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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loresprit Feb 16. 2016

독일의 심장 프랑크푸르트

프랑크푸르트-쾰른-하이델베르크


20140901_ 꿈에 그리던 유럽 여행기 2막



아침 일찍부터 부산하다. 짧은 시간 정이 든 베를린에서 프랑크푸르트로 이동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프랑크푸르트로 가는 ICE 독일 고속열차는 예약료를 별도로 지불해야 했지만, 철도 선진국답게 독일인의 합리적인 사고가 잘 드러나는 열차 운행시스템을 가지고 있었다. 덕분에 우리는 어렵지 않게 독일패스를 이용해 우리가 이동해야 할 열차를 예약할 수 있었다. 무거운 여행가방을 선반 위로 올려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지만 다행히도 친절한 독일분의 도움으로 잘 해결되었고, 우리보다 먼저 본인의 목적지에 도착하자 가방을 내려주는 센스까지. "훈남 오빠, 고마워요." 


열차의 창문으로는 넓은 땅을 가져서인지 주로 드넓은 평야가 길게 펼쳐졌고 높은 산과 언덕은 보기 드물게 나타났다. 독일의 시골은 한국 시골의 그것처럼 참으로 고즈넉하고 아기자기하다. 곱고 정갈하다. 

이동하는 중간중간 잠시 비는 시간을 이용하여 여행기를 작성하기에는 기차여행처럼 좋은 게 없는 것 것 같다. 앞으로 남은 몇 번의 기차여행에서 무겁지만 챙겨 온 아이패드와 터치 키보드는 내게 여행기를  적어내려가는 흥미로운 친구가 되어줄 것이다. 이번 여행은 내게 여행자로서의 기본기를 다시 다듬어 주고 있는 것 같다.



대문호 괴테의 출생지인 프랑크푸르트는 매년 10월이면 세계 최대 규모의 도서 국제박람회가 개최되는 문학의 도시이기로 익숙한 도시다. 또한 독일에서 가장 크고 유럽의 센터 역할을 하고 있는 프랑크푸르트 공항이 있다. 매번 경유지로만 지나가다 머물러 가는 것은 처음이다. 

점심이 지나 중앙역에서 가까운 독일식 주택에 위치한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했다. 이틀 전부터 아픈 게 심해진 디자이너 Y는 오후 여행을 포기하고 쉬기로 했다. 밤이 될수록 아픈 증상이 심해져 다음날부터 이틀 동안 병원 치료를 받아야 했지만, 다행히 잘 치료를 받은 덕분에 나머지 여행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프랑크푸르트로 유학을 와서 열심히 살고 있는 정화 씨를 만나기 위해 오후에는 혼자 움직였다. 오랜만에 보는 그녀는 사진 찍히는 것을 싫어하던 예전의 아가씨는 당당함을 지닌 여인으로 성장해 있었다. 먼 타지 독일에서의 생활은 그녀를 강하고 아름답게 변화시켰고 안정돼 보였으며, 뒤늦게 찾은 새로운 꿈을 향해 열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평소 미식가를 자부하는 그녀는 한국음식에 메말라있던 나를 위해 직접 준비한 김밥으로 저녁을 먹고, 프랑크푸르트 대학 근처에서 100년이 넘은 오래된 카페에서 커피를 마셨다. 답례로 한국에서 공수해 온 책을 그녀에게 전달했다. 


정화 씨의 친절한 안내로 찾은 곳은 구시가지 중앙에 위치한 프랑크푸르트의 대표 명소인 뢰머광장. 이곳 광장에서의 볼거리는 뭐라고 해도 동화 속에서 보던 아기자기한 독일 전통 목조건물인 오스트차일레 Ostzeile다. 오스트차일레는 15세기에 쾰른의 비단 상인들을 위해 지어진 건물이라고 하는데, 지붕을 뾰족하게 만든 것은 눈이 많이 내려 눈이 지붕에 쌓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목조 창틀이 만들어내는 패턴이 무엇보다 오래된 시간을 아련히 그려내는 것 같다.

