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STURE LIFE , CHANG-RAE, LEE.
*
나는 처음 베들리빌에 도착했을 때 나를 눈여겨보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렇다고 이곳 사람들이 다른 도회지 사람들과 크게 달랐다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본질적으로는 다를 바가 없었다. 근본적으로 보자면 특정한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숲의 한 부분을 이루며 함께 자라나는 식물들처럼 모두가 공통된 조건과 영향 아래 놓여 있는 것 같다. 여러 유형의 식물이 있을 수 있지만, 풍요롭든 보통이든 부족하든 그들의 터전이 되는 토양과 풍토는 하나뿐이다.
*
물론 이야기 같은 것을 읽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갖가지 생각들을 너무 오래 하게 되는데, 그런 생각들은 보통 당면한 문제를 해결해 주기보다는 복잡하게 만든다. 예술과 문학의 의도가 원래 그렇다는 것은 이해하지만, 진지하고 생각이 깊은 사람이라도 가끔은 책을 통해 문제에 대한 직접적인 답, 확고하고 분명한 답을 얻고 싶어 하지 않을까?
*
나는 처음에 베로니카에게 네가 절대적으로 옳다, 이 세상(또는 우리가 만든 세상)에서 아름다움이라는 것은 가장 빈약한 축복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늘 영광과 찬양을 받는 것 같지만 실제로 아름다움을 가진 자에게 돌아오는 것은 대부분 악의와 비참함뿐이다,라고 말해주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나는 이제 그것을 안다. 나 자신의 외모 때문에 알게 된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성숙한 단계에 이른 서니를 대하면서 알게 된 것이다.
*
나는 이제 뭘 ‘본다’ 해도 내가 보는 것에 대해 확신을 가지지 못한다. 그것이 현실인지, 아니면 내가 만든 것인지, 아니면 그 중간쯤으로 우리가 삶에 기대하는 것 때문에 만들어 놓고 공유하는 환상인지, 아니면 이렇게 묻는 것이 오히려 더 적절할지도 모르겠다.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최대한 버텨 내고 만족하고 목적을 부여하려면, 우리는 무엇을 보아야만 할까?
*
다시 한번 그 생각이 나에게 강하게 다가온다. 사랑 같은 것이 영원히 승리를 거두고, 진정 모두를 정복하는 것일까? 아니면 나처럼 온전하게 주권을 유지하는 사람들, 여전히 정복당하지 않고 사는 사람들도 있는 것일까?
오노 대위는 그녀에게서 뭔가 진귀한 것을 보았다. 과학적이든 의학적이든 뭔가 독특한 것. 그녀의 육체적 아름다움 이상의 어떤 매력, 어떤 기준에 비추어 보더라도 초월적이고, 어쩐지 신성한 것.
그녀는 배움과 우아함에 기초한 독립을 원했다. 그녀는 그녀 나름대로 헌신할 수 있는 일을 택하고 싶었다. 아이를 낳고 필요한 일을 하고 싶었다. 진정한 소명을 찾고 싶었다. 지금의 나처럼 늙고 싶어 했다. 물론 나와는 다른 색조로. 다른 마음으로 뒤를 돌아보겠지만. 내가 바란 것은 큰 집단을 이루는 것의 한 부분(비록 백만분의 일이라 해도)이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척’뿐인 삶 이상의 어떤 것을 가지고 그 과정을 마치는 것이었다. 지금은 똑똑히 보이지만, 사실 나는 그 상황의 중요한 한 부분이었다. K와 다른 여자들도, 병사들과 나머지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무시무시한 것은 우리가 중심에 있었다는 것이다. 순진하게, 동시에 순진하지 않게 더 큰 과정들을 구성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모든 것을 삼켜 버리는 전쟁 기계에 우리 자신을, 또 서로를 먹이로 내주고 말았다는 것이다.
*
나는 그가 잠들자마자 진료소에 왔다가 바로 위안소로 향했다. 그러나 저녁과 깊은 밤의 일을 맞이하기 전에 여자들에게 낮잠을 허용하는 늦은 오후라 그곳도 고요했다. 여자들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텐트 뒤에서 마쓰이 부인이 뿌연 물이 든 찌그러진 빨래 통 위에 웅크리고 앉아 속셔츠를 짜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그녀에게 시부로 중위를, 그리고 물론 K를 보았는지 물었다.
그녀는 고개를 끄떡였다.
나는 어디에 있냐고 물었다.
“소위님도 가시게?”
그녀는 속셔츠를 꼭꼭 짜며 말했다.
“아뇨, 어디 있습니까?”
“빈터에 있어요.”
그녀는 손톱으로 이 사이를 후볐다. 화가 나 있었고, 약간 걱정하는 것 같기도 했다.
“때거리로 몰려갔수. 내 그년한테 이런 일이 생길 거라고 말했지. 멍청한 년 같으니라고. ‘너 그러다 죽어.’ 그렇게 말했어요. 계속 그러면 더 심한 일을 당할 수도 있다. 그런데 어떻게 되었는지 봐요. 더 심할 수밖에 없지. 더 심한 일일 수밖에.”
