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지로•청계천 일대 재개발을 앞두고 많은 사람이 모였다 흩어졌다를 반복했다. 관심 있는 대상과 정도에 따라 참여도, 무게감, 표현방식, 포용되는 범위는 너무 달랐다. 지역의 문제를 다양한 층위의 사람들이 관심 가지고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긍정적 현상이라고 생각하며 흥미를 느꼈다. 하지만 때로는 하나로 모이는 구심점이 없어 파편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서 '실질적인 문제가 해결되거나 개선되는 것이 아닌 논의해 보는 정도에서만 끝나는 게 아닌가?'라는 지점에서는 늘 염려되었다. 이 부분은 사실 개인적으로 활동하며 연구나 작업을 할 때도 마찬가지로 부딪히는 어려움이기도 했다. 실질적인 문제가 해결되기 위해서 요구되는시간, 비용이 있고 실행을 위해 사람이 지속적으로 모여야 하고 이러한 과정들이 잘 진행될 수 있도록 상황도 맞아떨어져야 한다.
이처럼 제대로 조건이 갖춰지기까지는 쉽지 않다는 것을 안다. 그러니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하는 것이 낫고 어떤 방식으로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시도와 움직임은 필요하다. 하지만 느슨하게라도 공통적으로 추구하는 방향성이나 목표가 설정되어 있어야 실행을 할 수 있는 구체적 계획을 세우고 그것이 실천으로 이어질텐데 그러지 못하는 것 같다는 마음은 사라지지 않는다이 지점은 활동의 당사자가 아닌 관찰자로서 위치해 있기 때문에 느껴지는 부족함인 것이고 실제로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 (실행을 염두에 두고 준비를 해오는 팀도있기 때문에 이 의견은 지극히 개인적이다.)
을지로•청계천 일대를 대상으로 논의된 많은 의견 중 초기 계획과 완벽히 일치하진 않더라도 계획을 계획으로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 실행으로 구현해 나가는 팀이 있다. 바로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다. 어떤 목표를 세우고 실행해 나가는 과정을 옆에서 직접 보고참여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설명을 구체적으로 할 수는없다. 다만 이들이 주체가 되어 운영하는 투어, 워크숍, 에 참여하거나 혹은 기사를 통해서 어떤 성과를 이끌어내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재개발로 인해 사업장을 옮겨야 하는 소상공인들이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지 않고 재정착하여 영업을 이어갈 수 있도록 상생지식산업센터를 건립하는데 큰 힘을 기울였다. 2020년에는 서울시와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산림동 상생지식산업센터 건립사업 공동사업시행 협약’을 체결했고 90억 원을 투입해 세운 5-2 구역 내 LH 소유 땅에 공공임대상가를 짓고 2023년 개관식을 진행했다. 이후 세운 재개발지구 철거 세입자들에게 우선적으로 공급하며 건물 1~5층에 세운 3구역 등에 있던 제조업체 일부 입주했다.
박은선 서울과학기술대 IT정책대학원 연구교수는 “현행 도시정비법에 따르면 재개발 사업 추진 시 임대상가를 주지 않는다. 상생지식산업센터는 도시정비법 개정을 추진하는 데 중요한 사례다”라고 말했다. 현행 도시정비법은 재개발과 관련해 임시상가 및 임대상가 설치에 관한 규정은 있으나 의무사항이 아니기 때문에 현실에서 거의 추진되지 않고 있다. 그러다 보니 재개발이 진행되는 지역의 상가 세입자들은 강제퇴거를 당하면서 속절없이 일터를 잃게 된다. 인근 지역으로 이주하더라도 개발 과정에서 이미 주변 임대료가 상승하기 때문에 폐업을 선택하는 사례도 많다.
박은선 교수는 “재개발 지역에서 상업이나 제조업을 영위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영업을 지속적으로 이어가고 상권과 일자리를 지킬 수 있도록 개발 주체가 개발 구역 내에 임대 영업장과 재정착 과정에서 임시 영업장을 제공하는 방향으로 법이 개정돼야 한다”라고 말했다. 상생지식산업센터는 세운지구 소상공인들이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 등 시민사회와 함께 서울시와 중구청에 끈질기게 요구해 얻어낸 결과다.
30년 넘게 세운지구에서 제조업체를 운영해 온 조무호 태광정밀 대표(세운 3-2 구역 비상대책위원장)는 “2018년 강제퇴거가 진행된 재개발 첫 사업장인 3-1·3-4·3-5 구역의 경우 세입자들은 그냥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청계천을 떠날 수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싸워서 얻어낼 건 얻어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회원들을 설득하면서 서울시와 중구청을 찾아다니며 공공임대상가 설치를 요구했다”라고 말했다. 세운지구 소상공인들은 재개발에 반대하며 청계천 관수교 앞에서 1년 넘게 천막 농성을 이어가기도 했다. 홍영표 한국산업용재협회 서울지회장은 “상인들이 순번을 정해 돌아가면서 2019년 12월 7일부터 412일간 먹고 자며 농성을 이어갔다. 공공임대주택은 그 과정을 통해 얻어낸 것이기도 하다”라고 말했다.