오스트차일레 바로 맞은편에 구 시청사가 보이고 광장의 중심에는 왼손에는 정의의 기준을 형상화한 저울을, 오른손에는 엄정한 심판을 상징하는 칼을 들고 있는 정의의 여신상이 서있다. 열 명의 황제가 대관식 했을 정도로 황제와 인연이 깊은 카이저 돔 대성당 Kaiser Dom을 지나면 길고 넓은 보행자 거리가 나오는데, 현대식 쇼핑거리로 유명 자일 Zeil 거리다.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는 곳으로 가장 프랑크푸프트 답다고 할 수 있는데, 분위기는 우리나라 명동과 비슷하다. 시내로 들어와 괴테하우스를 찾았다. 시간이 늦어 안으로 들어가보지 못해 기대했던 무엇인가는 없었지만 그가 태어난 곳을 보고 걸었다는 것만으로도 그를 만난 듯 묘한 기쁨이 솟았다. 


그녀의 또 다른 추천하는 코스 중 하나였던 마인 강은 서울의 한강처럼 프랑크푸르트에서 꽤나 상징적인 강이라고 한다. 그래서 정식 명칭은 마인강에 위치한 프랑크푸르트라는 뜻의 Frankfurt am main이다. 

마인 강 남쪽 거리 샤우마인카이 Schaumainkai는 슈테델 미술관을 비롯해 수공예 박물관과 민족 박물관, 독일 영화 박물관, 건축 박물관, 우편 박물관 등이 줄지어 있는 프랑크푸르트의 박물관 거리다.  국제 상업·금융도시로 유명한 프랑크푸르트가 문화·뮤지엄 도시로 탈바꿈하기 위한 정책으로 추진한 도시를 활성화시킨 좋은 사례로 꼽힌다고 한다. 마인 강변에 있는 역사적인 건물을 보존하면서 이용하면서 동시에 도시기능을 분산시키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강변을 따라 이곳에서만 맛볼 수 있다는 아펠바인(애플와인)을 마시며 그녀와 함께한 산책은 문을 닫은 미술관이 많고 시간이 짧아 아쉬움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더욱 깊어진 대화를 즐기던 시간이었다. 





20140902_중세의 랜드 마크, 쾰른 대성당


독일의 가을 날씨는 한국과 별반 다르지 않은 듯, 오늘은 화창하고 구름은 살짝 모습을 보이며 푸른 하늘을 내아준다. 여행 중 예민한 수면과 음식은 여전히 나를 괴롭혔지만, 게스트하우스 나오는 밥과 김치가 보이는 한국식을 보자 그동안의 사라지고 없었던 식욕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쾰른으로의 여행은 순조로웠다. 쾰른역에서 내리자마자 바로 보이는 쾰른 대성당 Cologne Cathedral은 엄청난 크기와 디테일로 나는 압도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쾰른 대성당은 중세의 설계도와 그림에 기초하여 완성된 석조 기술의 한계를 뛰어넘은 고딕 양식의 걸작으로, 주철과 강철이 발명된 현대에 마맘된 지붕의 크고 작은 첨탑들이 푸른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있다. 밀라노에서 약탈해 온 동방박사의 유골함을 보관하기 위해 건축이 시작된 후 무려 632년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완공되었다고 한다. 


유골함을 보관하고 있는 금박을 입힌 동방 박사의 대리석 석관 비롯해서 가장 오래된 나무 십자가인 게로 십자와 밀라노의 마돈나를 볼 수 있다. 그토록 높고 웅장한 천정과 기둥 하나하나, 스테인드글라스와 수많은 조형물들은 어느 한 가지도 소홀하지 않은 디테일로 완성도를 높이고 있었다. 스테인드글라스 다섯 개의 창유리는 성경 구약과 신약에 있는 18가지 에피소드를 대칭적인 구조로 나타내고 있다고 한다. 성당의 여러 가지 건축 형식과 역사 등을 소개하는 책자의 두께만도 그 두께가 1cm가 넘은듯하다. 원래는 하얗던 외관이 검게 변하면서 세월이 주는 멋스러움을 간직하고 있었지만, 여기저기 보수공사의 흔적은 완벽한 비주얼에 안타까움을 남겼다. 시간적 여유가 주어졌다면 그 하나하나의 의미를 찾아가며 더 진한 감동으로 쾰른성당을 마주할 수 있었을 텐데...



쾰른 대성당은 일곱 세기에 걸친 기독교 신앙의 인내력과 확고부동함을
보여 주는 최고의 상징이다  - 유네스코







20140903_철학과 낭만의 도시 하이델베르크



아침, 독일에서의 마지막 숙소가 있는 뮌헨 이동을 위해 미리 짐을 챙기고 병원으로 가는 Y에게 노트와 펜을 쥐어주며 그녀가 잘하는 그림으로 아픈 상태를 설명하라고 조언했다. 우린 디자이너이고, 디자이너에게는 말로서 통하지 못해도 그림이라는 우리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 무기가 있지 않은가, 그림은 만국 공통어니까!!!  그녀는 병원에서 그림으로 대화를 시도했으며, 어제의 엄격하고 무서웠던(?) 의사는 한바탕 웃음을 터뜨리며 친절하게 치료를 해주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 건지 병이 나아져서 인지, 그녀는 한층 기분이 나아져 있었다.  




