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주의 태교법 - 임산부 요가
"깊고 느린 호흡을 통해 수련을 시작하겠습니다.
귀와 어깨는 멀어집니다.
코로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며 내 코끝을 가만히 바라봅니다.
임신과 출산의 과정을 직접 겪는 것은
여성만이 누리는 실로 경이적인 우주 창조의 경험입니다.
뱃 속 아기와 함께 하는 매 순간의 경이를 떠올립니다. "
항상 처음은 떨리고 설렌다. 상기된 마음을 진정시킨 후 눈을 감고 선생님의 나긋하지만 단호한 목소리의 궤적을 좆는다. 첫 임산부 요가 수업이 시작되었다. 임산부 요가를 국내에 처음 도입한 요가원을 물어물어 찾아왔다. 긴장하지 않고 여유를 갖는다는 것. 마음이 긴장하면 몸까지 따라 경직되기 쉬웠다. 그리고 몸이 긴장된다는 것은 마음이 이미 평정심을 잃었다는 걸 의미했다. 여유가 있어야 제 실력이 나온다.
신입 시절 밤을 꼬박 새워 준비한 마케팅 전략 발표 때였다. 지나치게 긴장한 바람에 얼굴이 사색이 되어 쭈뼛거리다 결국에는 질문도 못 받은 채 서둘러 끝냈던 기억이 떠올랐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그렇게 온 몸이 굳어, 눈동자만 굴리고 있었던 그 날을 절대 잊을 수가 없다. 아직도 낯선 나의 임신. 이 대장정을 순산으로 마치기 위해 가능하면 초반부터 몸과 마음에서 긴장기를 쫙 빼야 했다.
태아와 태반이 안정적으로 정착되어야 하는 임신 초기를 지나 4개월 차에 접어들기 시작하면서 바로 요가 클래스에 등록했다. 몸과 마음을 이완하고, 아기가 나오는 클라이맥스 단계에 있어 최상의 유연성을 갖추는데 가장 좋은 운동이라고 했다. 내가 희망하는 자연스러운 출산을 위해 몸과 마음을 경건하게 수련하는 임산부 요가는 최적의 선택지였다.
운동도 시행착오를 많이 겪은 편이었다. 한때 유행이었던 플라잉 요가와 필라테스에도 빠져보고, 1:1 PT는 물론, 직장인 발레, 재즈댄스, 탭댄스도 배워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근육을 단력하거나 다이어트를 위한 운동은 꾸준히 지속하기에 한계가 있었다. 체력 트레이닝에 더해 마음을 온전히 비우고 소진되었던 내면의 에너지를 채울 수 있게 하는 심리적 터치가 필수였다.
나는 사실 꽤 오랫동안 요가 마니아였다. 하루 24시간이 일과 운동, 그리고 생존에 필요한 수면으로 딱 적절한 비율로 운영되어야 탱탱한 이십대의 피부처럼 삶에 쫀득쫀득한 탄력이 붙는 그런 종류의 사람이었다. 그리고 수련과 명상으로 몸과 마음의 조화로움을 추구하되 그리고 적절한 근력 운동까지 더해지는 요가는 나에게 딱 맞는 운동이었다.
요가 YOGA는 인도에서 시작돼 약 5,000년 이상 전해 내려온 심신수양의 한 방법론이다. 요가란 말은 결합, 조화, 균형, 통일이란 뜻으로 마음의 동요가 없는 상태라고 했다. 명상과 호흡, 스트레칭의 동작이 결합된 복합적인 체계는 우리의 몸을 자연과 조화를 이루게 하고, 우리의 마음을 치우침이 없는 균형 상태에 둘 수 있게 도와준단다. 특히 감정의 기복이 심한 임신부에게도 강력 추천되는 운동이기도 했다.
격렬한 운동은 아무래도 꺼려졌다. 의사 선생님은 걷기 운동은 기본이며, 유연한 물속에서 이루어지는 수영도 호흡과 신체 단련을 위해 30분 이내에서는 괜찮다고 했다. 다만, 초급 수준의 한손 접영만 가능한 나의 수영 실력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거듭 핑계를 대자면, 아무래도 차가운 물의 온도가 태아에게 영향을 끼칠지 몰라 조심스러웠다. 물론, 감염의 위험성도 있을 것 같았다.
요가 스튜디오는 많이 다녀봤지만, 정통 요가원은 또 처음이라 사뭇 긴장이 되기도 했다. 쫙 달라붙는 트렌디한 요가복과 내 몸의 실루엣을 계속 비춰볼 수밖에 없는 전신 거울이 부재한 공간이었다. 헐렁한 전통 한복과 유사한 분위기의 수련복을 갖춰 입은 요가 지도자님은 임산부 요가의 의미를 아주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신성하고 정갈한 기운이 수련실에 가득했다.
