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아파 죽겠어 진짜아아아!
저희 회사는 주1회 출근에 올타임 재택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물론, 이것의 장점은 몹시 놀라울 정도입니다. 처음엔 적응이 안되서 힘들었는데, 나름의 체계를 잡아가며 오히려 자유로운 장소에서 더 빡세게 일할 수 있는 분위기를 잡아가고 있어요. 그럼에도.... 이놈의 타이핑 커뮤니케이션의 저주는 피해갈 수 없습니다. 장점과 맞교환한다는 합리화로 버티고 있을 뿐, 이것의 단점은 정말 킹받을 정도거든요. 몇 가지 한 번... 그런 지점들을 말해보려 합니다.
1. 손 아프다. 그냥 만나서 하면 눈 찡긋, 끄덕 한번이면 끝날 것이 손으로 쓰는 순간 - [너무 좋은 의견이네요. 그대로 진행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에다가 합장에 웃음에 좋아요 이모지 까지 쓰느라고 죽을 맛
2. 아무리 서로의 화법을 알아도 오해가 생길 위험이 너무 높음. 만나서 '이거 어디까지 됐어요~' 라고 물어보는 것과 슬랙으로 '이거 어디까지 됐어요?' 라고 물어보는 것 자체가 뉘앙스가 너무 다름. 심지어 뉘앙스라는 건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걸 보는 사람의 기분에 따라 다르게 해석 되는거라, 대답 해야 하는 사람이 지금 기분이 개떡 같다면 '뭐야 지금 존나 검사하는거야?' 라고 꼬아볼 가능성도 있음. 심지어 말한 사람은 그런 사정을 당최 알 수가 없어서 나중에 서운했다는 걸 알면 벙찜. 벙찜은 소통을 점점 조심스럽게 만듦
3. 그렇다고 효율을 줄이자고 줄임말을 쓰거나, 쿠션어 없이 그냥 업무 얘기만 하면 누가 봐도 아주 무례함. 생각해봐요. 오전 10시에 출근하자마자 '어제 진행되었던 캠페인 건 수치 부탁 드립니다.' 라고 올렸다고 생각해봐요. 이게 어딜 봐서 부탁임, 대뜸 문 열고 돈 내놓으라는 강도의 스피치지.
4. 솔직히 일하다가 알람 떠서 계속 눌러보는 것도 피곤하고 alt-tab 눌러서 대화 따라가는 것도 쉽지 않음. 우린 그걸 [오버-커뮤니케이션]이라고 멋진 단어를 써서 '공유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솔직히 수백 명이 모인 채널에 쌓인 +498 숫자만 봐도 경기 들림. (그런데 그런 채널이 또 수십 개임)
5. 실시간 대화 힘듦. 일에 집중하고 있으면 알람을 끄거나 또는 못 볼 수도 있음. 기다리는 사람은 롱디하는 애달픈 연인처럼 1이 언제 없어지나 계속 지켜보고 있는 것임. 만나서 했으면 '아 잠만잠만!' 하면 되는데, 이건 계속 심장 떨림
6. 심지어 'OO님이 메시지를 입력하고 있습니다.' 라고 밑에 뜨기라도 하면, 심장박동 최대치 찍고 메시지 나올 때까지 아무것도 못함. 하더라도 신경 쓰여 미칠 것 같음
7. 그렇다고 또 아무 메시지도 없으면 왜 메시지가 없지? 일을 안 하나? 신경 쓰이고, 중간보고 안 하나? 신경 쓰이고, 만나서 일할 땐 별로 궁금하지도 않던 것이 안보이니까 더 궁금함
8. 감정에 에너지를 더 쓰는 듯. 심지어 [착한 사람 컴플렉스]나 [관계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분들은 핵심 내용 앞뒤로 사족 붙이는데 1시간씩 씀. 심지어 피드백 하나 쓰는데 1시간 20분 동안 메시지만 쓰고 있는 분도 봤음. 인스타 맛집 예약하는 것 마냥 조심스럽게 소통해야 함.
9. 뭔 말인지 모르겠음. 생각보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많지 않음. 본인은 최대한 자세히 설명하려고 길게길게 쓰는데 사실... 넘버링을 하면 할 수록 점점 뭔 말인지 모르겠음. 그걸 설명하려고 뭐 그림도 그리고 이미지도 올리고 하는데... 그렇게 쓰레드가 복잡해질수록 잘 읽히지도 않고 어쩌라는 건지 파악하기도 어려움.
10. 게다가 슬랙 같은 대화형 커뮤니케이션은 지시 사항들이 '흘러가기 때문에' 내가 일일이 찾아서 어디다 따로 할 일 정리를 안 하면 백퍼 놓침. 그리고 다 했다고 보고할 때도 쓰레드 다시 찾아서 그 커뮤니케이션을 이어가야 하는데, 검색어 규칙이 있다고 해도 수백, 수천 개의 쓰레드에서 다시 그 대화를 이어가려면 일주일 전 대화와 현재의 대화를 계속 오고 가는 양자 도약을 경험해야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