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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완성 자서전 Aug 17. 2022

내 인생 개정판

잠시멈춤, 그리고 새로고침



더 이상 거울을 마주하는 시간이 달갑지 않다. 인생의 갖가지 희로애락을 담아내느라 이전보다 빛을 잃은, 그래서 반짝이는 젊음에 가려져있던 결점들을 들켜버린 지금의 내 얼굴을 마주하는 것이 힘들다.


그렇다. 나도 어느새 늙어버렸다.


10대 때는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20대 때는 좋은 직장에 취직하기 위해, 30대 때는 거친 사회 속에서 나의 역할을 다 해내기 위해 치열하게 살았다. 열심히 살다 보니 누구에게나 있다는 빛나는 왕년의 나로도 살아보았다. 그 긴 세월을 살아내는 동안 나름의 우여곡절을 겪으며 울고 웃다 보니 어느덧 불혹의 코앞에 서있는 내가 보였다.


온전히 사랑할 수도, 싫다고 떠나버릴 수도 없는 지금의 나. 어릴 적 꿈꿨던 멋진 나는 어디로 가고, 그냥저냥 한 보통의 내가 되어버린 지금의 나와 마주하고 있다.


어릴 때는 어른들이 한숨 섞어 내뱉던 "난 그동안 뭐하고 살았지.” 하던 말속에 숨은 깊은 아쉬움과 서글픔을 알지 못했다. 하지만 요즘 난 부쩍 그 말속을 어지럽게 헤매고 있다. 무언가가 되기 위해 열심히 살고 있다 생각했는데 결국 그 무언가는 되어보지도 못하고 벌써 이 나이가 되었다는 것이 서럽기만 하다.


자신의 사회적 역할과 위치를 단단히 하며 가정 안팎으로 안정을 다지는 나이, 마흔. 그 마흔을 눈앞에 두고 나는 퇴사를 한다. 직장인의 삶을 사는 동안 수도 없이 꿈꿨던 오늘이지만 막상 닥치니 기쁘지가 않다. 어쩔 수 없는 개인사정 때문이라 퇴사 말고는 다른 방법도 없지만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무엇 때문에 이토록 마음이 무거울까?


아마도, 열심히 살다 보면 그 끝에 무언가가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믿었던 어리석은 착각 때문일 것이다. 누구보다 나의 첫 직장을 아꼈던 나는 그곳에서 사회적으로 성장하는 나를 꿈꿨다. 그게 소위 말하는 성공한 인생이라고 믿었다. 그 목표를 이루는 과정에서 따르는 어려움들은 힘들지만 감수해야 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목적지가 있는 목표나 정량적으로 정의된 목표는 언제든 무의미해질 수 있다는 걸 몰랐다. 나에게 갑작스러운 퇴사가 그러했다. 한 가지 목표밖에 없었는데 갑자기 그 유일한 목표가 사라져 버렸다. 아니, 목표를 가질 수 조차 없는 상황이 와버렸다. 어릴 적 어른들이 하시던 그 말씀이 나를 스친다.


"난 그동안 뭐하고 살았지."


그리고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내가 목표가 아닌 과정을 바라보는 삶을 살았다면 어땠을까? 지금처럼 아쉽고 서글펐을까? 적어도 무언가가 되지 못했다는 것에 허무해하고 있진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애쓴 나를 칭찬하고, 그 시간 동안 성장한 나의 모습을 자랑스러워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퇴사를 하며 잠시 멈춘 김에 내 삶을 재정비하여 지금부터는 목적지가 아닌 걸어가는 길 자체를 위한 삶을 살아보려고 한다.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 보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아는 삶이 왜 더 중요한지 깨달았으니 말이다.


그 변화의 첫걸음으로 앞으로 이어질 글들을 통해 새로고침이 필요한 나의 모습들을 찾아 변화해보려고 한다. 이러한 고민과 노력의 시간들이 내 인생 후반전의 나침반이 되어주리라 믿는다. 내 인생의 후반전은, 전반전보다 더 나은 ‘내 인생의 개정판’으로 써내려 가고 싶다.


그렇게 써 내려가다 보면, 내 인생의 마지막 페이지에 담길 내용을 굳이 미리 정해놓지 않아도, 지금보다 더 행복한 나의 이야기가 담길 것이라 믿는다.



“Though nobody can go back and make a new beginning, anyone can start over and make a new ending." - Chico Xavier

(누구도 처음으로 돌아가 새롭게 시작할 수는 없지만, 누구나 다시 시작하여 새로운 끝을 만들어낼 수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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