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열

제7화

by 일상예술가 정해인

강민준이 전화를 한 건 일주일 뒤였다.


"아들이 한국에 왔습니다. 한번 만나주실 수 있겠습니까?"


나는 잠시 고민했다.

아들이 직접 오겠다는 것이다. 아버지가 데려오는 게 아니라, 아들이 스스로 오겠다는 것. 그게 어떤 의미인지 생각했다.


"오십시오."


3일 후 합정동 사무실에 두 사람이 왔다.


강민준은 언제나 같은 구두였다. 낡았지만 잘 관리된 구두. 아들은 달랐다. 깔끔한 운동화였다. 로고가 없는 운동화. 어느 나라 사람인지 구분이 안 되는 옷차림이었다.


아들은 30대 초반이었다. 아버지보다 키가 컸다. 인사를 할 때 한국식으로 고개를 숙였지만 어색했다. 몸에 배지 않은 동작이었다.


"강준혁입니다."


한국말이었다. 하지만 억양이 조금 달랐다. 오래 쓰지 않은 언어의 억양이었다.


"앉으세요."


셋이 테이블에 앉았다. 강민준은 아들과 나 사이를 번갈아 봤다. 이 자리를 원했지만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는 사람의 표정이었다.


준혁이 먼저 말했다.


"아버지한테 구조 설명 들었습니다. 제 명의로 된 해외 법인이 국내 법인을 인수하는 방식이라고요."


"네, 맞습니다."


"저는 동의합니다."


강민준이 아들을 봤다. 예상보다 빠른 대답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 여쭤봐도 될까요."


"말씀하십시오."


준혁이 나를 똑바로 봤다.


"아버지는 왜 지금까지 한국에 계셨을까요."


나는 잠깐 멈췄다.

세무사한테 할 질문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 질문이 이 자리의 핵심이라는 걸 알았다. 아버지한테 못 하는 말을 나한테 하는 것이었다.

강민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준혁이 계속했다.


"저는 해외에서 투자자들을 많이 만납니다. 한국 사업에 관심 있는 외국 투자자들이요. 근데 그 사람들이 항상 같은 질문을 해요."


"어떤 질문입니까?"


"수익이 나면 세금을 얼마 내야 하냐고요."


나는 그 말의 무게를 알았다.


"그래서 뭐라고 답하셨나요?"


"확실하게 말하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준혁이 담담하게 말했다.


"다른 나라에서는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 세금 구조가 어느 정도 예측됩니다. 얼마를 벌면 대략 얼마를 낸다. 근데 한국은 제도가 자주 바뀝니다. 또한 세무조사를 나오면 얼마를 내야할지도 알 수 없죠. 투자자들이 한국을 어려워하는 이유가 세율이 높아서만이 아니에요. 예측이 어렵다는 거예요."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준혁이 잠깐 멈췄다가 말을 이었다.


"사업하는 친구가 하나 있어요. 예전에 한국에서 사업을 했습니다. 잘 됐어요. 근데 어느 금요일 저녁에 갑자기 법적인 문제가 생겨 구치소에 들어갔죠."


강민준이 아들을 봤다.


"금요일 저녁이요."

"네. 금요일 저녁에 그런 일이 생기면 주말 동안 대응하기가 어렵습니다. 법률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지만 실질적으로 움직이기 힘든 시간이니까요. 그 친구는 주말 내내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월요일에 문제가 해결됐어요."

"해결됐으면."

"해결됐지만 이미 끝난 거예요."


준혁이 말했다.

"주말동안 뉴스가 났습니다. 거래처들이 연락을 끊었어요. 직원들이 흔들렸고요. 나중에 억울함이 풀렸지만 회사는 살아남지 못했습니다."


사무실이 조용해졌다.

"그 친구 이야기를 듣고 나서 저는 한국에서 사업하는 게 두렵다고 생각했습니다. 실력이 없어서가 아니에요. 언제 어디서 어떻게 어려운 상황이 생길지 모른다는 거요. 예측하기 어려운 환경에서 사업을 한다는 게 쉽지 않습니다."


강민준이 창밖을 봤다.

준혁이 아버지를 봤다.


"아버지는 이걸 알면서도 여기 계셨잖아요."


강민준이 대답하지 않았다.

"왜요?"


긴 침묵이었다.

강민준이 천천히 말했다.


"여기서 만든 거니까."

그게 전부였다.


준혁은 그 말을 듣고 잠깐 눈을 감았다. 이해한다는 건지, 이해할 수 없다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아버지에게 한국은 30년을 바친 곳이었다. 상처받았지만 떠날 수 없었던 곳. 이해하면서도 버티던 곳.

아들에게 한국은 예측하기 어려운 나라였다. 제도가 자주 바뀌는 나라. 금요일 저녁에 친구가 힘든 일을 겪는 나라. 불확실함이 가득한 나라.

둘 다 틀리지 않았다.


그게 문제였다.

나는 수첩을 덮었다.


이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세무 구조를 설명할 수는 있지만, 아버지와 아들이 보는 한국의 차이를 좁혀줄 수는 없었다.

준혁이 나를 봤다.


"구조에 동의합니다. 진행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세무사님."

"네."

"아버지가 떠나고 나서 한국이 달라질 것 같으십니까?"


나는 그 질문을 듣고 한참 생각했다.

달라질까? 강민준이 떠나고, 그 다음 사람이 떠나고, 또 그 다음 사람이 떠나고. 그렇게 되면 달라질까. 아니면 더 강하게 막을까?


"모르겠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정직한 대답이었다.

준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모르겠습니다."


셋이 잠깐 조용히 앉아 있었다.

강민준이 일어섰다. 낡은 구두였다. 아들이 따라 일어섰다. 운동화였다.

문을 나가면서 강민준이 뒤를 돌아봤다.


"세무사님, 수고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들과 함께 계단을 내려갔다.

나는 그 발소리를 들었다. 아버지의 발소리와 아들의 발소리가 달랐다. 아버지는 천천히, 아들은 조금 빠르게. 그 두 박자가 계단을 내려가면서 점점 멀어졌다.


나는 창밖을 봤다.

골목으로 두 사람이 나왔다. 나란히 걸었다. 말은 없었다. 아버지와 아들이 같은 방향을 보면서 걷고 있었다.


같은 방향이었다.

하지만 같은 것을 보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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