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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창선 Sep 12. 2023

자두향 조직문화는 어떻게 만들어지나

조직문화는 회사의 모든 것이 될 수 없습니다.

이게 그 우리가 자주 하는 오류가 있어요. 추상적인 개념에 너무 심취해버리는 거지. 그도 그럴 것이 추상적인 개념들은 몰캉몰캉해서 수많은 고민들을 담을 수 있거든요. 정해진 형태가 없다보니 내 욕망의 형태대로 조작할 수도 있습니다. 메타몽처럼. 내 욕망을 따라가는 거라고. 


물렁물렁



그러다보면, 이런저런 고민을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전설속의 어떤 '황금열쇠'처럼 여겨지기도 해요. 브랜딩이란 단어도 그렇고 조직문화란 단어도 그러합니다.






사실, 이 두 개념은 결과론적인 개념이거든요. 


두 개념 모두 '한다'의 동작동사가 아닌 '그러한 상태다' 라는 상태동사가 어울리는 단어입니다. <브랜딩을 한다~ 조직문화 활동을 한다~> 이런 말들을 하는데... 이게 좀 이상한 게 있어요. 뭔가를 '하기' 위해선 그 동작과 개념이 특정되어야 해요. 하지만 조직문화...를 어떻게 해요..?....





근데 정말 많은 회사에서 '일 외적으로 조직문화 활동을 따로' 하더라고요. 




한 번 들어보세요. 


모 회사는 무슨 데이를 만들어서 커피를 마시고 케익을 노나먹으며 최근 넷플릭스 뭐봤는지 얘기합니다. 4,5명이서 1,2시간 정도 카페에 가서 하하호호 떠들고 다시 들어와요.
또는 넓은 로비를 만들고, 빈백을 놔둔 후 누구든 자유롭게 일하다 쉴 수 있어요. 대화도 
또는 사탕과 포스트잇 조그마한 뱃지같은 걸 나눠주면서 '굿커뮤니케이션' 캠페인을 하더라고요. 뱃지에는 '웃으며 인사해요' 라고 써져 있었습니다.
어떤 곳은 영화를 같이 보러가는데 컬처데이라고 하더라고요. 영화를 봄으로써 조직구성원의 단합을 다지고, 같은 대화거리를 만드는 게 목적이래요. 
어떤 회사는 구성원 개개인의 건강을 위해 샐러드를 시켜주고, 피트니스 등록비용을 지원해줍니다. 이건 그냥 자기계발 지원금과 비슷한 개념이죠?
야자타임하는 곳도 있었어요. 월에 한 번 야자타임을 하면서 서로 허심탄회하게(누구 기준에선진 모르겠지만) 서로의 고충을 털어놓는 시간이래요. 대부분은 '야 너 ㅋㅋㅋㅋ 아..죄송해요.ㅋㅋㅋ 못하겠어요.' '와하하하 우리 막내 과감하네?! 어? ㅋㅋㅋㅋ' 이런 식의 대화가 하하호호 오고가요. 
MZ세대들만 모아서 우리 회사 구성원들 인터뷰를 찍고 재밌는 콘텐츠를 기획해보라고 하는 조직문화 활동도 있었어요. MZ세대가 상사 일일체험을 하는 것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벽을 허문다고 하더라고요.



다 좋아요. 이런 활동들도 필요합니다. 캠페인과 프로모션은 전파에 큰 영향을 끼치거든요. 하지만 이걸 한 번 생각해보세요.




조직문화는 사전적 정의이고, 문화가 드러났다 드러나지 않았다 정도를 규정할 수 있지만 이건 모두 상태에 불과합니다. 조직문화를 이루는 건 너무도 복합적이잖아요. 


과자가 제때제때 공급되는 탕비실 복지부터, 지급 되는 장비, 화장실 청결상태, 전등이 몇 개 나가버렸는지 이런 위생요소부터 구성원들의 성격들, 인성, 일하는 방식, 실제로 낸 성과같은 액션과 아웃풋을 비롯해 세대의 변화, 채용트렌드, 브랜드이미지와 같은 외적요소들까지... 회사의 분위기를 결정하는 것은 정말 수십가지가 넘는 조건이 있습니다. 


아...머리아파..


위에서 말한 조직문화 활동이란 건 대부분 '복지'요소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거나, 개인적 라포를 형성하거나, 콘텐츠를 만드는 정도의 액션이에요. 우리가 집중해야 할 건 따로 있다고 생각해요. 


'일' 이죠.


일하러 모였고, 일하는 곳이고, 일로 성장하는 곳에서 일 자체가 비합리적이고 그게 내 성장과 가까이 있지 않다면 함께 오펜하이머를 보든 탑건을 보든 이게 뭔 소용이겠어요. 아니 사실 영화는 내 돈주고 봐도 돼요. 피트니스는 내 돈주고도 잘 나가지 않습니다. 웃으며 인사해요 라는 뱃지를 차고 다닐 사람은 없습니다. 카페에서 수다떠는 건 굳이 회사에서 지정해주지 않아도 개인적으로도 기프티콘을 못써서 안달입니다.


조직이 다뤄야할 문화의 본질은 '일'에 있어요. 카페에선 하하호호 하다가 돌아와서 '어이 제임스, 기획안 피드백드릴게요' 하면서 제임스를 조져버리면 방금 먹은 프라푸치노가 어디 소화나 되겠어요? 


