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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민 Jul 31. 2023

[지금 여기] 도심산업생태계는 무너질 것인가?

나를 과정에 놓아두기 실험 편_ 을지로, 청계천, 그리고 인쇄골목


청계천٠을지로일대

열린 공장, 투어를 다녀와서

하루하루 빠르게 변해 가고 있는 청계천٠을지로 일대다그동안 돌아본 재개발٠재건축 현장 중에서 체감 속도는가장 빠른 것 같은 기분이다. 서울 도심이고 시기나 상황이 맞물려서 더 그렇게 느껴지는 것 같다. 이럴 때 일 수록 더 관심을 가지고 새겨두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2018년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가 활동을 시작할 때부터 겉핥기식으로나마 옆에서 혹은 멀리서 지켜보았었는데 이젠 가까이 다가갈 시기가 온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이곳 사정을 가장 잘 아는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의 <열린 공장 투어>를 다녀왔다. 그동안은 주로 입정동-산림동 중심으로 진행해 왔으나 이번에는 인쇄소 골목도 포함시켜 진행했다. 인쇄소 골목도 재개발이 예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열린 공장> 투어 홍보 게시물, 출처: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 페이스북  

평소 독립출판물을 만들어 왔기 때문에 인쇄소를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나 투어가 있으면 관심 있게 보는 편이었다. 2022년 10월 독립출판물 서점커넥티드북스토어에서 진행했었던 독립출판 수업을 들었던 것도 인쇄소 골목에서 수업을 진행하고, 인쇄 과정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연장선으로 <열린공장투어>의 인쇄소 골목 투어는 도심산업생태계로써 인쇄업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것이었다. 공정별 인쇄소를 방문하고, 사장님들의 이야기를 듣고, 인쇄업의 현재 상황에 대해서도 들어보았다. 더불어  “왜 보존되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한 판단은 말로 100번 설명 듣는 것보다 현장에 직접 가서 보고 느껴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임을 다시금 확인했던 시간이었다.


수표동 공구유통상가 및 을지로 노가리골목 -> 입정동철공소 골목 -> 산림동 도심제조업 밀집지역에서는 서울도심 재개발과 산업생태계 파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생각해 볼 수 있었고, 인쇄소 골목에서는  청계천٠을지로 일대에 방문하는 시민으로서, 혹은 직접적 인연관성을 가지고 일을 하는 실무자로서, 혹은 인쇄소나공장을 운영하는 당사자로서, 같은 업종에 종사하고 있지만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서 각각 다른 입장과 상황들이 있다는 것을 생각을 해볼 수 있었다. 평일 업무시간 이 일대는 아주 정신이 없는데, 그래서인지 집중력은 최고로 오른다.  (삼발이, 자전거, 자동차의 이동과 사람의 이동이 동시에 이루어지므로)

공구상가 - 인쇄소 골목 투어 모습,  본인 촬영

현재, 청계천-을지로 일대에선 무슨 일이 있나?

청계천-을지로 일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는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가 가장 잘 알고 있다. 다양한 주체가 이 일대에 머물고, 활동하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시개발과 변화에 목소리를 내는 건 지극히 일부였다. 서로 다른 상황과 입장이 존재하기에 그 어떠한 행동도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는 어렵다. 다만, 지금 여기에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으로 나뉠 뿐이다. 자세한 내용은 청계천을지로연대 페이스북을 통해 소식을 접할 수 있다.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cheongyecheon )

“과거와 현재, 미래가 공존하는 청계천-을지로 일대는 최근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습니다. 이 지역은 옛 골목과 도시 조직이 서울에서 가장 온전히 남아있는 장소이자, 근현대 건축물들이 즐비하게 남아있으며 그 안에서 수십 년 동안 실핏줄처럼 연결된 도심산업생태계를 형성하고 오래되고 단단한 노포들과 이를 만들어 온 소상공인들이 존재하는 공간입니다. 또한 이곳을 찾아온 수많은 시민들과 예술가, 제작자와 크고 작은 기업들이 이들 상인과 함께 가치들을 만들어 온 공간으로 그 자체로 생활문화유산이며 도시의 다양성을 풍부하게 간직한 곳입니다.

