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화
강민준과의 두 번째 미팅이 끝나고 다음날부터 나는 서류를 펼쳤다.
380억. 제조업 법인 두 개. 부동산. 금융자산.
세무조사관 시절에 나는 이런 구조를 해체하는 쪽이었다. 누군가 쌓아놓은 것을 뜯어내고, 숨긴 것을 찾아내고, 과세 요건을 맞추는 쪽. 지금은 반대다. 쌓는 쪽이다. 뜯기지 않게 구조를 짜는 쪽.
23년 동안 거래를 쫓는 쪽이었으니까, 반대로 움직이면 된다. 나는 수첩에 구조를 그리기 시작했다.
내가 알고 있는 케이스가 하나 있었다.
조사관 시절에 추적했던 사람이었다. 완벽했다. 서류상으로는 흠이 없었다. 추적은 됐는데 과세를 못했다. 그 구조가 머릿속에 박혀 있었다.
국내에서 사업을 하던 한 제조업 회장이었다. 어느 날 그는 싱가포르로 거처를 옮겼다. 사업도 그쪽으로 중심을 이전했다. 세법상 비거주자가 됐다.
비거주자
한국에 생활 기반을 두지 않는 사람. 일정 기간 이상 한국에 머물지 않는 사람.
그 신분이 확보되면 세법의 적용 범위가 달라진다. 그 회장은 그렇게 비거주자가 되어 해외에서 사업을 계속 키웠다. 그리고 자녀에게 이전했다.
나와 함께한 국세청 세무조사관들이 문제점을 들여다봤다. 하지만 과세하지 못했다. 법의 빈틈이었다. 탈세가 아니었다. 법을 어기지 않았다. 다만 입법자가 의도하지 않은 방식으로 법을 읽은 것이었다.
나는 그 케이스를 추적하면서 묘한 감각을 느꼈었다. 잡으려고 들여다봤는데 잡을 수가 없었던 그 답답함. 지금은 그 감각을 반대로 쓰고 있었다.
나는 강민준에게 전화를 했다.
"회장님, 한 번 더 뵙고 싶습니다."
그는 다음날 정각에 왔다. 지난번과 같은 구두였다. 낡았지만 잘 관리된 구두.
나는 수첩을 펼쳤다.
"순서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순서가 전부입니다."
강민준이 나를 봤다.
"어떤 순서입니까."
"지금 당장은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그가 눈썹을 올렸다.
"이유가 있습니까?"
"이 구조는 아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막힙니다. 법은 빈틈이 알려지면 알려질수록 그 빈틈을 메우기 위해 노력합니다. 제가 구체적인 방법을 여기서 설명드리면 그게 흘러나갈 수 있습니다."
강민준이 잠깐 나를 봤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합니다."
"한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구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타이밍입니다. 그리고 완전히 나가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완전히요."
"네. 반쯤 나가는 건 안 됩니다. 마음이 여기 남아 있으면 몸도 결국 돌아오게 됩니다. 그 순간 모든 게 흔들립니다."
강민준이 창밖을 봤다.
합정동 골목이었다. 낮인데도 골목이 좁아서 어두웠다.
"양도세는 내야 합니다. 그건 피할 수 없어요."
"얼마나요."
"25퍼센트입니다."
"상속세나 증여세보다는 적은 거죠?"
"절반입니다."
강민준이 잠깐 생각했다.
"편법 아닌가요."
나는 그 말을 듣고 잠깐 멈췄다.
편법. 그 단어를 강민준이 먼저 꺼냈다.
"편법입니다. 하지만 불법은 아닙니다."
"그 차이가 뭔가요."
"세금을 아예 안 내고 신고도 하지 않는다면 탈세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신고도 할 것이고 실제 세금도 낼 겁니다. 다만 그 세금이 조금 줄어드는 것일 뿐입니다. 편법은 법의 빈틈을 이용하는 겁니다. 불법은 법을 어기는 겁니다. 이 구조는 법을 어기지 않습니다. 다만 지금 당장은 유효하지만 언제까지 유효할지는 모릅니다."
강민준은 한참 수첩을 봤다.
"국세청은 어떻게 봅니까."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과세를 할까요?"
"못합니다. 아직은요."
아직은. 그 두 글자가 공중에 떠 있었다.
강민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들이 동의해야 하는 거군요."
"네. 이 구조의 시작은 아들입니다."
그가 처음으로 표정이 흔들렸다.
아주 잠깐이었다. 하지만 나는 봤다. 숫자 이야기를 할 때는 흔들리지 않던 사람이 아들이라는 단어에서 흔들렸다.
나는 수첩을 덮지 않고 기다렸다.
"아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어요."
그게 전부였다. 더 말하지 않았다.
나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물을 필요가 없었다. 이 구조에서 가장 불안한 지점이 어디인지, 강민준 본인이 이미 알고 있었다.
강민준이 돌아간 뒤 나는 한참 앉아 있었다.
처음 이 일을 시작했을 때 나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법 테두리 안에서만 움직인다고.
그 말은 지금도 유효하다.
하지만 법 테두리 안에서도 이런 구조가 가능하다는 것. 그리고 그 구조를 내가 설계하고 있다는 것. 조사관 시절에 추적했던 방법을 지금 반대로 쓰고 있다는 것.
범죄 조력자가 되는 기분이었다.
실제로 범죄는 아니었다. 하지만 기분은 그랬다.
그 불편함이 사라지지 않았다. 어쩌면 사라지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이 불편함이 있어야 내가 선을 지킨다. 불편함이 없어지는 순간이 더 위험하다.
창밖 한강은 검었다.
나는 수첩을 덮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