[내용출처: 2023년 7월 31일 자 경향신문, 세운상가에 소상공인 상생공간 탄생]
이를 계기로 이후에도 계속되는 세운상가 일대 재개발 구역 소상공인들에게 임시영업장을 마련해주고 영업을 지속할 수 있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다만 정말로 '임시'적인 성격이 강한 공간을 마련하는 것뿐만 아니라 '운영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세부적인 논의는 더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2023년에 개관한산림동 상생지식산업센터의 경우에도 임대료 상승으로 공실이 발생하는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이러한부분에서 추가적인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 안근철 활동가는 “지속된 개발로 기존의 기술 공동체가 와해가 됐다. 이런 상황에 대해 항의했더니 생긴 게 세운 5 구역 부근의 ‘상생지식산업센터’인데 값비싼 임대료를 감당하기도 힘들어 공실이 발생하고 있다. 서울시에서는 건물만 지어놓고 운영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 운영이 원활하게 되고 있지 않은 상황이다”라며, “기술자들은 기존의 일터를 잃고 싶지 않아 한다. 부득이하게 낙후 지역에 대한 개발이 이루어진다고 해도 기존 입주자들이 그 지역에서 계속 일할 수 있는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내용출처: 2025년 11월 27일, 소통부재한 서울시 개발정책, 서울문화투데이]
** 상인들의 지식상생센터 입주 이후 상황에 대해 참고해서 볼 만한 기사
1) 세운상가에 소상공인 상생공간 탄생, 2023년 7월 31일, 경향신문
2) 소통부재한 서울시 개발정책 종묘와 세운지구 기술노동자들,2025월 11월 27일, 서울문화투데이
3) 상생이라더니 비싼 임대료, 안전 우려 속 방치된 세운상가 상생센터, 2025년 8월 24일, 경향신문
그리고 여기 또 하나의 주체의 예술가와 건축가들이 있다. 앞서 이야기했던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와는 다른 맥락과 방식으로 풀어나가며 활동하고 있다. 을지로•청계천 일대가 이들에게도 주요한 삶의 무대이자 활동공간이기에 지금 진행되고 있는 재개발은 이들에게도 영향을 주고 있다. 재개발로 획일적으로 변하는 도심에서 예술가들이 어떻게 더 정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수 있을지, 각자의 활동 영역에 따라 관계되어 있는 사람과 공간을 활용해 긍정적인 영향력을 줄 수 있는 공간을 조성할 수 있을지 논의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생겼다. 그래서 이들은 또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하고 있는지, 궁금하여 총 3번 워크숍에 참여해 보았다. 개인적으로는 예술가의 생태계를 아직 잘 모르기 때문에 이들이 시도하고자 하는 실험을 명확하게 이해하지 못했다.
더 나아가 이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들으면서는 변하는 을지로•청계천 일대의 생태계에 대한 고민이라기보다는 변하는 생태계 안에서 예술가는 어떤 역할을 하고, 예술가 커뮤니티를 어떻게 잘 연결해서 시너지 효과를 내고, 그 효과를 통해 도시를 살아있게 만들 것인가? 하는 '예술가로서의 역할'에 좀 더 집중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내가 잘못 이해한 것일 수도 있다.) 예술가로서의 역할은 꼭 을지로•청계천일대가 아니어도 발휘할 수 있는 곳이 많을 텐데 왜 을지로•청계천일대일까? 아니 그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왜 을지로일까? 또 이들의 이야기를 듣는 내내 이번 글의 대주제이기도 '지금 논의되는 것들을 정말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지울 수없었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계획이 계획으로서만 끝날 것이 아니라 실현가능한 방식으로 나아가야 서로 다른 주체가 서로 다른 활동을 하더라도 진짜 변화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 의문은 여전하고 그 의문이 계속되다가 이렇게 글을 쓰게 되었다. 예술가와 건축가가 모여 시도하는 실험을 제대로 이해를 잘 못하고 있기에 예술가들의 실험에 대한 내용은 고대웅작가의 글을 빌려 공유하고자 한다.
건축가와 예술가가 그려나갈 도시 EP1. https://brunch.co.kr/@talesofthetiny/200
건축가와 예술가가 그려나갈 도시 EP2. https://brunch.co.kr/@talesofthetiny/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