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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치치 Oct 27. 2024

치매와 사랑에 대하여

내가 자주 보는 환자 유형은 치매를 앓고 있는 사람이다. 치매를 유발하는 원인은 정말 다양하지만, 특히 흔하고 사람들이 잘 알고 있는 건 알츠하이머병으로 인한 치매다. 이러한 유형은 기억력이 두드러지게 저하된다.


오늘 만난 환자는 알츠하이머병을 앓고 있는, 전형적인 기억력 저하가 눈에 띄는 사람이었다. 남편과 함께 검사실에 들어온 환자는 마르고 병약해 보였고, 검사자가 질문할 때마다 남편을 뒤돌아보며 의지하는 모습이었다. 검사를 할 때도 “기억 안 나요”, “기억 하나도 안 나요”라는 말만 반복하면서 방금 들었던 내용도 기억하지 못했다. 마치 뒤돌아서면 모든 것을 다 잊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남편은 “병이 진행되는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방금 자신이 어떤 말을 들었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해요”라고 체념한 어조로 아내에 대해 설명했다. “우리 한 시에 병원 가야 해요”라고 남편이 아침부터 아내에게 말해도 “우리 지금 어디 가?”라고 여러 번 되묻는다고 한다. 남편은 혼자 외출도 하지 못하고, 길을 잃을까 봐 집주소를 적은 팔찌를 만들고 경찰서에 인적사항도 미리 등록했다는 이야기도 덤덤하게 들려주었다.


며칠 전에는 집을 비울 때 잠깐 외출한다고 말을 했는데도 환자가 이 말을 잊었다고 한다. 집에 돌아갔더니 남편이 마치 몇 년 동안 집에 돌아오지 않은 것처럼 아내가 분노를 터뜨리며 소리를 질렀다고 한다. 그 순간 남편의 마음속에는 상실감과 무력감이 가득했을 것이다. 사랑하는 아내가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며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


아마 남편이 없는 동안 환자의 마음속에는 두려움만 존재했을 것이다. 분명 옆에 있었던 남편이 정신을 차려 보니 없어졌다고 느꼈을 것이고, 빈 집에 혼자 가만히 앉아 있다는 사실이 공포스러웠을 것이다. 불안한데도 전화를 걸 수도 없으니 그저 초조함에 혼자 몸부림쳐야 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남편은 나갈 때마다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여보, 저 지금 마트에 물건 사러 가요. 1시간 안에 돌아올 테니 걱정하지 말고 기다리세요. 많이 사랑합니다”라는 내용을 담은 편지를.


신기하게도 이후 환자는 남편이 외출하고 돌아와도 크게 화를 내지 않는다. 여전히 환자는 남편이 외출했다는 사실을 잊었을 것이고, 여전히 불안했겠지만, 집 안의 이곳저곳을 훑어볼 때마다 쪽지가 눈에 보였을 것이고, 남편의 마음을 느꼈을 것이다.


나는 이 이야기를 들으며 감히 가늠할 수 없는 아내에 대한 깊은 애정을 느꼈다. 사랑이란 무엇일까? 수십 년을 함께 살다가 치매에 걸린 아내를 간병하는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 그럼에도 여전히 아내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남편의 마음에는 어떤 감정이 담겨 있을까?


결국 질병이라는 재난 속에서도 사람을 살게 하고 안정감을 느끼게 하는 것은 사랑과 지지라는 것을 깨닫는다. ’이런 사랑의 힘이 환자에게 얼마나 큰 위안을 주었을까?‘ 를 생각하며 사랑이 주는 힘이 얼마나 놀라운지 다시금 느끼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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