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광주 Oct 21. 2023

8. 반쯤백수로 행복이 습관인 사람들

A는 누구나 부러워하는 한국굴지의 대기업에서 LTE 시스템 개발 선임연구원으로 입사하여 또래들 보다 많은 연봉을 받았다. 그러나 계속되는 야근과 경쟁위주의 성과체제에 지쳐가던 어느날, 우연한 계기로 산티아고로 여행을 떠났다.

그때 그는 누구나 원하는 직장에서 많은 돈을 받으며 일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좋은 삶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다시 직장으로 돌아와 열심히 일하면서 자신이 살고 싶은 삶을 찾고자 했지만 그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이번에는 작정하고 다시 한번 산티아고를 다녀오기로 했다. 그 때의 순례길에서 자신이 얼마나 많은 것을 가졌는지 깨닫고 삶의 소중함과 감사함으로 자신이 가야 할 삶의 방향을 따라 살기로 했다. 그런 후 회사에 사표를 내고 카페 ‘알베르게’를 차린 다음 인생의 진정한 길을 찾는 사람들에게 자신만의 라이프스타일을 발견하고 그것을 체계화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하고 있다.

처음에는 물론 쉽지 않았다. 무수한 시행착오와 세상의 높은 벽 앞에서 무릎을 꿇었으며 자신의 나약함과 무력함을 경험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의 깨달음을 되새기며 한걸음씩 나아갔다. 그 이후 A는 산티아고 순례길의 인도자가 되어 활동하고 있으며 인생의 진정한 길을 찾는 사람들을 위해 ‘산티아고 라이프스타일’을 출간했다. 현재 그의 카페는 산티아고 여행자들의 아지트가 되어있다.     

B는 청년 때부터 커피에 꽃혔다. 콩이 볶아지면서 내는 냄새가 너무 좋았고 좋은 커피를 친구들과 함께 마실 때는 너무 행복했다. 대학을 다니는 동안 그는 카페에서만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렇게 번 돈으로 다른 곳에는 쓰지않고 로스팅학원 등 커피를 배울 수 있는 곳에 거의 사용했다. 무엇보다 자신이 재미있는 일을 하다보니 적은 소득에도 오히려 돈은 남았다. 직업에 대한 스트레스가 거의 없어 다른 곳에 돈을 쓸 일이 없었던 것이다. 문제는 그의 부모였다.

커피에 대한 아들의 진심을 이해하지 못하고 한 때의 취미로만 생각했던 그의 부모는 졸업학년을 앞두고 취업공부에 몰두할 것을 강요하면서 다시는 커피근처에 얼씬도 하지 말라고 했다. B는 부모의 눈을 요령껏 피해가며 커피관련 일을 계속했다. 부모와의 갈등은 계속되었지만 더 이상 말리기 힘들다는 사실을 깨달은 그의 부모는 직업선택에 대한 재정적인 책임을 분명히 하는 것으로 B의 선택에 동의했다.

그 이후 B는 로스터가 되어 여러 업체에서 경험을 쌓은 후 로스터리카페 KGML을 창업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더 좋은 커피를 경험하게 한다’는 슬로건으로 자신의 취향에 맞는 원두의 선택과 가공에 이르기까지 소비자가 직접 선택하는 서비스 매뉴얼을 만들고 1년 365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동료들과 함께 일하고 있다.     

유럽여행전문가인 C는 COVID-19로 직격탄을 맞았다. ‘유로코트레블(EurKor Travle)’이라는 소규모 전문여행사를 운영하던 그의 회사는 속수무책으로 문을 닫아야 했고 졸지에 빚쟁이가 되었다. 조금만 기다리면 되겠지 싶었던 기대가 손해를 더 키웠다. 그런 시간이 길어지면서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이제 여행업은 끝났다고 말하면서 전직을 권하기도 했다. 가장인 그에게 현실은 중요했다.

그러나 오랜 고민 끝에 쿠팡맨(전자 상거래 업체인 쿠팡의 배송직원)을 선택하면서 여행업을 할 수 있을 때까지 버텨보기로 했다. 왜냐하면 여행은 그가 존재하는 이유였으며 좋은 여행을 통해 현실에 찌든 사람들을 회복시킬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끼기 때문이다. 대신 현실의 필요를 채워야하는 것도 가장인 그의 몫이었다.

사실 그는 유명교육방송의 인기 여행프로그램이었던 [세계테마기행]에서 알프스편을 진행했을 만큼 꽤 알려진 유럽여행 전문가였다. 그래서 가족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은 그의 선택을 걱정했다.

“혹시 당신을 아는 사람이라도 만나면 창피하지 않겠어?”

그럴 때마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게 왜? 나는 내 일을 계속하기 위해 잠시 그 일을 하는 것인데 왜 창피해야 해?”

“.....”

처음 해보는 배달업무는 무척 힘들었다. 다리를 크게 다쳐 쉬기도 했다. 그러나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고 늘 감사했다. 동료들에겐 긍정의 아이콘으로 웃음을 선물하면서 희망을 내려놓지 않았다. 가족들도 그와 한마음이 되어 최대한 절제함으로 생활비를 줄였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여행업이 재개된 지금, 그는 누구보다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다.      

이전 07화 7. 일의 생명력을 결정하는 스토리라인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