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084_쫄보의 칼집

정체를 알 수 없는 접이식 나이프

by 일상예술가 정해인

10년 전쯤이었을까? 호신용으로 칼을 하나 사야겠다는 이상한(?) 생각에 접이식 칼을 하나 샀다.

지갑 속 조립칼


유사시에 나를 보호한다는 생각에 어디서 주문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 조립 칼을 지갑 속에 넣고 다녔다. 하지만 웃긴 일이었다. 위급한 상황에 지갑 속에서 칼을 꺼내 태연히 조립을 하고 있을 수 있었을까?


완성된 조립칼

오히려 나를 해치려고 마음먹었다면 내가 조립한 칼로 나를 다치게 할 가능성이 더 높았다.


타인이 나를 위협한다고 과연 그 칼로 상대를 찌를 수 있을지도 의심스러웠다. 칼날이 제대로 서 있지조차 않은 아주 무딘 칼이었다. 날이 아주 예리한 부엌칼로도 돼지고기 하나 잘 썰지 못하는 내가 과연 이런 무딘 칼로 온 힘을 다해 덤비는 괴한을 막고 칼로 찌를 수 있었을까?


마흔이 넘어 그 칼을 보니 나를 보호하는 용도보다는 오히려 비상시에 칼이 필요한 시점에 써야 하는 생활 도구가 되어 버렸다.


나이가 들며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진 걸까? 아니면 이제 이 정도 나이는 새우배에 끌려가기에는 너무 나이가 들었다고 생각한 걸까?


지갑 속 무딘 조립 칼을 보며 인생에 관한 헛헛함이 문득 생각나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082_20년 전과 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