오늘 여행지는 프랑크푸르트에서 한 시간 반 거리에 있는 독일 최초로 대학교가 세워진 오래된 대학도시이자, 괴테가 걸었던 ‘철학자의 길’이 있는 곳, 무엇보다 아름다운 하이델베르크 성이 있는 하이델베르크다.


하이델베르크 역에 천천히 걸어가기를 20분. 좌우로 고풍스러운 건물들과 상점, 레스토랑이 늘어선 마르크트 광장에서 비스마르크 광장까지 이어진 올드타운의 중심거리인 후으프트 Hauptstrasse가 보인다. 마르크트 광장 한가운데 우뚝 솟아있는 성령교회는 특이하게도 가톨릭과 개신교가 함께 사용했다고 한다. 아침시간임에도 이미 많은 관광객으로 북적거리고 있었는데,  하이델베르크성의 높은 언덕에서도 가장 먼저 눈에 띄던 바로 그 건물이다. 


하이델베르크성 Das Heidelberger Schloss 에 가는 방법은 계단 열차인 푸니쿨라 Bergbahnen를 타거나 언덕을 걸어서 올라가는 두 가지가 있는데, 우리는 올라갈 때는 푸나쿨라를, 내려올 때는 걸어서 내려오기로 했다. 푸나쿨라는 타는 순간이 너무 짧아서 그 느낌으로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을 이동하는 느낌이랄까.


하이델베르크성은 30년 전쟁 동안 심각한 피해를 입었고 이후로도 프랑스와의 전쟁 때문에 복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성의 대부분이 황폐해졌다고 한다. 게다가 번개를 맞아 화재가 휩싸이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던 이 성이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초에 그림과 같은 성터라는 명성을 얻게 된 이후라고 한다. 지금은 무너져 거의 폐허 상태이지만 그림 같은 곳, 반어적인 이 표현이 정말 어울리는 곳이다.

한 때는 독일 왕국의 중심의 장소이었던 하이델베르크성의 정문인 ‘엘리자베스 문’에는 아름다운 일화가 전해져 온다. 남편인 프리드리히 5세가 고향인 영국을 그리워하는 엘리자베스 왕비를 위해 하루 만에 문을 만들고 꼭대기에는 ‘사랑하는 엘리자베스를 위하여’라는 문구를 새겨놨다고 하는. 이 낭만적인 성 안에는 독일의 대문호 괴테가 하이델베르크에서 유부녀인 마리아네 폰 빌레마(롯테)와 잊지 못할 사랑을 나누고 그녀를 연모하는 심정을 고백한 내용의 비석도 있다. 프리드리히 관 지하실에는 이곳에 오면 모든 관광객들이 잊지 않고 보고 간다는, 높이 8m의 세계에서 가장 큰 술통으로 210,000ℓ의 포도주를 담을 수 있는 '그로페스 파스'가 있다. 



“여기서 나는 사랑을 하고, 그리하여 사랑을 받으며 행복했노라.” -괴테



엘리자베스 문에 들어서면 전쟁과 천재지변으로 일부는 무너지고 일부는 온전하게 남아 있는 건물이 나온다.  지어진 이후 400년 간 무너지고 개축되는 과정에서 고딕, 바로코, 르네상스 양식이 혼잡스럽게 섞여있게 되었고, 이렇듯 다양한 건축양식으로 지어진 중세의 성은 부서져있는 모습을 복구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유지하는 보수공사가 끊임없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아름답다고만 하기에는 무엇인가 슬픈 듯한 이미지가 빛바랜 붉은색의 성채와 푸른 나무의 극렬한 대비처럼 강하게 다가왔다. 사람들은 이 성이 비극적인 역사와 무너져 내린 궁 성터에서 권력의 허무함을 배우게 되고 세월의 무상함이 주는 쓸쓸함은 낭만이라고 기억하게 되는가 보다.


