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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영 Oct 21. 2022

낯선 상황에서도 당당하게

이집트의 고양이

 여행의 잔상은 평소 습관화되어 있던 것들이 깨어질 때 충격을 받으며 남는다. 내가 상식이라 생각했던 것이 상식이 아닌 사회에 가게 되면 예기치 못한 상황이나 대상에 어쩔 줄 몰라 한다. 대처하는 과정에서 나와야 할 말이나 행동이 나에게 없기 때문이다. 이집트 여행은 비행기에서부터 그랬다. 카이로로 향하는 비행기엔 유난히 흰 옷을 입은 사람들이 많았다. 백의민족이 사실 지구 반대편에 있었구나 할 정도로 흰 원피스 같은 옷에 터번을 두른 아저씨들이 빽빽하게 좌석을 채우고 있었다. 나와 동행인 윤화 언니가 비행기에 탑승하자 흥미롭다는 듯 쳐다보는 시선을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었다. 비행기에서부터 이렇게 낯선 환경이면 앞으로의 여행은 볼 만하겠다 싶었다. 

 공항에 도착했다. 가장 먼저 한 것은 비자를 ‘사는’ 일이었다. 입국 심사를 하러 가는 길에 친절하게도 관광 비자를 구입하는 창구가 있었다. 00달러를 내고 우표와 똑같이 생긴 비자를 받았다. 비자 심사를 해 직접 여권에 붙여주는 다른 나라와 달리 본인이 직접 붙여야 한다. 우표를 편지봉투에 붙여 우체통에 넣었던 어릴 적 기억이 떠올랐다. 그 땐 이상하게 약국에서 우표를 팔았다. 100원 짜리 한 개를 달라고 하면 어른 엄지손톱 만한 우표를 맨질한 유리선반 위에 스윽 올려줬다. 우표를 들고 약국 바로 앞에 있는 우체통 앞에 서서 뒷면에 침을 스윽 발라 편지봉투에 붙였다. 약국 앞에서 했던 것처럼 이집트에서 비자 뒤에 침을 바르고 있자니 헛웃음이 나왔다. 한 나라에 이렇게 쉽게 들어가도 되나 싶다. 돈으로 비자를 쉽게 살 수 있는 나라는 더 긴장하게 된다. 

 아니나 다를까, 새로운 나라에 온 피로가 가시기도 전에 출입국 관리소에서 별다른 이유 없이 여권을 뺏긴 채 몇 시간을 대기해야 했다. 주변을 돌아보니 우리처럼 여권을 뺏긴 채 공항에 아무렇게나 널부러져 있는 서양 여행객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안심이 된다고 해야 할지, 걱정이 된다고 해야 할지. 몇 시간이 지나도 소식이 없자 나는 직원들이 많이 보이는 사무실 쪽을 서성이며 “Passport! Passport!”를 외치고 다녔다. 조그만 동양 여자가 소리치고 다니는 게 귀찮아서일까, 아무리 봐도 우리에게 뜯어 먹을 게 없다는 걸 알아채서일까, 두 시간쯤 지나서야 우리는 겨우 여권을 받아들고 공항을 빠져 나올 수 있었다. 시작부터 험난하다. 

 공항 문을 나온 지 얼마 안되어 누군가 우리에게 말을 걸었다. 

 “택시?”

 택시기사였다. 타히르 광장까지 가는 금액을 흥정하고 택시에 올랐다. 카이로에 차선이 무용지물이란 걸 택시가 출발하고나서야 알았다. 차선을 무시하고 내달리는 총알택시의 어마어마한 속도란! “Okay? Okay?” 외국에서 온 손님을 맞이 하고 싶었는지, 놀리고 싶었는지 달리면서 택시 기사는 여러 번 돌아보며 우리에게 오케이를 연발했고, 모든 게 얼떨떨한 나와 윤화언니는 손잡이를 꼭 잡은 채 멍청한 미소로 여러 번 고개를 끄덕였다. 창밖을 보면 조금 진정이 될까 고개를 돌리니 버스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사람들과 눈이 마주쳤다. 오케이인 구석이 한 군데도 없다. 우리는 타히르 광장에 내동댕이 쳐 지듯 도착했다. 

