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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완성 자서전 Sep 07. 2022

나 너 사랑했냐?



“자긴 내 마음이 이해돼?”


남편에게 물으면서도 그런 질문을 하는 나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졌다. 아무리 가까운 남편이라고 해도 어찌 내 마음을 다 알까.


지난 며칠간 난 이불 밖으로 나오기가 싫었고 자꾸만 멍해지다 순간순간 울컥 눈물을 흘렸다. 이젠 너무 오래된 일이라 희미하긴 하지만 과거 좋아하던 사람과 이별했을 때의 나를 보는 듯했다.



난, 며칠 전 나의 첫 직장과 헤어졌다.


퇴직서를 낸 나를 부러워할 사람들이 많으리라 생각한다. 현생에 치여 하루하루가 고달픈 모든 직장인들의 꿈은 바로 퇴사이니까. 나도 그랬었다. 그만두고 싶었던 날이 하루 이틀이 아니 었고, 남몰래 퇴사하리라 마음먹은 날엔 회사생활이 갑자기 핑크빛으로 변하는 마법 같은 경험도 해보았다.


그런데 난 왜 나의 퇴사가 이토록 슬플까.


내가 나의 첫 직장과 함께한 시간은 햇수로 15년. 그중 3년 반은 개인 사정으로 휴직을 해야 했다. 퇴사를 하게 된 것도 더 이상은 휴직을 연장할 수 없었던 탓이다. 휴직으로 20%는 구멍 난 커리어지만 한 직장과 15년을 함께 한다는 건, 요즘 세상엔 흔하지 않은 일이다. 이직에 뜻이 없기도 했지만 내가 이 회사를 떠나지 않았던 건 그곳에서 일하는 걸 좋아했기 때문이다.



신입사원 오티가 끝나고 집으로 가던 길에 아빠에게 전화를 걸어했던 말이, 그때의 열정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아빠, 나 사장님 되고 싶어.”


그 순수한 열정에 크고 작은 생채기가 생기는 동안 난 누구보다 열심히 일 했다고 자부한다. 누군가는 왜 그렇게 열심히 일하냐. 회사는 그냥 돈 벌러 다니는 곳이다. 말했었다. 열심히 일하는 나를 이용하는 듯한 상사도 있었다. 하지만 누가 뭐라 하든, 날 이용하든 말든, 난 그렇게 일하고 싶었다. 지금 돌아보면 열심히 사는 나 자신에게 취해있었던 것 같다.


이것이 바로 나의 퇴사가 슬펐던 첫 번째 이유이다. 무언가에 이토록 큰 열정을 쏟아부을 수 있는 나 자신과의 이별을 받아들여야 했기 때문이다.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지금의 나는 더 이상 예전처럼 내가 좋아하는 일을 최우선 순위에 두고 가족들의 희생을 연료 삼아 나의 열정을 태울 수는 없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어느 지점에서든 균형을 찾아 내 인생의 제2막을 살아내야 할 것이다.



나의 퇴사 소식을 전하기 가장 힘들었던 사람은 단연 부모님이었다. 지금의 나를 만드는 데 가장 큰 기여를 하신 분들이며, 내가 좋은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는 것을 누구보다 뿌듯해하셨을 분들이니 말이다. 부모님의 희생을 포함하여 몇십 년 간 여러 형태로 쏟아부은 노력들이 한순간에 무의미해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부모님께 죄송했고, 갑자기 아무것도 아닌 내가 되어버린 듯한 느낌이 들어 허무했다. 열심히 만들어온 내 자신의 성장이 여기에서 멈추는 것 같은 마음이 나의 퇴사가 슬펐던 두 번째 이유였지 싶다.



내가 회사를 떠나 있었던 시간 동안 회사에는 많은 일들이 있었고 내가 퇴직 프로세스를 진행하려고 했을 땐 인사팀에 아는 사람 하나 없었다. 회사 내부 시스템에 접속할 수 있는 권한도 없어진 지 오래라 나의 퇴직 프로세스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도 모른 채 인사팀의 연락만 기다리던 어느 날 메일이 도착했다.


퇴직 프로세스가 끝났다는 말과 함께 인사팀 담당자가 보낸 메시지


내가 누구인지도 모를, 일면식도 없는 그야말로 인사팀의 아무개로부터 수고했다는 말을 듣는 순간 많은 생각이 스쳤다. 개인 사정에 따른 피치 못한 선택이었지만 퇴사를 하며 느낀 아쉽고 억울한 마음을 누군가가 위로해주길 원했었다. 그동안 수고했다는 말을 찔러 절 받기라도 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메일을 받는 순간 나에게 필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는 걸 깨달았다.


나에게 필요했던 것은, 과거의 나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한 나 자신과 아름답게 이별하고, 현재의 자리에서 또 다른 모습의 최선을 다할 나에게 스스로 격려를 해주는 것이었다는 것을. 이렇게나마 이 글에 어지러운 내 마음을 솔직하게 담아내고 나니 다행히도 새로운 자리에서, 새로운 방식과 모습으로 인생의 제2막을 살아갈 마음의 준비가 된 것 같다.


마지막으로,

오랜 시간 함께해준 나의 첫 회사야, 내 청춘을 너에게 두고 왔으니 힘내서 계속 앞으로 나아가 주길. 함께 걸어준 선배동료들, 그리고 언제나 나의 꿈을 지지해준 가족들께 감사인사를 전하며 이 글도, 내 인생의 제1막도 마무리하고자 한다.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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