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화
이상한 느낌이 처음 든 건 지하철역에서였다.
합정역이었다. 퇴근 시간이 지난 저녁이었다. 플랫폼에 사람이 많지 않았다. 나는 강민준과 통화를 마치고 역으로 들어갔다.
열차가 들어왔다. 문이 열렸다.
나는 타려다가 멈췄다.
습관이었다. 오래된 습관. 문이 열리자마자 타지 않고, 닫히기 직전에 타는 것. 역외탈세 업무를 할 때 타깃을 추적하면서 배운 방법이었다. 우리는 항상 대상이 탄 다음에 탔다. 대상이 문이 닫히기 직전에 타면 놓쳤다. 그게 가장 단순하고 효과적인 따돌리기 방법이었다.
나는 그 방법을 쓰는 쪽이었다.
지금은 피하는 쪽이 됐다.
문이 닫히기 직전에 탔다. 뒤를 돌아봤다. 한 사람이 닫히는 문 사이로 손을 끼워 넣으며 탔다. 중년 남자였다. 회사원처럼 보였다. 나를 보지 않았다.
나는 그 사람을 봤다.
아무것도 아닐 수 있었다. 단순히 급했던 것일 수 있었다. 하지만 이상한 감각이 사라지지 않았다.
목적지보다 한 정거장 전에 내렸다.
목적지가 아니었다. 아무 역이나 내린 것이었다. 플랫폼에 서서 닫히는 문 사이로 안을 봤다. 그 남자가 내렸는지 안 내렸는지 확인했다.
내리지 않았다.
'내가 너무 예민한 걸까?'
나는 숨을 내쉬었다. 아무것도 아닌 것이었다.
하지만 그날 밤 잠을 잘 이루지 못했다.
김재원이 나를 보고 있다면 조직의 이름으로 보는 게 아닐 것이다. 그 사람 개인의 눈으로 보는 것이다.
그게 더 불편했다. 공식적인 감시는 규칙이 있다. 어디까지 할 수 있고, 어디서 멈춰야 하는지. 하지만 개인의 눈에는 규칙이 없다. 김재원이 사적으로 움직인다면 어디까지 갈지 알 수 없었다.
나는 그 사람을 안다.
역외탈세 업무를 같이한 동료였다. 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어떻게 움직이는지 나는 누구보다 잘 알았다. 동료 중에서도 집요한 사람이었다. 한번 냄새를 맡으면 놓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게 그의 장점이었다. 지금 나한테는 오히려 그게 문제였다.
사냥개는 냄새를 안다.
내가 어떻게 추적했는지 알기 때문에, 어떻게 피해야 하는지도 안다.
지하철 문이 닫히기 직전에 탄다. 목적지 한 정거장 전에 내린다. 같은 카페를 두 번 연속 가지 않는다. 전화 통화는 사무실 안에서 하지 않는다. 강민준과 만날 때는 항상 다른 장소를 쓴다.
이것들이 피해망상이 아니라는 걸 나는 안다.
내가 그 방법으로 사람들을 추적했으니까.
김재원이 어떤 방식으로 볼지 나는 알고 있었다.
OSINT부터 시작할 것이다. 내 블로그. 내 사무실 주소. 내가 공개적으로 한 상담 내용들. 누구나 볼 수 있지만 목적을 가진 눈으로 읽으면 패턴이 보인다. 최근 들어 싱가포르 관련 세무 글을 자주 올리고 있다. 해외 자산 이전 관련 문의가 늘고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방향이 잡힌다.
그다음은 HUMINT다. 내 주변에 그의 눈이 있을 수 있다. 오래된 동료, 같이 밥 먹는 지인, 건물 아래 커피숍 사장. 무심한 대화 속에서 흘러나오는 한마디. 요즘 박 세무사 바쁘더라. 외국 손님이 자주 오던데. 그런 말들이 어딘가로 흘러가고 있을 수 있다.
마지막은 TECHINT다. 강민준의 계좌 이동. 부동산 처분 기록. 해외 법인 설립 신청 내역. 출국 기록. 데이터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숫자들이 연결되면 그림이 나온다. 김재원은 지금 그 그림을 그리고 있을 것이다.
어느 날 오후였다.
아는 후배에게서 문자가 왔다. 같은 업계에 있는 후배였다. 같이 밥 먹자는 문자였다. 평범한 문자였다. 하지만 나는 그 문자를 한참 봤다.
'이 사람이 갑자기 왜 연락할까?'
밥이 먹고 싶었던 것인지. 아니면 나를 보고 싶었던 것인지. 아니면 나를 보러 온다는 핑계로 내가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누구를 만나는지, 어떤 일을 하는지 알고 싶었던 것인지.
