 잠을 자다가도 기내식이 나오면 벌떡 일어나게 되듯이, 간식이 배분되면 피곤하다가도 눈을 떠 빵을 맛있게 냠냠 먹었다. 나는 승객 중 유일한 동양인인 경우가 많아서 차장들이 유독 잘 챙겨주었다. 몰래 빵을 하나 더 주고 가기도 하고 아예 남은 빵을 통째로 나에게 건네는 경우도 있었다. 

 셀축을 떠나 이스탄불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분명 표에 적혀 있는 좌석에 앉아서 가고 있었는데, 중간에 선 정류장에서 내가 앉은 좌석의 표를 가진 사람이 탄 것이다. 파는 곳에서 뭔가 오류가 있던 모양이었다. 그 때부터 버스 안은 난상토론 장이 되었다. 차장을 포함한 승객들은 좌석을 어떻게 해야 할지 서로 우왕좌왕 의견을 내가며 이야기를 하고 떠들었다. 말을 하고 싶었는데 이때다 하고 떠드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참견해 토론을 하기 시작했는데, 정말 난감했던 건 정작 당사자인 나에겐 모두가 웃으며 “No problem!”하고 안심시키는 것이었다. 알아 들을 수 없는 말들이 오고가는 와중에도 차장은 다정한 미소로 가끔씩 날 바라보며 “괜찮아요. 걱정마요.”하며 날 달랬다. 도대체 뭐가 괜찮다는 건지, 내 의견은 왜 묻지 않는 건지 궁금했지만 이들이 떠드는 이유를 난 알 수 있었다. 그들은 정말로 나를 걱정시키고 싶지 않았고, 혹여나 자리 때문에 내가 마음이 상하는 일이 생길까봐 전전긍긍한 것이다. 그러니 좌불안석인 건 되려 나였다. 나 하나만 움직이면 될 것 같은데 상황은 나아질 기미가 안보였기 때문이다. 토론이 시작되고 한참 시간이 흐른 후, 차장이 나에게 오더니 정말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정말 미안하지만, 자리 좀 옮겨 줄 수 있어요? 미안해요.”

 나는 옳다구나 싶어 괜찮다고 하고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자리를 옮긴 곳은 맨 뒷 자리 창가였다. 내가 가까이 가자 자리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날 바라보았다. 어른 여자 두 명과 남자 아이 한 명, 가족으로 보이는 사람들이었다. 이미 상황은 다 봤겠다 내가 오는 모습을 보며 여자들은 날 향해 웃어주었고, 아이는 호기심 어린 눈길로 바라보았다. 내가 인사하니 아이는 쑥스러워 하며 슬며시 미소 지었다. 활발해 보이는 아이의 이모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나는 에디고, 얘는 데니스에요.” 