 한숨 돌린 건 숙소를 잡고 식당에 앉아있을 때였다. 옆에 기척이 느껴져서 바라보니 웬 고양이가 동그란 눈을 하고 우리를 바라봤다. 녀석은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았고 우리를 꼭 오래된 친구를 바라보듯 지긋이 응시하고 있었다. 카이로에 온 걸 환영하는 유일한 생명체였다. 고양이와 눈맞춤을 하는 경험은 처음이었다. 그 때만 해도 고양이는 우리나라에서 그다지 환영 받는 동물이 아니었다. 길고양이는 으레 도둑고양이로 불렸고, 고양이의 영특함은 요물로 여겨지는 때였다. 고양이는 길들여지는 동물이 아니어서, 기를 수 없다는 인상이 있었다. 그러니 이런 고양이를 보는 게 놀라울 수 밖에. 잠시 후 녀석은 엉덩이를 들어 우리 다리 주변을 깃털처럼 가벼운 움직임으로 부드럽게 오갔다. 어쩔 줄 몰라 하는 우리를 보고 주변에서 누군가 말을 해주었다. 

 “이집트에서 고양이는 신성한 동물이에요.” 

 ‘신성한’ 대접이 고양이를 이렇게 순한 존재로 바꿀 수 있다니. 이집트와 고양이에 대한 인상이 바뀐 순간이었다.


 며칠 카이로 구경을 하고 밤기차를 타고 룩소르에 도착했다. 룩소르는 카이로가 수도가 되기 훨씬 이전부터 고대 이집트의 수도였다. 람세스 X세가 지은 카르나크 신전부터, 역대 왕들의 무덤이 있는 ‘왕들의 계곡’, 왕비들의 무덤이 있는 ‘왕비의 계곡’, ‘귀족의 계곡’, 하셉수트 여왕의 신전 등 어마어마한 유적지들이 나일강을 중심으로 서안, 동안으로 나뉘어져 있어 한번에 둘러보지 못 할 정도다. 그래서 여행자들은 대개 택시 하나를 잡고 흥정을 한 뒤 택시 투어를 한다. 우리도 택시 투어를 하기로 했다. 

 이집트는 여행자에게 난이도가 꽤 높아서 우린 단 며칠의 여행 만으로도 흥정의 도사가 되어 있었다. 룩소르가 아무리 날고 기는 관광지라지만, 막상 도착하면 시골 동네의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사람들도 카이로에 비하면 훨씬 순박했다. 나와 윤화 언니는 숙소 근처에 있는 택시에 다가갔다. 택시 기사는 반색하며 우리를 반겼다. 

 “웰컴웰컴! 뭘 도와줄까?”

 “서안 반나절에 보고 싶은데, 가격이 어때?”

 “서안이면 000달러는 받아야 해.”

 달러. 동남아 여행을 많이 가는 사람은 알겠지만, 자국 화폐가 아닌 달러로 흥정을 한다면 시작하기도 전에 패하는 것이다. 달러는 무조건 그들에게 이득이기 때문이다. 이집트에서도 마찬가지다. 

 “달러는 없어. 이집션 파운드는 얼마야?”

 “그럼 000는 받아야 해.”

 솔직히 우리가 어느 낯선 나라에 가 어떤 물건이나 서비스가 제 가격임을 제대로 알 수 있을까? 요즘엔 인터넷으로 몇 번 검색만 하면 가능하지만 당시엔 그런 게 있지도 않았을 뿐더러, 현지에선 무조건 현지인 말이 큰 힘을 얻기 때문에 그가 ‘얼마’라고 했을 때 거절하기 쉽지 않다. 거절도 이력이 나야 할 수 있다. 사실, 000 파운드가 원화로 환산하면 그리 비싼 가격은 아니다. 하지만 여행을 하다보면 현지 물가에 적응하며 지내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바가지를 쓰면 기분이 그렇게 나쁠 수가 없다. 그리고 여행자는 가난한 법이다. 할 수 있을 땐 무조건 깎아야 한다. 그리고 가격을 후려칠 땐 제대로 쳐야 한다. 나는 꽤나 큰 베팅을 했다. 택시 기사가 부른 가격의 80% 이상을 후려친 것이다.

 “안돼겠는데. 00 위로는 줄 수가 없어. 우리 돈이 없거든.”

 “아니아니 그건 안될 말이야. 그럼 000로 하자.”

 한 번 깎았을 땐 상대방도 꽤나 단호하다. 이미 이렇게 나올 줄 알았단 반응이다. ‘여기에선 우리가 법이야’ 라는 태도를 강하게 밀고 나올 확률이 크다. 여기에서 밀리면 끝장이다. 계속 밀어붙여야 한다. 

 “미안해. 진짜 돈이 없어. 00로 하자.”

 “아니 그렇게는 진짜 안돼. 내가 최대한 편의 봐줄게. 00는 어때?”

 아직 내가 원하는 가격이 나오지 않았다. 몇 번이 실랑이가 오고가면 이미 서로가 지친 상태다. 상대방이 ‘내가 너 편의를 이렇게나 봐주는데 계속 그럴거야?’ 이런 식으로 나오면 나도 마음이 살짝 약해지려고 한다. 그럴 때 강수를 둔다. 가차없이 뒤돌아 가는 것이다. 

