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사회에서 현실은 마치 OX게임과도 같다. 안타가 아니면 아웃이듯 성공 아니면 실패로 구분하는데 익숙하다. 그러나 인생은 야구경기가 아니다. 야구에서는 대부분 안타 아니면 아웃이지만 인생은 성공과 실패보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어중간한 시간이 훨씬 많다. 행복은 그 어중간한 시간을 행복과 불행 가운데 어디에 편입시킬 것인가에 달려있다.
반쯤백수도 마찬가지다. 언 듯 생각하면 균형이 맞지않을 것같은 일과 휴식, 행복과 불행의 가늠자를 어떻게 설정하느냐는 반쯤백수로 살아가는 현실의 삶에 매우 중요하다. 나는 그것을 언밸런스 매니지먼트, 반쯤백수의 기술이라고 부른다. 예컨대 이것도 저것도 아닌 어중간한 시간은 성공도 실패도 아니니 당연히 행복도 불행도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다. 만약 그렇게 생각한다면 당신에게 그 시간은 어떤 의미인가? 또한 그렇게 생각한다면 어쩌면 당신은 OX의 저주에 붙잡혀 있을지도 모른다.
언젠가 유행했던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생각해 보자. 물론 그것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집 근처 카페에 앉아 고즈넉한 오후를 즐긴다거나 음식을 장만하고 당일치기로 가까운 여행을 다녀올 수도 있다. 그러나 소확행의 진정한 의미는 인생이 성공과 실패, 행복과 불행의 OX게임이 아니라 이것도 저것도 아닌 시간들을 행복에 편입시키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즉 OX의 저주에서 벗어날 때 그때부터 당신의 행복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쯤백수의 소확행은 어떤 계획조차 필요없다. 왜냐하면 일, 그 자체가 행복이기도 하거니와 자신의 내면에서 다른 사람들보다 행복의 기초가 높기 때문에 어중간한 시간 전부가 그들에겐 행복이다. 예컨대 연극에 미친 배우를 생각해 보자. 연습장에 살다시피하면서 라면과 막걸리로 끼니를 때우더라도 그 시간은 즐겁고 행복하다. 반대로 부모의 강요에 의해 직업을 선택한 사람은 행복의 기초 자체가 없을 수도 있다. 따라서 꼭같은 시간을 일해도 두 사람이 느끼는 행복은 하늘과 땅 만큼의 차이가 날 수 있다. 물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선택하고 좋은 스토리라인을 가졌더라도 기대와 어긋난 결과 앞에 잠시 실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일하는 것이 행복인 그들은 일을 통해 남들보다 훨씬 빨리 회복된다. 얕은 소명감만으로도 현실의 장벽들을 이겨나갈 당위성과 용기를 북돋우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물론 다른 사람들보다 성공할 확률도 높다. 흔히들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고 하지 않은가? 더구나 그들은 훨씬 많은 시간을 일한다.
앞서 우리는 3할의 성공을 거두는 세상의 위너(winner)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그들 역시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이 일한다. 그러나 반쯤백수가 그들과 다른 점은 3할의 성공이 아니더라도 행복할 수 있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그들 대부분은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기 때문에 이미 10할의 성공 안에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반쯤백수가 행복한 이유는 또 있다.
많은 시간을 일하기 때문에 당연히 많은 시도를 한다. 만약 열 번의 시도에서 3할, 즉 세 번 이상 성공하면 세상에서 위너가 된다면 반쯤백수는 서른 번의 시도에서 1할, 즉 세 번만 성공하면 된다. 그러니 여유가 있다. 무려 스물 일곱 번을 실패해도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반쯤백수든 아니든 성공에 대한 기준만 바꾸면 모두가 행복할 수 있다. 어쩌면 우리는 3할의 성공을 당연하게 생각하며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물론 현실을 핑계댈 수도 있다. 그러나 당신의 행복을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닌 당신이다. 세상은 언제나 우리의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기 원한다. 따라서 세상, 즉 다른 사람들이 당신의 행복을 결정하는 것을 그대로 방치하면 안된다. 3할의 성공은 엄청난 성공이기 때문에 1할의 성공은 물론 그저 그런 오늘을 행복의 편에 담을 수 있을 때 3할을 도전하는 과정도 행복할 수 있다. 반쯤백수는 그런 마음에서부터 천천히 시작하는 것이 좋다. 달라진 것이 없어도 오늘이 어제보다 조금 더 행복할 수 있다면, 바뀐 것이 없어도 일이 조금씩 즐거워질 수 있다면, 당신은 조금씩 반쯤백수의 자유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