나는 변소 옆의 북쪽 길을 따라 빈터라고 부르는 곳으로 달려갔다. 엔도 상병이 K의 언니를 데려갔던 곳이었다. 그러나 반쯤 갔을 때, 하나씩 둘씩 몇 명씩 되돌아오는 그들을 만났다. 남자들. 남자들이었다. 스물다섯 명의 남자들. 서른 명의 남자들. 그들이 지나가도록 속도를 늦출 수밖에 없었다. 어떤 자들은 옷을 반만 입었다. 셔츠를 안 입고, 바지를 안 입고, 군화를 당겨 신기 위해 깡총거리기도 했다. 모두 조용했다. 커다란 기념식 뒤의 고요였다. 몸에는 핏방울이 튀었고, 흙이 묻어 더러웠다. 일부는 다른 남자들보다 더 심했다. 한 남자는 진홍색 물감에 손과 팔뚝을 담갔다 뺀 것 같았다. 어떤 남자는 얼굴에 진홍색이 묻어 있었다. 머리카락에 묻은 진홍색은 기이해 보였다. 시부로는 긴 풀에 천천히 칼을 닦으며 걸었다. 얼굴에서 피가 났지만 관심 없는 듯했다. 그는 나를 보지 않았다. 아무도 나를 보지 않았다. 마치 배구 시합이라도 하고 돌아온 듯 기운이 완전히 빠져 있었고, 득의양양한 경험 때문에 감정도 닳아 조용했다.
이윽고 모두 사라졌다. 나는 빈터까지 남은 길을 걸어갔다. 우듬지들이 지는 해를 가리고 있었기 때문에 빈터의 공기는 더 찼다. 대체로 내가 그때까지 가 본 다른 곳과 다를 바 없었다. 나는 위생 장교로서의 일을 하면서 냄새를 맡을 수도, 들을 수도, 볼 수도 없었다.
유해를 모으는 손에는 감각도 없었고, 그렇게 모은 유해의 무게를 느낄 수도 없었다. 결국 나는 그녀와는 다른 형체, 아주 작은, 꼬마 요정 같은 형체, 기적적으로 온전한 형체를 찾아냈으나,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다. 다리와 발로 짐작되는 것도, 완벽하게 갈라지며 손가락 형태를 갖추어 나가는 축복받은 두 손도 볼 수가 없었다. 또 그 얼굴도, 완성된 뺨과 이마도 볼 수 없었다. 아직 깨지지 않은, 방해받지 않은 그 시원의 잠. 나는 내가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없었고, 그 어떤 부분도 기억할 수 없었다.
그의 소설은 색다르다. 미래 세계, 6.25 전쟁, 위안부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얼마 전 돌아가신 고모할머니가 위안부로 잡혀 갈까 봐 일찍 결혼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한동안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었다. 그녀와 결혼했던 젊은 남자는 전쟁에서 전사했고
그녀는 칠십 년 정도 홀로 땅을 밟고 지냈다.
나는 나와는 위안부가 먼 이야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고모할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만약 그녀가 결혼하지 않고 위안부로 끌려갔었다면 지금의 난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를 곱씹어보니 그녀들의 아픈 마음이 발로 밟고 있는 땅으로부터 밀려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소설 속 주인공은 한국계 일본인, 위생 장교로 참전 중이다.
그는 군인들을 "위안"해 줄 위안부를 관리하는 역할을 맡는다.
책에 묘사된 위안부 시설은 끔찍하기 그지없다.
재래식 화장실을 화장실로 쓰지 않을 뿐, 그녀들은 오물처럼 판자로 만들어진 좁은 공간에
하루 종일 눕거나 울거나 소리 지르거나 자책하거나 포기하거나 콘돔을 빨면서 지낸다.
그중, 한 명. 당당함이 눈에 띄는 K는 장교의 사랑을 받으며 특별관리 대상으로
다른 군인들에겐 존재하지 않는다.
그녀를 흠모하고 어쩌면 사랑했던 그는 그녀와의 미래를 꿈꾸지만 결국, 그녀의 육신은
산산조각이 난 채 들과 땅으로 가라앉는다.
그녀들은 대부분 돈을 벌기 위해 공장으로 향하는 길이었고 어린 학생들이었으며 남자라곤
아빠나 형제를 본 게 전부였을 것이다.
그러한 그녀들에게 주어진 공간은 차가운 관 같은
살아있는 사람이 누워 죽을 날을 기다리는 것 같은 치졸하고 기가 막힌 곳이었다.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는, 그렇다고 살고 있어도 살아 있는 게 아닌.
그 세대를 경험했고 현존하고 있기에 더욱 드러나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책이었다.
우리는 그녀들과 여전히 공존하고 있는데
누구도 발 벗고 나서 돌을 던지려고 하지 않는다. 가만히 서서 누군가가 먼저 던지길 기다리고 있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