 “안돼겠어. 진짜 돈이 없어. 미안. 미안해.”

 뒤돌아 가며 하나, 둘, 셋을 센다. 하나, 둘, 셋.

 “이봐이봐! 좋아 알았다고. 그 가격으로 하자. 내가 정말 편의 봐준거야.”

 원하는 걸 얻었으면 덥썩 문다! 

 “고마워!”


  택시 기사는 아주 성질이 급한 사내였다. 어딜 가면, “한 시간이내로 와야 해.” 하며 칼 같이 굴었다. 반나절 투어인데다, 이미 가격을 꽤나 깎은 우리로선 할 말이 없었기 때문에 그가 말한 시간을 정확히 지키며 다녔다. 룩소르에 대해 많이 알고 갔으면 어디어디를 가달라고 요구를 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리스, 터키를 지나오며 이집트에 대해선 공부를 거의 하지 못한 터라 그가 데리고 다니는 대로 갈 수밖에 없었다.

 다른 곳들은 돌아보기 부족하지 않았는데, 왕들의 계곡에 도착하자 시간이 빠듯하게 느껴졌다. 역대 왕들의 무덤을 다 돌아보려면 한 시간은 커녕 서너시간은 있어야 할 것 같았다. 우선 투탕카멘의 무덤에 들어갔다. 투탕카멘 무덤은 람세스 6세 무덤에 입구가 가려져 도굴꾼들에게 발견되지 않았다. 그래서 이집트 왕의 무덤 중 유일하게 도굴이 되지 않고 고스란히 발굴되어 고고학적으로 의미가 깊다. 우리는 카이로 박물관에서 이미 투탕카멘의 황금 마스크와 무덤 속 여러 유물들을 보고 반했던 터라 주저없이 투탕카멘의 무덤을 첫 순위로 선택했다. 시간이 모자라면 과감히 다른 무덤은 포기하기로 했다. 

 혹시라도 투탕카멘의 무덤에 가게 될 사람들에게 미리 말해두자면, 꼭 발굴 비하인드 스토리를 알고 가는 걸 추천한다. 영국의 발굴자 하워드 카터가 이곳을 처음 발견했을 때 그의 후원자 허버트 경과 나눈 대화는 매우 유명하다. 카터는 무덤으로 추정되는 벽에 작은 구멍을 뚫고 그 안을 들여다 보았다. 


 허버트 경: “뭔가 보이나?”

 카터: “네……. 아주 아름다운 것들이 보입니다…….”


 진귀한 보물들로 가득한 방을 바라보던 카터의 시선이 투탕카멘 무덤에 가면 생생하게 느껴진다. 고고학적으로 대단히 진귀한 발굴을 하게 된 걸 깨달으면 손이 떨릴 만큼 긴장되지 않을까? 그 장면을 상상하면 조그만 왕의 무덤이 거대하게 다가온다. 왕이 묻혀 있던 장소의 벽화를 바라보며 언니와 난 역사적인 장소에 있다는 게 좋아서 계속 “좋다. 정말 좋다.”는 말만 반복했다. 나중엔 무덤 안에 우리와 이집트인 관리인만 남아 있었다. 조용한 관리인은 우리가 한참이나 안 가고 남아 있자 짧은 영어로 설명해 주었다. 

 “입을 여는 의식.” 

 그리고 손가락으로 벽화의 인물들을 차례차례 가리켰다. 

 “오시리스, 투탕카멘, 아이.”

 후에 알았지만 이집트에선 사람이 죽으면 죽음의 신 오시리스 앞에서 ‘입을 여는 의식’을 한다고 믿었다. 투탕카멘 왕이 오시리스 앞에서 ‘입을 여는 의식’을 하는 걸 벽화로 남겨 놓은 것이다. 이집트에선 어느 유적지에 가나 신에 대한 존경심, 경외심을 느낄 수 있었는데 이들이 믿는 사후세계란 꽤나 정교해서 과학적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관리인의 짧은 설명에 투탕카멘 무덤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졌다. 투탕카멘 무덤에서만 한 시간을 꽉 채워 나온 우리는 이집트의 신들을 만나고 온 듯 몽롱하게 들떠있었다. 짧은 시간 동안 투탕카멘 무덤만 본 것은 최고의 선택이었다.