 데니스는 처음보는 동양인 여자가 신기했는지 날 계속 쳐다보고 웃었다. 이 사랑스러운 가족은 내가 꽤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그들은 가는 내내 배가 꺼질 새가 없을 정도로 나에게 먹을 걸 주었다. 빵도 주고 땅콩도 주고, 나는 그걸 또 다 받아 먹었다. 한 번은 에디가 도시락 뚜껑을 열어 내 앞에 내밀었다. 깻잎처럼 보이는 잎사귀가 돌돌 말려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처음 보는 음식이었다. 하나를 들어 맛을 보았다. 은은한 잎사귀 향이 나고, 곧이어 안에 감싸져 있던 고소한 볶음밥이 씹혔다. 나중에 찾아보니 포도잎에 양념한 밥을 넣은 터키 음식으로, ‘야프락 사르마’ 혹은 ‘야프락 돌마스’라고 한단다. 이름도 몰랐던 음식인데 터키에선 흔히 먹는 김밥 같은 것 같았다. 야프락 사르마를 도시락에 차곡차곡 넣어 온 모습을 보니 마치 김밥 싸서 온 가족이 나들이라도 가는 모양이었다. 내가 맛있어 하는 표정을 보이자, 에디는 더 가져가라며 나를 찔렀다. 나도 아침에 셀축 시장에서 산 만다린과 땅콩을 나눠 주었다. 버스 맨 뒷자리에서 친구들과 터키식 김밥과 간식을 나눠 먹으니 꼭 소풍 가는 기분이 들었다. 우리는 같이 사진도 찍고 이야기도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데니스 가족은 중간 지점인 부사(Bursa)에서 내렸다. 그러자 이젠 버스 차장이 나를 챙기기 시작했다. 혼자 있는 내가 심심해 보였는지 가끔 옆자리에 앉아 말동무를 해주었다. 빵을 주는 시간이 되자 앞자리부터 나눠주고 남은 빵을 모두 나에게 먹으라며 건네주기도 했다. 셀축을 떠나 이스탄불에 도착하기까지는 10시간이 넘게 걸렸다. 여행자들은 대부분 이동시간이 아까워 장거리는 밤버스를 타고 이동하곤 한다. 그러나 그 날은 왠일인지 낮에 출발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운명인지 우연인지, 나는 좋은 사람들을 만나 좋은 시간을 보냈고, 10시간의 여정이 하나도 지루하지 않았다. 차장에게 받은 빵을 두 손 가득 한아름 안고 있노라니, 내가 받은 건 빵이 아니라 그들의 사랑 같았다. 

 터키 버스에서 여러 사람을 만났지만 가장 인상 깊은 사람은 데니즐리 가던 버스에서 만난 할머니였다. 나는 터키 중부 지방에 있는 파묵칼레를 보러 가기 위해 남부 휴양 도시 안탈야에서 버스를 탔다. 파묵칼레는 터키의 명소 중 하나다. 다랭이 논처럼 계단식으로 되어 있는 석회층마다 따뜻한 온천수가 푸른 빛의 띄고 잠겨 있는 모습이 굉장히 독특해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파묵칼레는 데니즐리라는 중부 지방에 있다. 데니즐리는 파묵칼레와 몇 고대 유적지를 제외하면 그다지 특별할 게 없는 동네다. 데니즐리 터미널에서 내리면 “파묵칼레 행 미니 버스!”를 외치는 수많은 호객꾼들에게 둘러쌓일 정도로 파묵칼레가 그 지역을 먹여 살린 대도 과언이 아니었다. 관광객이 많은 곳이긴 했지만 터키의 다른 관광지와 애매하게 동 떨어져 있어서 여행 계획에서 제외되는 일도 종종 있었다. 그래서인지, 데니즐리 가는 버스엔 사람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 

 난 여느 때처럼 버스 좌석에 자리를 잡고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조금 후 스카프를 머리에 두른 허리 고부라진 할머니 한 분이 큰 짐을 하나 들고 내 옆 자리 쪽으로 왔다. 할머니의 둔하고 무거운 움직임과는 다르게 눈은 초롱초롱 했다. 할머니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태양이 뜨는 것 같은 환한 미소를 지었다. 나도 함께 미소를 지었다. 짐을 다리 앞에 놓고 자리에 앉은 할머니는 본격적으로 날 바라봤다. 당황했던 순간은 다음부터 이어졌다. 할머니가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 앉자마자 나에게 말을 걸었던 것이다. 알아 들을 수 없는 말이었지만 분명 문장의 끝이 올라간 걸로 보아 나에게 질문을 한 게 분명했다. 처음 눈 마주쳤을 때부터 지었던 미소를 아직까지 유지하고 있던 나는 얼굴에서 웃음기를 거둘 수 없는 채로 대답도 못하고 멀뚱히 할머니만 바라볼 뿐이었다. 할머니는 그 모습이 웃겼는지, 소리내어 크게 웃으며 꼬랑꼬랑 말을 이어나갔고, 다시 한 번 더 질문을 했다. 지나가던 차장이 미소 지으며 통역해주었다.