하지만 지난 2018년 청계천-을지로의 세운 재정비촉진지구 3 구역인 입정동에선 400여 개의 상인들이 순식간에 쫓겨나기도 했으며 2019년 초 서울시의 재개발 전면 재검토와 2020년 초 서울시의 대책발표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계속되는 개발의 압력 속에 수십 년 동안 터전을 만들어 온 상인들은 쫓겨나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2021년 이후부터 서울시는 기존 도시재생과 보존에서 ‘녹지도심생태’를 앞세운 사실상 초고층 개발로 정책방향을 급격하게 전환함으로써 이 지역이 파괴되고 있는 속도와 정도는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본 투어는 원래 입정동, 산림동을 중심으로 답사해 왔으나, 이번 투어에서는 도심산업생태계의 역사를 간직한 곳이자 여전히 현재진행형의 공간인 청계천-을지로 일대 중 인현동까지 포함하여 특별하게 FDSC와 인쇄소 특집으로 진행합니다! 을지로를 사랑하는 시민들 을지로에서 인쇄하는 과정을 알고 싶으신 분들 함께해 주세요!

* 답사 코스
을지로 3가 역 4번 출구 -> 수표동 공구유통상가 및 을지로 노가리골목 -> 입정동 철공소 골목 -> 산림동 도심제조업 밀집지역 -> 인쇄소 골목 이동

* 주요 답사 현장 소개(이번주는 특별하게 인쇄 골목 특집!)

1. 역사문화유산 현황 : 지역 내 근현대건축자산(대진정밀 건물, 세운상가 등), 서울미래유산(입정동 철공소 골목, 을지로 노가리 골목 등), 전통시장(청계천 기계공구상가)
2. 골목 : 오래된 도시조직을 간직한 곳이자 도시를 이용해 온 사람들의 특징을 간직한 공간
3. 작업장 별, 작업장 간 답사 및 기술장인 : 개별 작업장 및 기술장인 인터뷰 등, 도심산업생태계로서 작업장 간 네트워크 답사, 인쇄소 (인타임, 효성 등 방문 예정)

* 투어 진행 :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는 세운 재정비촉진지구, 수표도시환경정비사업 등의 이름으로 재개발될 위기에 처한 청계천-을지로를 지키고자 2018년 말 결성된 예술가, 디자이너, 메이커, 연구자, 시민들의 모임입니다. 우리는 무분별한 재개발로부터 이곳의 가치를 기록하고 알리고 지킬 수 있도록 지역의 상인들과 함께 활동하고 있습니다. 열린 공장 : 청계천-을지로 투어-인쇄소특집 열린 공장 투어! 이번에는 5 세훈 시장님이 다 철거하겠다는 인쇄소 골목을 FDSC 디자이너들과 방문합니다!

[내용출처: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 인스타그램, <열린 공장 투어> 모집글]

'낙후되었다'의 의미는 무엇인가?

낙후
기술이나 문화, 생활 따위의 수준이 일정한 기준에 미치지 못하고 뒤떨어짐.
[내용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청계천٠을지로 일대를 바라보는 부정적 시선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그중에서도 나는'낙후되었다'라고말하는 부분에 주목해보려 한다. 가끔 '낙후'의 기준은무엇이고, '낙후'라고 언급하는 주체는 누구이며, 왜 '낙후'라고 밖에 말할 수 없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곤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에서는 낙후라는 단어를 "기술이나 문화, 생활 따위의 수준이 일정한 기준에 미치지 못하고 뒤떨어짐"으로 정의하고 있었다. '청계천٠을지로 일대가 그런가?'를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알쏭달쏭하다. 명확하게 확신하지 못하겠다. 오랫동안 사람들이 드나들었고, 여전히 드나드는 곳이라 현시점에 맞게 과정이 맞춰졌을 것이라는(그렇지 않으면 도태된다) 생각이 어느 정도 들었다. 작업환경은 개선이 필요하지만그들 스스로에게 적합한 방식으로 적용해서 바꾸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도 들고. 여러모로 따져봐야 해서 확신하기 어렵다.


객관적인 기준에서 설명될 수 있는 부분인가? 가능하다면 어떠한 기준을 세울 수 있는 것일까? 그 기준은 누구로부터, 무엇으로부터 파생되었는가? 무엇보다 '낙후'되었다고 말하는 사람은 그 지점을 충분히 경험하고느낀 사람일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언젠가부터는 '낙후되었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보이면, 그 사람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에 대해 살펴보게 된다. 개인적으로 '낙후' 그 자체로 보이는 상태보다 그것을 바라보는 태도에서부터 출발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다.  '낙후되었다'라고 말하는 그곳에서 창출되는 가치와 의미, 영향력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크다면, 그것을 '낙후되었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싶어서다. 무엇보다 낙후되기까지의 과정을 재개발을 앞두고 있는 현장에서도 목격할 수 있었는데 '낙후'의 상태는 사람들이 그 대상지를 어떻게 생각하고, 대하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오래돼서 낡은 것과 낙후된 것은 엄연히 다르다.


