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화
강민준을 처음 만나기 15년 전, 나는 비슷한 눈빛을 본 적이 있다.
경기도 외곽이었다. 시화공단 끄트머리에 있는 작은 제조업체. 부가가치세 조사였다. 조사 나가기 전에 파악한 정보는 간단했다. 설립 12년차, 자동차 부품 하청업체, 연매출 80억, 직원 20명. 서류상으로는 별게 없었다. 특이한 거래도, 수상한 계좌도, 눈에 띄는 이상 징후도 없었다. 그냥 평범한 중소기업이었다.
조사를 나가면 처음 5분이 중요하다. 사무실 분위기, 직원들 표정, 사장이 나오는 속도. 그것만 봐도 어느 정도는 안다. 숨길 게 있는 사람은 너무 친절하거나, 너무 딱딱하거나, 둘 중 하나다. 중간이 없다.
그 사장은 중간이었다.
50대 초반이었다. 키가 작고 어깨가 넓었다. 악수를 할 때 손이 거칠었다. 공장 기름때가 손 마디마디에 박혀 있었다. 사무실에 앉아 있는 사람이 아니라 매일 공장 바닥을 걷는 사람의 손이었다. 그는 나를 보면서 웃지도, 굳지도 않았다. 그냥 봤다. 어서 시작하자는 듯이.
"장부 준비해드릴게요."
그게 첫 마디였다.
조사는 사흘이 걸렸다. 첫날은 매출 장부, 둘째 날은 매입 세금계산서, 셋째 날은 계좌 내역. 파고들수록 이상한 게 나왔다. 매출이 실제보다 부풀려져 있었다. 세금계산서가 사실과 다르게 발행된 게 몇 건 있었다.
나는 사장을 불렀다.
"이 부분 설명해주십시오."
그는 잠깐 나를 봤다. 변명을 준비하는 사람의 표정이 아니었다. 이미 알고 있었다는 표정이었다. 언젠가 이 날이 올 거라는 걸 알면서 살아온 사람.
"대출 때문입니다."
"대출이요?"
"은행에서 매출 기준으로 한도를 잡아요. 실제 매출로는 운전자금이 안 됐습니다. 버티려면 그 방법밖에 없었어요."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잘못한 거 압니다. 근데 그때는 그게 아니면 문 닫아야 했어요."
세법상 명백한 위반이었다. 사실과 다른 세금계산서 발행. 매출 과다 계상. 어느 쪽도 빠져나갈 구멍이 없었다. 고발 요건이 충분히 됐다.
회사 직원이 20명이었다.
한 사람당 가족이 네 명이라고 치면 80명이 이 공장에 기대어 사는 셈이었다. 나는 그 숫자를 계속 머릿속에서 지우려고 했다. 내 일이 아니었다. 나는 법을 집행하는 사람이었다. 법이 위반됐으면 고발하는 것이고, 그 이후는 내 소관이 아니었다.
하지만 숫자는 지워지지 않았다.
80명.
사흘째 저녁, 나는 혼자 사무실에 남아서 고발 요건 검토서를 작성했다. 쓰다가 멈추고, 멈추다가 다시 쓰고. 결국 새벽 두 시에 완성했다.
고발
통보하러 간 날은 흐린 날이었다.
사장은 공장 안에 있었다. 직원이 불러서 나왔다. 기름 묻은 장갑을 벗으면서 나왔다. 나를 보고 잠깐 멈췄다. 내 표정을 읽었을 것이다.
"들어오시죠."
사무실로 들어갔다. 문을 닫았다. 나는 서류를 꺼냈다.
"고발 의뢰 건으로 통보드립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서류를 받아서 한 번 봤다. 그리고 창밖을 봤다.
공장 마당이 보였다. 지게차가 서 있었다. 직원 두 명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한 명은 웃으면서 뭔가를 얘기하고 있었다.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사장은 그 사람들을 한참 봤다.
말이 없었다. 변명도, 애원도, 분노도 없었다. 그냥 봤다. 담배 피우는 직원들을. 웃고 있는 사람들을.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을.
나는 그 옆모습을 보면서 이상한 감각이 들었다.
이 사람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가. 자신의 잘못을 후회하는 건지, 저 사람들 앞에서 어떻게 설명할지 생각하는 건지, 아니면 그냥 마지막으로 보고 싶은 건지.
"다음 절차는 어떻게 되나요?"
"2주 안에 검찰에 송치됩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전부였다.
나는 사무실을 나오면서 계단을 내려갔다. 공장 마당을 가로질러 차로 갔다. 담배 피우던 직원 두 명이 나를 봤다. 한 명이 가볍게 목례를 했다. 나는 목례를 돌려줬다.
차에 타고 나서 시동을 걸지 않고 한참 앉아 있었다.
6개월 후 공장은 부도가 났다.
나는 그 소식을 다른 조사관한테서 우연히 들었다. 밥 먹다가 나온 얘기였다. 시화공단 그 업체, 결국 넘어갔다더라. 그 말이 대화 사이에 섞여서 지나갔다. 아무도 멈추지 않았다.
밥을 다 먹고 나서야 이상한 걸 깨달았다. 아무 감정이 없었다. 슬프지도, 후련하지도, 찜찜하지도 않았다. 그냥 예상한 일이 예상대로 됐다는 느낌. 내가 고발서를 쓸 때 이미 알고 있었던 결말이 그냥 도착한 것.
