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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완성 자서전 Sep 07. 2023

다 하려다 아무것도 못하게 되는 아이러니

이 동네, 저 동네 돌아다니며 처리해야 할 일들로 가득했던 어느 토요일이었다. 바쁜 아침을 보내고도 일정이 빠듯해서 점심은 아무 데서나 간단히 때우자 하며 대로변의 어느 낯선 식당으로 들어갔다.


식당의 입구엔 영어로 (참고로 내가 사는 곳은 미국이다), Chinese(중식), Japanese(일식), Thai(태국식)라고 쓰여있었고, 한편에는 한국어로 ‘중화요리’라고도 쓰여있었다.


혼란스러운 간판으로 우리 가족을 맞이한 문제의 식당


‘이 식당, 도대체 정체가 뭐지?‘


갸우뚱하며 큰 기대 없이 들어갔는데, 생각보다 식당 규모가 꽤 커서 내심 안심하며 자리에 앉았다. 입구에 한글로 ‘중화요리’라고 쓰여 있었으니 한국식 중국음식도 있겠지 싶어 메뉴판을 뒤적여보니 무려 삼선짜장과 삼선짬뽕이 있었다.


날 설레게 했던 메뉴판

기대에 부풀어 주문을 하고 잠시 앉아 있으니 센스 넘치는 서버분께서 짜장면과 짬뽕을 네 명이서 나눠먹기 좋게 각각 두 그릇으로 나눠 가져다주셨다. 먼저 나왔던 김치도 꽤나 한국 맛에 가까웠던 터라 짜장면과 짬뽕에 대한 기대가 점점 높아졌다.


그렇게 아이들이 먹을 짜장면부터 비비기 시작하는데 어디선가 덜 볶아진 춘장의 짠내가 풍겨왔고 면을 비비면 비빌수록 분명해졌다.


‘아, 이거 한국식 짜장면이 아니네.’


다행히 아이들은 투정하지 않고 먹어주었지만 덜 볶아진 춘장과 정체 모를 낯선 면의 조합에 난 크게 실망했다. 짬뽕도 역시나 크게 다르지 않았다. 겉모습은 꽤나 흉내를 잘 냈지만 맛과 면의 식감은 한국 근처에도 오지 못한 먼 나라의 맛이었다.


짬뽕인줄 속을 뻔했던 정체불명의 국수


꾸역꾸역 먹고 나오는데 언짢은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다. 정체가 뭘까 하며 들어갔던 이 식당에서 내가 얻은 답은 이 식당은 정체가 없다는 것이었다. 장사가 잘 안 되어서였을까? 더 많은 사람들이 올 수 있도록, 누구든 와서 뭐든 먹을 수 있게 만든 식당이 결국 아무도 만족시킬 수 없는 곳이 되어버린 게 아닐까?


식당에 대한 언짢은 생각들 끝에 문득 나도 이 식당과 같은 삶을 살아온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스쳤다.


주변 모든 이들에게 인정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 누구에게든 다 친절해야 사랑받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 남들이 하는 건 뭐든 다 해야 뒤처지지 않을 거라는 생각…그 생각들 속에 정작 내가 무엇을 바라고 잘하는지에 대한 고민은 빠져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목적지도 방향도 모른 채 열심히 노를 젓는 동안 스스로를 너무 힘들게 했었다.


이제부터라도 달라져야 한다. 이제 더 이상 다 하려다 아무것도 못하고 있을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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