많은 사람들이 재개발로 확정되어 잠시 보류 중인 땅에쓰레기를 버린다. '재개발 대상지'라 하더라도 현재 시점에서 자신들이 삶고 있는 터라고 생각한다면 무책임하게 쓰레기를 버리고 내버려 둘까? 이 지점을 참지 못하는 누군가는 상대방에게 욕설을 퍼부으면서도 깨끗해지길 바라며 주체적으로 관리할 것이다.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리하는 사람 사이에는 결국, 대상을 대하는 '태도'의 차이가 존재한다. 그러니, 청계천٠을지로 일대를 재개발해야 한다는 의견에서 낙후되었기 때문에 사라져야 한다는 논리에서 벗어나 사라져야함에 대한 정당성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다.  '낙후'라는 요소는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형성되어 있는 청계천٠을지로 일대 도심산업생태계의 역할٠ 기능 ٠의미를 부정하고 덮어버릴 만큼 강하게 작용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것이 문제라면, 국가٠정부٠시٠구 차원에서 보완해 주고, 지원해줘야 할 것이 아닌가? 낙후되었다고 재개발해서 도심산업생태계로써의 역할을 같이 지워버린다면, 그 어떤 산업생태계도 지켜내지못할 것이다. 한편으로는 왜 유독 그런 부분들이 청계천٠을지로 일대에 가혹하게 작용하는 것인지도 궁금하다.


이대로, 도심산업생태계는 무너질 것인가?

청계천٠을지로 일대의 대체 불가능한 연결성과 시간성

청계천٠을지로 일대 도심산업생태계의 가장 큰 장점은 공정별로 역할이 분배되고,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 연결고리는 쉽게 대체될 수 없으며 연결고리를 만들어가기까지의 시간성을 고려해 봐도 생태계를 파괴하는 것 자체가 손해다. 보완٠개선 형태의 점진적변화가 아니라 삭제٠이주 형태의 급진적 변화는 도심산업생태계를 파괴하고 회복 불가능한 상태로 만들어 버릴지도 모르겠다.


지금 여기 있는 가게들은 40년 넘은 곳이고,
청을련 연구자들이 연구했을 때 제조하고
유통이 다 연결되어 있어요. 우선적으로
우리가 생각했을 때 제조만 중요한 게 아니냐.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데, 만드는 사람도
중요하고, 유통하는 사람도 중요해요.
재료를 살 수 있고, 유통도 하고, 수리도 하는, 다 엮여 있기 때문에 하나가 무너지면
전반적으로 다 망가지게 되는 거죠.
생태계 파괴 실험이라는 유명한 실험이 있는
신체 항상성이라는 것도 어느 정도 피를 흘리면 괜찮지만 너무 많이 흘리면 사람이 죽잖아요.산업 생태계도 마찬가지로 5% 파괴될 때는 괜찮은데, 15% 이상 깨지면  파괴되거든요.

사실 여기에도 그렇게 되고 있는데.
뒤에 보시면 컨테이너 건물이 있죠?
법적으로 이런 것을 해야 한다는 건 없어서
원래 안 해도 되는 것인데 대안을 만들었어요. 우리나라는 재개발을 하는 과정 자체가 박정희 때 시작을 했기 때문에 세입자에게 그 어떤 보상이 없던 나라인데, 사람들이 투쟁도 하고
죽다 보니까 대안이 생기기 시작했고, 이것 같은 경우는 공구상가세입자에게는 처음으로
대안을 준 것이에요. 여기서 1년 정도 영업을 하고, 건물을 올리고 나면 200호 정도
다시 입주할 수 있는 상황 이에요.

일부 공구상가세입자에게는 임시방편으로 대안이 마련되고 있지만, 그 전제는 재개발이다. 재개발로 존재하고 있던 생태계가 무너지고 있고 있다. 그 사이 누군가는 남고 누군가는 떠났다. 남아 있는 사람들의 미래는 제대로 보장되어 있는 것일까? 이미 무너져 버린 생태계 안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잠시 유보된 기간 동안 살아남아 있을 수 있는 것일까? 이대로 도심산업생태계는 무너질까? 어떻게든 유지되는 것일까? 그 끝은 어디로 향해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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