 투어 답게, 택시의 마지막 코스는 기념품 가게였다. 택시 기사는 “기념품 샵에 들릴게.” 말 한마디로 황량한 들판에 서 있는 가건물 같은 곳에 우리를 내려주었다. 투어 가격을 후려친 우리로선 이번에도 입이 삐죽 나와도 할 수 없이 들어갈 수 밖에 없었다. 가게 안엔 돌로 만든 여러 상들이 가득했다. 이집트의 수많은 신이 여기에 다 있는 것 같았다. 크기도 다양하고, 종류도 어마어마했다. 호구 손님들이 반가웠던 가게 주인은 연신 “웰컴웰컴”하며 묻지도 않은 것들을 이것저것 설명해주었다. 언니와 나는 보는 둥 마는 둥 슬렁슬렁 가게를 돌았다. 기념품 가게에 내려준 게 맘에 안들어서 처음부터 살 생각이 없었다. 끈질기게 달라붙는 가게 주인의 시선을 회피할겸 선반을 둘러보는 척하다 그만, 보고말았다. 

 선반 뒤쪽에 짙은 암청색 돌로 만든 까만 고양이가 얌전하게 앉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카이로에서 본 그 고양이 같았다. 몸 앞쪽에 가지런히 두발을 놓고 정면을 바라보는 고양이의 자태에선 고요한 카리스마가 느껴졌다. 이집트에서 기리는 고양이 신, 다산과 풍요를 상징하는 바스테트였다. 그 때까지도 옆에서 지치지 않고 떠드는 가게 주인은 다른 상품을 권유하고 있었다. 나는 절대 아무 것도 사지 않으리란 다짐이 무색하게 가게 주인에게 고양이를 가리키며 물었다. 

 “이건 얼마에요?”


 이집트 여행은 내가 살던 곳의 익숙함은 전혀 찾을 수 없는 모험의 연속이었다. 음식, 옷, 기후, 언어, 풍습 모든 게 낯설었다. 심지어 숫자도 우리가 쓰고 있는 아라비아 숫자(실제론 인도 숫자라고 한다)를 사용하지 않는다. 시내 한가운데 서서 한바퀴를 뱅 돌아도 내가 아는 기호가 하나도 보이지 않는 세계. 처음엔 두려웠고, 이 세계가 날 환영해줄지 우려했지만 모든 게 지나고 보니 알겠다. 이집트는 나름의 방식으로 날 환영하고 있었다. 웰컴웰컴. 으레 하는 말이었지만 사실 때에 따라 그들은 정말로 날 웰컴했다. 

 가는 곳마다 바가지를 써야했다. 내가 외국인의 외모를 지닌 걸 어쩌랴. 시골 구멍가게의 순박한 아낙네까지 과자 가격을 두 배로 부르는 걸 보고 바가지를 씌우는 데에 화는 더 이상 내지 않기로 했다. 대신 그들과 치열한 흥정으로 매번 가격을 원하는 수준으로 깎았다. 서비스가 마음에 들면 박시시(팁)를 더 주었다. 보행자 파란불이 켜졌을 때 자동차가 움직여도 더 이상 무서워하지 않았다. 차는 차의 길을 가고, 사람은 사람의 길을 가면 된다는 걸 이집트에서 깨달았다. 차들이 아무리 투우장의 소처럼 날뛰어도 난 부처와 같은 평정심으로 무단횡단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진짜 아라비아 숫자를 열심히 외웠고, 덕분에 버스를 타거나 물건을 살 때도 제대로 숫자를 읽을 수 있었다. 이집트에 적응하고자 하는 나의 노력은 어떤 낯선 상황에서도 나에게 힘이 되었다. 덕분에 내가 평소에 알던 상식, 습관들은 경쾌하게 깨어졌다. 난 드디어 이집트라는 거대한 물줄기에 기분 좋게 적셔진 것이다. 

 고양이 상은 부모님 댁 피아노 위에 고이 놓여 있다. 그리고 난 이후로 여행 갈 때마다 그 나라나 지역을 상징하는 조그만 상을 기념품으로 사오게 되었다. 지금은 이집트 고양이가 외롭지 않을 만큼 콜렉션이 꽤 모였다. 생각해보면 그 기념품 가게에 간 건 행운이었다. 후에 이렇게 멋진 콜렉션을 그 가게 덕에 얻게 되었으니 말이다. 웰컴웰컴. 아직도 이집트 사람들의 환영인사가 귀에 맴돈다. 더 이상 낯선 상황이 두렵지 않다. 호랑이 굴에 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던가. 바가지를 쓰면 깎으면 되고, 건널목이 없으면 무단횡단하면 된다. 어디서든 당당하게. 그럼 또 다시 이 말을 듣게 될 것이다. 웰컴웰컴. 나를 환영하는 소리, 내가 당신을 환영하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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