이 사람이 김재원과 연결돼 있는 건 아닌지 알 수 없었다.
나는 답장을 보냈다.
'요즘 바빠서. 다음에 보자.'
그리고 전화기를 내려놓았다.
역외탈세 업무를 할 때 나는 이런 접촉을 설계했다. 자연스러운 척 접근해서 대화 중에 필요한 정보를 얻는 것. 상대가 경계를 풀도록 만드는 것. 밥 한번 먹자는 말이 그 시작이었다.
나는 그 방법을 알기 때문에 속지 않는다.
하지만 아는 것과 안전한 것은 다르다.
세무조사관 시절에 이상한 일이 있었다.
대형 법인 조사였다. 조사 자료를 방대하게 가져왔다. 회사 내부 문서들까지. 분류하고 분석하는 데만 며칠이 걸렸다.
그런데 이상했다.
무언가 빠진 느낌이었다. 퍼즐 조각이 하나 없는 것처럼. 전체 그림이 그려지는데 핵심이 되는 조각 하나가 계속 안 보였다. 나는 처음엔 내가 놓친 거라고 생각했다. 다시 뒤졌다. 없었다.
나중에 알았다.
핵심 자료가 사전에 빠져나간 것이었다. 우리가 무엇을 보려는지 누군가 알고 있었고, 그것만 사라지게 만들었다.
정보는 양방향으로 움직인다.
안에서 밖으로. 밖에서 안으로. 이 바닥의 현실이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그 양방향 사이 어딘가에 있었다.
또 다른 일도 있었다.
어느 조사 배정이 있던 날이었다. 배정은 보통 당일 아침에 이루어진다. 누가 어느 곳에 배정될지는 사전에 알 수 없다. 그게 원칙이었다.
그런데 배정 전날 밤에 전화가 왔다.
"잘 부탁드립니다."
모르는 번호였다. 나는 그 전화를 받고 한참 수화기를 봤다.
내일 내가 어느 곳에 배정된다는 걸 그쪽이 이미 알고 있었다. 정보가 어딘가에서 흘러나간 것이었다.
나는 그날 밤 잠을 못 잤다.
어디서 샌 건지 알 수 없었다. 위에서인지, 아래에서인지, 옆에서인지. 사방이 새고 있었다. 그리고 나도 그 새는 구멍 중 하나였을 수 있었다. 알게 모르게.
그 감각이 지금 다시 살아났다.
김재원이 나를 보고 있다면, 그는 이미 내 주변 어딘가에서 정보를 얻고 있을 것이다. 내가 의심하지 않는 사람을 통해서. 내가 믿는 사람을 통해서.
그게 더 무서웠다.
강민준에게서 전화가 온 건 그날 저녁이었다.
"세무사님, 이상한 일이 있었습니다."
나는 수첩을 펼쳤다.
"말씀하십시오."
"오늘 거래처에서 연락이 왔어요. 우리 회사 최근 동향을 묻더라고요. 그것도 세금 관련해서요."
"어느 거래처입니까."
"10년 거래한 곳입니다. 그 사람들이 그런 걸 물어볼 이유가 없어요."
나는 잠깐 생각했다.
거래처를 통해 탐색하는 것. 직접 접근하면 경계를 하니까, 주변부터 건드리는 것. 10년 거래처라면 경계가 낮다. 자연스럽게 대화하면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김재원이 움직이고 있었다.
"회장님, 지금 어디 계십니까."
"사무실입니다."
"오늘 사무실에서 나오지 마십시오. 그리고 전화 통화는 가능하면 줄이십시오."
"무슨 일입니까?"
"내부에서 움직임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전화기 너머 침묵이 흘렀다.
"얼마나 급한 건가요?"
"빠르면 빠를수록 좋습니다."
강민준이 천천히 말했다.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나서 나는 창밖을 봤다.
합정동 골목이었다. 저녁이었다. 가로등이 켜지고 있었다.
나는 코트를 입었다. 사무실 불을 껐다. 계단을 내려가면서 멈췄다. 1층 문을 열기 전에 유리창으로 골목을 먼저 봤다.
평범한 골목이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아무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게 더 이상했다.
나는 문을 열고 나갔다. 오른쪽으로 걸었다. 목적지는 왼쪽이었다. 한 블록을 돌아서 뒤를 확인했다.
아무도 없었다.
그제야 나는 목적지를 향해 걸었다.
사냥개였다가 표적이 된 사람은 안다.
조용할 때가 가장 위험하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