그게 더 무서웠다.
80명이 길에 나앉았다는 게 내 안에서 아무 파문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것.
그날 밤 나는 오래 앉아 있었다.
술잔을 앞에 두고, 마시지도 않고. 그냥 앉아 있었다.
동료가 낮에 한 말이 귓속에 맴돌았다. 그런 거 하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야지. 속이 시원하지 않냐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속이 시원하지 않았다. 시원하다는 감각이 뭔지 그 순간 이해가 안 됐다. 내 앞에 있던 사람의 얼굴이 자꾸 떠올랐다. 통보를 받고 창밖을 보던 눈빛. 공장 마당 지게차. 담배 피우던 직원 두 명.
나에게 생사여탈권이 있는가?
그 생각이 처음 든 건 그날 밤이었다.
나는 서류를 검토하고, 요건을 따지고, 고발 여부를 결정했다. 그 결정이 한 사람의 20년을 끝냈다. 80명의 생계를 바꿨다. 나는 그 권한을 위임받은 사람이었다. 법이 나에게 그 권한을 줬다.
하지만 과연 나에게 그 판단을 할 자격이 있었는가?
누군가는 그런 일이 힘이 나지 않냐고 했다. 갑질 아니냐고, 권력 있는 거 아니냐고. 나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이상한 감각이 들었다. 그 사람들이 틀린 게 아니었다. 실제로 나는 권한이 있었다. 들어가면 상대는 꼼짝을 못했다. 서류를 요구하면 내야 했고, 계좌를 열라면 열어야 했다.
하지만 나는 그게 힘이라고 느껴진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사형수 앞의 망나니 같은 느낌이었다.
망나니는 나쁜 사람이 아니다. 그냥 그 역할을 맡은 사람이다.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을 하는 사람. 사형이 집행되어야 한다면 망나니가 있어야 한다. 그게 옳은지 그른지는 망나니가 결정하는 게 아니다.
하지만 망나니도 사람이다.
칼을 들고 나서 집에 돌아가면, 밥을 먹고, 잠을 자고, 꿈을 꾼다. 그 꿈 안에 오늘 자신이 한 일이 따라온다. 따라오지 않으면 그게 더 무서운 것이다.
나는 그날 밤 내 앞에 있던 사람의 고통이 느껴져서 너무 힘들었다.
그 고통이 느껴진다는 것 자체가, 어쩌면 내가 이 일을 계속하면 안 된다는 신호였는지도 모른다. 느껴지지 않아야 잘 할 수 있는 일이었으니까. 느껴지는 사람은 오래 못 버티는 일이었으니까.
나는 그날 밤 처음으로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실제로 그만두기까지는 몇 년이 더 걸렸다. 하지만 씨앗은 그날 밤 심어졌다.
술잔을 들었다가 내려놓았다.
마시지 않았다. 마시면 안 될 것 같았다. 이 감각을 지우면 안 될 것 같았다. 내 앞에 있던 사람의 고통이 느껴지는 이 감각을. 망나니가 되지 않으려면 이걸 지우면 안 된다는 걸 그때는 본능적으로 알았다.
강민준이 떠나고 싶다는 말을 했을 때, 나는 그 공장 마당을 떠올렸다.
담배 피우던 두 사람. 웃으면서 얘기하던 사람. 아직 아무것도 모르던 사람.
강민준의 직원은 150명이다. 20년 동안 한 명도 안 잘랐다고 했다. 그 말이 자랑이 아니라는 걸 나는 안다. 그건 책임이다. 조용하고 무거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종류의 책임. 매달 월급날마다 150명의 통장에 숫자를 채워넣는 것. 그게 당연해 보이지만 당연한 게 아니라는 걸, 그 일을 20년 한 사람만 안다.
사람들은 그를 욕한다. 부자니까. 많이 가졌으니까. 더 내야 한다고 한다. 그게 공평한 거라고 한다.
하지만 그가 떠나고 나면 150명은 어떻게 되는가?
아무도 그 질문을 하지 않는다. 정치인들은 하지 않는다. 언론도 하지 않는다. 댓글을 다는 사람들도 하지 않는다. 부자가 세금 더 내는 게 공평하다는 말은 쉽다. 그 부자가 없어진 뒤에 생기는 빈자리에 대해서는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욕하는 사람들 중에 그의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의 납품업체 사장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가 내는 세금으로 운영되는 동네 복지관을 이용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부자를 욕하면서 부자가 만든 것에 기대어 산다. 그리고 부자가 사라지고 나서야 그걸 깨닫는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늦다.
나는 서랍에서 강민준의 메모를 꺼냈다.
싱가포르
펜을 들었다가 내려놓았다.
법을 지키는 게 옳은 건지, 사람을 지키는 게 옳은 건지. 법을 지키면 사람이 다치고, 사람을 지키면 법을 어긴다. 23년 동안 나는 항상 법을 골랐다. 그게 내 일이었으니까. 그게 옳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시화공단 그 공장 마당에서 담배 피우던 두 사람은.
그 사람들이 나쁜 일을 한 게 아닌데.
이 질문을 23년 동안 피해왔다. 피할 수 있었던 건 내가 조직 안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조직 안에서는 질문하지 않아도 된다. 결론이 먼저 있고, 나는 그 결론을 향해 가면 됐다.
하지만 지금 나는 조직 밖에 있다.
더 이상 피할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