"임신한 여성의 몸은 하나의 몸으로 두 생명을 유지해야 하는 혼돈에 빠집니다. 그리고 정신적으로는 이제 엄마라는 새로운 역할과 의무에 대비하고 준비해야 하는데, 이러한 변화는 여성에게 아기에 대한 기쁨에 들게 하지만 뒤이은 출산과 양육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이라는 감정의 혼돈에 빠지게 하지요. 그러나 항상 임신이라는 혼돈의 상태는 출산이라는 과정을 겪어야만 질서로 들어간다는 사실을 명심하십시오. "
그렇게 나는 일주일에 2회, 퇴근길에 임산부 요가를 수련하기로 했다. 옴* 구호에 맞춰, 코 끝으로 전해지는 들숨과 날숨이 3번 오고 가면 그때부터 나와 아기가 함께 하는 요가가 시작된다. 마음이 절로 편안해지고, 걱정과 근심은 사라져 하늘로 두둥실 떠오를 것만 같이 몸의 긴장도 함께 풀렸다. 감정이 혼란스럽고, 앞으로의 삶이 혼돈에 빠질 것 같은 불안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니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 같았다.
임산부 요가는 다음과 같은 가이드에 따라 진행된다. 헐렁하고 편안한 천연 소재의 옷을 입고, 가능한 맨발로 수련할 것. 식사 후에는 3~4시간이 지난 뒤에 수련할 것. 모든 근심과 걱정, 임신에 따른 몸과 마음의 피로에서 벗어날 것. 천천히 여유롭게 할 것 - 모든 자세를 천천히 그리고 배를 압박하지 않도록 손과 발, 목과 허리를 가누어 동작하고, 자세 하나하나에 깊고 고르게 호흡하는 시간을 가질 것.
요가를 할 때면 가능성이 하나씩 더 생겨나는 것 같았다. 수련의 자세 하나, 하나가 태아에게 더 많은 생명력을 준다고 항상 생각했다. 그리고 눈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내 뱃 속에서 부단히 자라고 있을 아기를 떠올리며 천천히 배를 쓰다듬었다. 지도자 선생님의 목소리에 의지하며 그렇게 수련을 하고 나면 50분이 순식간에 지나가곤 했다.
같은 상황과 처지의 누군가가 함께 한다는 게 이렇게 마음에 위안이 되는 줄은 몰랐다. 많은 대화를 나누지는 못했지만 태명과 임신 주수를 공유하고 함께 임산부 요가를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끈끈한 연대감이 생기는 것 같았다. 누가 특정 동작을 더 잘하나 은근한 경쟁을 할 필요도 없고, 스스로도 어느 정도 늘었나 가늠할 필요도 없었다. 오롯이 배 안에 품은 아가와 함께 공명하며 서로 요가에만 푹 빠져 있으면 되었다.
"요가의 길에서 발전의 첫 표시는 건강이다.
가벼운 몸 얼굴의 해맑음 아름다운 목소리 몸에서 풍기는 향긋한 내음. 욕망에서부터 벗어남이어리."
스베타스 바타라우파니샤드(Svetasbatara Upanisad)
선생님이 어느 날 수업이 시작하며 읊어준 힌두교 경전의 구절이었다. 함께 수련을 마치고 서로의 얼굴을 보면, 개운한 정신과 맑아진 기운으로 기분이 좋아져 싱그럽게 서로 웃어주었다.
마음의 편안함, 얼굴의 긴장을 내려놓고 활짝 웃을 수 있는 일말의 여유가 생겼다. 임산부 요가를 시작하고 나서 제일 좋은 점이다. 배가 불러와서 몸을 가누기 어려워지는 막달 전까지는 꾸준히 지속하기로 했다.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Eat, Pray, Love>에서 삶의 방향성을 잃었던 주인공 리즈(줄리아 로버츠 역)가 문득 떠올랐다. 그녀에게 있어 삶의 전환점은 역시은 바로 정신적 스승과 요가 수련이었다.
요가를 할 때 만큼은 초음파 검사 사이의 텀에 찾아오는 막연한 두려움과 불안감을 아주 잠시 잊는다. 아기는 안전하게 잘 크고 있는 걸까 혹여라도 무슨 문제는 없을지, 태교와 내가 취하는 모든 것에 더 신경 써야 하는 건 아닐지 하는 걱정도 멈춘다. 몸과 마음을 충분히 이완하고, 지극히 자연스럽도고 편안한 출렁임에 내 전부를 맡기며 한껏 유연하게 파도를 즐기는 상상을 한다.
임산부 요가를 할 때 나는 우주 창조의 큰 씨앗을 품은 위대한 엄마가 된다.
*임산부 요가에 관심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