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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인 Feb 17. 2021

안녕히 가세요

사직서를 냈다. 이번 달까지만 출근하기로 했다. 이 직장에 스물아홉 살에 들어와 서른두 살에 떠나게 됐다. 그래서 기분이 어떻냐면, 나도 잘 모르겠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일은 괴롭다는 것이다. 떠들썩한 술자리에서 인사를 한다 해도 마찬가지다. 마지막 퇴사자였던 한 선배의 송별회가 기억난다. 회사 창립일이 가까웠던 때라 송별회와 창립기념식을 겸해 고깃집에서 술자리가 열렸었는데, 분위기가 무르익을 무렵 선배가 속한 팀의 팀장님이 평소의 차분한 모습에선 한 번도 들을 수 없던 우렁찬 목소리로 선배의 이름을 부른 후 건배사를 하며 앞날을 축복해줬다. 특별히 기억나는 건 선배의 이름을 부르기 바로 직전 잠깐 비틀거렸던 팀장의 모습이다. 그 모습을 보며 그가 주저앉아 울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다. 고깃집 한가운데로 걸어 나가 팀장의 건배사에 또 다른 건배사로 답하는 작은 키의 선배 목소리를 들으면서도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다시 앉았을 때 정말로 울었던가. 사람들이 그녀를 감쌌고 나는 고개를 돌려 고기 한 점을 집어 들었다.


코로나19로 인해 그때와 같은 송별회는 없어졌다. 요새 나는 부서별로 따로 약속을 잡고 만나 마지막 인사를 드리고 있다. 월요일엔 총무팀, 화요일엔 편집팀, 수요일엔 거래처 직원들을 만나는 식이다. 어찌어찌 사람이 모여도 많아야 4명이다. 그럼 나를 제외한 3명에게 이 자리에 없는 다른 팀원들에게도 인사를 전해달라고 말한다. 혹시라도 섭섭해 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최근에는 퇴사한 선배의 팀장이었던 현 우리 부서 팀장님과 다른 부서 사람들이 합석해 저녁 식사를 했다. 그들에게 퇴사한 선배의 얘기를 꺼냈다. 다른 퇴사자들에 대해 묻기도 했다. 그들을 기억하냐고 물었다. 다른 부서 사람들이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 건져낸 퇴사자들의 근황을 알렸다. 팀장님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피곤해 보였다.


오늘은 특별히 정겨운 거래처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러 갔다. 만나서 일 얘기보단 조카의 장래라던가 추억 속의 노래, 함께 먹을 저녁 메뉴 같은 걸 얘기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살을 에는 칼바람을 뚫고 사무실로 들어가니 직원 분이 핫팩을 건네줬다. 두 손으로 핫팩을 주무르며 그들에게 퇴사를 알렸다. 잠깐 정적이 흘렀고 나는 농담을 했다. 이제 탈출합니다! 그들은 많은 걸 묻지 않고 이해해줬다. 사실 딴 얘기를 더 많이 했다. 이재명은 대통령이 될 수 있을 것인가. 다시 추위 속으로 걸어 나왔을 때 문자가 왔다. 안녕히 가세요. 나는 핫팩이 따뜻하다고 답했다. 


언젠가 한 번은 어리광을 피울 수 있는 상대를 만나고 싶다. 그런 사람을 만난다면 나는 헤어지기 싫다고 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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