한 달 내내 이유도 모른 채 일을 엎어버리고, 이상한 걸 끊임없이 시작하는데... 몇 개월이나 지나서야 '사실은 이래서였다' 취중진담을 털어놓는 김동률이 되어버리면 구성원들이 '아 그랬구나' 하면서 아련한 표정으로 끄덕일까요.


아..그래서 그때 팀장님이...



이게 사실... 조직문화를 바꾸고 싶어요. 라는 의뢰의 뒷면에는 두 가지의 욕망이 혼재되어 있더라고요. 하나는 리셋증후군이고, 하나는 문화 자체를 유흥으로 바라보는 시선이랄까요. 


먼저 리셋증후군은 이래요. 이게 점점 조직이 커져갈수록 대표의 통제를 벗어나기 시작하는데, 중간관리자는 잘 못믿겠어요. 대표 혼자서 통제해보려고 아등바등하지만 다들 맘에 안드니 혼자 일이 많아져요. 결국 아주 절친한 몇 명을 제외하곤 나머지 구성원은 죄다 보조로 전락해버리죠. 조직은 완전히 굳어버리고, 대표는 일에 치여죽고, 절친한 일잘러들은 그걸 보며 퇴사각을 잡습니다. 


결국 일잘러들이 나간다고 하니 회사는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해요. 나머지 구성원들은 너무 눈에 보이는 편애에 모든 걸 체념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사람이 얼마 더 준다고 붙어있을거라고 생각하세요? 그건 몇 개월이죠. 결국 같은 행동이 반복되면 연봉인상이든 인센티브든 나가게 되어있다고요. 이들이 나가면 대표는 멘붕이 옵니다. 그리고 이번 생은 에헤이 조졌네. 이 참에 조직문화를 싹 갈아엎어서 '내 통제 밑으로 들어오게 하고 싶어요' 그래서 문장들이 죄다 강압적이고 개인중심적이죠. 갑자기 내가 생각하는 개념들을 가꼬와서 이제 우린 이런 회사입니다!! 를 천명하고 맘에 안들던 불만사항들을 핵심가치에 넣기 시작해요. 그리고 '일하는 방식 10가지'를 규정합니다. 겉으로는 회사의 비전과 미션을 위해서라지만, 사실상 내 맘에 드는 말 잘듣는 조직 만들기로 전락하죠.


고분고분


두 번째는 문화의 관점이에요. 이게 조직문화라고 하면 복지와 많이 헷갈리는데, 요즘에는 그게 아니라는 아티클이 워낙 많으니 그건 더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이걸 이벤트와 캠페인으로만 생각하시는 분들이 정말 많아요. 이게 재밌는게 뭐냐면 <일과 연결되어야 한다!!> 라고 백날 말하지만, 그 분들은 일하는 방식을 바꾸지 않습니다. 


왜냐. 과거의 방식으로 지금까지 왔거든요. 일하는 방식은 회사의 인프라와도 같기 때문에 이게 큰 용기와 모험을 필요로 합니다. 용기가 부족한데, 성공방정식이 머릿속에 있고, 딱히 바꿔야 할 당위성도 없다? 이렇게 되면 조직문화는 그냥 원데이 이벤트가 되는거에요. MZ세대들이 좋아한다니까 우리도 뒤쳐질 수 없어서 하는거죠. 뭐가 문제인지 정확히 모르는 거에요. 그러니 일의 문제는 MZ세대들이 까라면 까지 않아서 생기는 비효율이고, 얘네들에게 야자트고 커피사주면 행복해지겠지? 라는 단순화된 사고방식이 문화를 조져버리는 거에요. 일은 어제와 똑같이 할거고, 재밌는거 하나 만들어서 하하호호나 하쟈. 이렇게 너무도 가벼운 이벤트들이 탄생합니다. 그리고 이것들은 구성원들을 끊임없이 지치게 할거고... 결국엔 체념으로 가득한 분위기를 만들더라고요.








생각해보면 이게 얼마나 잔인한 거냐... 출근해서 퇴근할때까지 8시간을 일하는데. 한 달이라고 치면 20일 160시간 중에 딱 1시간 정도 문화에 투자하는 거에요. 1%도 안되잖아요. 이게 쿨피스에 자두함량이랑 뭐가 달라요. 향만 나는 거에요 향만. 자두가 없다고. 


뭐 조직문화를 바꾸는 방식은 수도 없을 겁니다. 분명 그 시발점과 순서는 다를 수 있어요. 방식도 다채로울 겁니다. 하지만, 결국 어떤 방식으로든 일하는 방식 자체를 건드리지 못하면. 우리 조직문화는 자두'향' 우유에서 바뀌지 않을거에요. 


그래서 조직문화의 모든 시발점은 '구성원의 행복'이 아니라 '일의 목적'을 규정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해요. 어떤 고객에게 무엇을 주고 있는지. 우리가 왜 여기 모여있는지 먼저 대답해야 되죠. 그 당위성이 설명되지 않으면... 제 아무리 달콤한 케익이 가득해도 결국 마녀의 집일 뿐이거든요. 일만 존나게 하다가 결국 24시간 우려낸 진하고 몸에 좋은 사골이 되버리겠죠.


It's you


일단, 제대로 일하는 체계가 갖춰진 후에. 과자와 커피를 놓는 거에요.







매거진의 이전글 대표님, 뒤에 좀 보셔야 할 것 같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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