 “어디에서 왔는지 물어보시네요.” 

 “아, 한국이요.” 

 차장이 통역해주자, 할머니는 크게 반응을 하며 또 뭐라뭐라 말을 이어나갔다. 내가 터키어를 다 알아듣는다고 여겼거나, 아니면 내가 알아듣지 못해도 딱히 상관 없다는 투였다. 어쩜, 할머니들이 자기 할 말만 하는 건 어느 나라나 똑같았다. 조언을 해주는 건지, 한국에 대해 물어보는 건지, 아니면 본인이 시장에서 뭘 사왔다는 이야길 하는 건지 도통 알 수 없었지만 맨 처음 어느 나라에서 왔냐고 물은 걸로 보아, 할머니가 하는 말이나 질문이 크게 어렵거나 심각한 내용이 아니라는 것쯤은 짐작할 수 있었다. 할머니는 정말 진지하게 나와 대화를 했고, 말끝마다 어떤 질문을 했다. 난 대답할 순 없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 호의의 미소를 지어 보였고 가끔은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할머니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대답하지 못하는 나를 보며 연신 깔깔 대고 웃거나, 미소를 지으며 날 바라봤다. 귀여운 손주를 보는 눈빛이었다. 

 할머니는 종종 다리 앞에 놓여진 보따리를 열어 짐을 확인했다. 계속 나에게 말을 걸며 웃던 할머니는 대뜸 보따리에 손을 넣더니 치즈 넣은 바게뜨 빵 큰 덩어리를 두 개 꺼냈다. 그리곤 하나를 먹으라는 투로 나에게 건네며 연일 그 태양같은 미소를 지었다. 이상하게도, 그 할머니를 마주하고 있으면 함께 미소를 짓게 되었다. 나는 바게뜨 빵을 건네받았다. 할머니가 빵 한 입을 베어무는 걸 보자, 나도 먹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빵을 입에 넣고 오물오물 씹었다. 고소한 치즈와 빵 향기가 입안을 가득 메웠다. 내가 먹는 걸 보며 할머니는 손주 입에 밥 들어가는 걸 보는 양 연신 또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차장이 카스테라 빵을 나누어주었다. 거절할 새도 없이 할머니의 빵은 내 손에 쥐어졌다. 먹을 걸 건네며 또 태양같은 미소를 짓는 할머니. 할머니는 우리 할머니를 떠올리게 했다. 상대방 말보다 당신 말을 더 많이 하는 할머니. 손주 입에 먹을 게 없으면 계속 먹을 걸 내오는 할머니. 잘 모르는 사람과도 편하게 대화할 줄 아는 할머니. 때론 호탕하고 순수한 웃음을 지을 줄 아는 할머니. 나는 터키에서 할머니 한 분이 더 생긴 기분이었다. 잠시 눈을 붙인 사이 할머니는 자리를 비우고 웬 아기엄마가 앉아 있었다. 고맙단 말을 제대로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 아쉬웠다. 말을 했어도 알아 들으셨을지 모를 일이지만. 

 인연에 대해 생각한다. 인(因)은 결과를 만드는 직접적인 힘이고, 연(緣)은 그를 돕는 외적이고 간접적인 힘이다. 어떤 직접적이고도 간접적인 힘을 통해 우리가 만난 것인진 모르지만, 잠시 스칠 뻔한 나에게 기꺼이 도움을 준 그들은 내 평생 잊을 수 없는 인연이 되었다. 마카오에서 택시를 태워준 사람들, 이스탄불에서 전철비를 내준 엄마와 아들, 셀축 가는 버스에서 만난 승객들과 데니스 가족, 그리고 데니즐리 가는 버스에서 만난 옆자리 할머니까지. 지나치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며 생각한다. 나는 과연 다른 사람에게 어떤 존재인가. 언젠가 내가 받은 도움을 또 다른 낯선이에게 줄 수 있을까. 그러리라 다짐한다. 



이전 08화 '같이'의 힘으로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