하이델베르크성에서 내려다본 올드타운의 전경은 초록빛 나무숲 사이로 촘촘히 보이는 주황색 지붕들과 유유히 흐르는 네커강을 가로지르는 칼 테오도르 다리가 마치 풍경화를 그려놓은 것 같다. 내가 유럽에 있다는 사실을 언제나 실감 나게 느끼게 해주는 주황색 지붕들. 돌로 된 성벽길을 따라 시가지로 내려오는 길에 오래된 옛 마을의 아름다운 풍광에 반하고 또 반하고, 코끝에 알싸한 와인향이 스쳐간다.





철학자들이 길을 묻고 걷다


동화책에서나 방금 튀어나올 것 같이 예쁜 후으프트 길 막바지에 보이는 카를 테오도르 다리 Karl Theodor  Brucke는 처음에는 나무다리였다가 홍수, 폭설 같은 자연재해와 화재로 쉽게 무너지자 카를 테오도어가 돌로 다시 지었다고 한다. 시내 방향으로 나 있는 브뤼케 문은 아치형으로 되어 있는 테오도르 다리와 함께 중세에 도시 성벽의 일부였던 것이 유일하게 현재까지 보존되어 있는 것이다. 다리의 또 하나의 포인트는 원숭이 동상. 동상 얼굴 안에 머리를 넣으면 머리가 똑똑해지고, 손을 만지면 하이델베르크에 다시 오게 되며 원숭이가 들고 있는 양심의 거울을 만지면 재운이 따른다고 하니,  이 황당한 미션을 따라 하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나도 슬쩍 쓰담쓰담. 


칼 테오도르 다리의 다른 한쪽 끝에서 산 중턱까지 걸어서 산책할 수 있는 길이 나오는데, 중간중간에 철학자의 뜰이 있어서 잠시 사색도 할 수 있다는 철학자의 길이다. 하이델베르크 대학 교수였던 헤겔을 비롯해 괴테, 야스퍼스, 하이데커와 같은 독일의 철학자들이 이곳을 산책하며 명상에 잠기고 영감을 얻었다는 것에 유래된 곳이다. 낭만과 인문의 도시 하이델베르크의 철학자들은 어떤 생각을 하며 그 길을 걸었을지 상상에 맡기는 것으로 일정을 마무리한다.


이곳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슈니첼과 맥주를 주문한다. 슈니첼은 오스트리아, 독일의 대표 음식으로 고기를 연하게 한 뒤 빵가루를 묻혀 튀겨내는 음식으로 돈가스와 비슷하다. 맛의 큰 차이는 잘 모르겠지만 여행 온 탓인지 더 맛있게 느껴진다.






뮌헨행 기차는 연착이  된 데다가 두개의 객차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가 중간에 나눠져 각자의 목적지로 이동하는 열차로, 우리가 탈 차량은 하필이면 뒤편 차량이었기에 우린 무거운 캐리어를 들고 땀나게 뛰어야 했다. 뮌헨에 도착해 휘센행 열차시간을  확인한 후 숙소로 이동했다. 유스호스텔에서는 밀린 빨래부터 해야 했다. 벌써 독일에서의 7일째 날이다. 


너무 오랜만에 가져보는 여행이어서 서툴고 힘겨움도 있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나는 나를 찾아가고 있는 것 같다.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지만 새삼스럽게, 여행은 그동안 내가 미뤄왔던 글쓰기와 생각하기, 잠시 머무르기, 크게 보기 등 나를 되돌아보게 되는 계기를 만들어 주고, 용기라는 좋은 자양분이 마음에 각인되어 쌓여가고 있다. 시간이 갈수록 낯선 사람들과 눈을 맞추고 그들의 언어에도 익숙해지고 있다.


나는 어느새 다음 여행을 꿈꾸기 시작한다. 처음 이 여행을 시작했을 때, 감정선과 컨디션의 조절 실패로 인해 모든 자신감과 의지를 상실했음에도 여행이란 이상한 놈은 나를 회복시키기도 하는 강력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다음번에는 생각이 통하고 눈으로 대화가 가능한 또한 흥미에서 많은 것들을 공유할 수 있는 이와의 동행을 꼭 해보리라 마음먹는다. 그들과의 여행은 하늘의 별빛을 찾아가는 것과 같이 반짝임과 즐거움으로 가득 찰 것만 같다. 다음 여행의 목적지와 날짜는 정하지 못했지만, 아마도 가까운 시일 내에 이루어지리란 걸 나는 의심하지 않는다. 


나는 이번을 계기로 제대로 된 여행자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하이델베르크성에서 내려다보는 올드타운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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