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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광주 Oct 21. 2023

7. 일의 생명력을 결정하는 스토리라인

‘어떤 삶을 살 것인가?’는 누구나에게 가장 현실적이고 중요한 질문이다. 만약 이런 질문을 단 한 번도 해 보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거나 도대체 생각이란 것을 하지않고 살아 왔거나 둘 중의 하나일 것이다. 왜냐하면 태어나면서부터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받는 모든 것들은 어떤 삶을 살 것인가의 일단을 구성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어렸을 때 숟가락 질을 가르키는 것은 다른 사람의 도움없이 스스로 식사를 할 수 있는 일상(삶)이 목적이다. 

일반적으로 교육제도라는 것은 어떤 직업을 가질 것인가를 최종 목표로 정한 다음 그것을 위해 언제 무엇을 어떻게 배우며 어느 학교에 진학할 것인지를 결정한다. 즉, 누구나에게 일(직업)은 어떤 삶을 살 것인가를 결정하는 핵심이다. 그러나 교육의 진짜 목표는 직업을 정하기 전에 어떻게 사는 것이 가장 행복하게 사는 것이고 그것을 위해 어떤 생각과 가치철학을 가져야하는지를 가르치고 이해시키며 정서적 습관으로 자리잡게 하는 것이다, 즉, 교육의 형식적인 목표는 직업이지만 실질적인 목표는 ‘사람’이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일과 직업,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선택하는 스토리라인이다. 이때 스토리라인이라는 것은 단지 좋아하는 일을 선택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자신이 선택한 일에 크든 작든 사회적 가치를 담는 것을 의미한다. 일종의 소명이다. 그럴 때 일의 생명력은 훨씬 강해진다. 

스토리라인은 크게 두가지 줄기에서 시작된다. 하나는 나 자신을 위한 것, 다른 하나는 내가 속한 사회를 위한 것이다. 원칙적으로 모든 직업은 두가지 모두를 포함하고 있다. 예컨대 변호사는 법률적으로 억울한 사람들을 도와 그의 권리를 구제하고 보편적인 정의가 살아있는 사회가 될 수 있게 힘쓴다. 청소부는 깨끗한 거리환경을 조성하여 사람들이 기분좋은 일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다. 내가 워라벨한 반쯤백수로 일할 수 있는 이유도 내 삶의 정체성을 확인함과 동시에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조금 더 즐겁고 행복하게 누릴 수 있도록 돕는다는 자의식 때문이다. 그 두가지가 교집합을 이룰 때 가장 즐겁고 행복하다. 

물론 스토리라인은 나 자신을 위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직업은 나의 존재가치, 즉 내가 다른 사람 또는 사회와 연결되는 통로임과 동시에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 자신을 위한 것이라고 할 때 그것이 직업을 준비하고 영위하는 과정인지 아니면 그로 인한 결과인지, 두가지 모두 인지를 구별하는 것도 중요하다. 즉 제사인지 젯밥인지 두가지 모두 인지가 핵심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다양한 직업 가운데 특별한 소명의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의사를 사례로 설명해 보자.

한국에서 의사는 결과적으로 부와 높은 신분의식을 동시에 얻을 수 있는 직업이다. 대신 날마다 아픈 환자들을 만나야 하고 그들의 하소연을 들어 주어야하며 때로는 위험한 수술을 해야하고 그로인해 뜻하지 않은 의료분쟁에 시달려야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의사라는 직업을 통해 내가 원하는 것이 아픈 사람들을 고치는 행위에서 느끼는 보람이 아닌 결과적으로 주어지는 고소득과 높은 신분의식이라면 어떻게 될까? 아마 그는 ‘어떤 삶을 살 것인가?’에 이렇게 답할 것이다.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돈을 벌고 더 높은 사회적 지위를 누리면서 하루라도 빨리 경제적 자유를 달성한 다음 편안하게 살고 싶다.” 그런 그가 환자들을 만나고 자신의 딱한 형편을 하소연하는 소리를 들어야하는 진료실에서 보람을 느끼기보다는 짜증과 스트레스를 감추기위해 애쓰는 시간이 더 많지 않을까? 그렇게 하루의 일과를 마치면 자신의 시간을 할애하여 환자들의 고통이나 하소연에 공감력을 높이는 교육활동이나 진료 사각지대에서 고통받는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의료봉사에 관심을 갖기보다 진료실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한 여가활동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않을까? 

이제 반대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예컨대 의사를 직업으로 삼기 원하는 이유가 아픈 사람들을 고쳐 주거나 그들의 하소연을 듣고 희망을 선물하는 행위에서 보람을 느끼기 때문이라면 어떨까? 아마 그는 ‘어떤 삶을 살 것인가?’에 이렇게 답할 것이다. “어떤 이유로든 건강을 잃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살려 그들에게 희망을 전하는 일을 오랫동안 하고 싶다.” 그런 그에게 환자들을 만나고 자신의 딱한 형편을 하소연하는 소리를 듣고 희망을 전하는 진료실은 그의 소명의식을 다시 확인하는 시간이 되지 않을까? 그렇게 하루 일과를 마치면 환자들의 고통이나 하소연에 공감력을 높이는 교육활동이나 진료 사각지대에서 고통받는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의료봉사에 더 많은 관심을 갖지 않을까? 그러면서 진료와 관련된 사회적 활동의 저변을 넓히면서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않을까? 

결국 직업을 준비하고 영위하는 과정에서의 보람이나 즐거움 보다 결과적인 보상 때문에 의사가 된 사람은 정해진 시간만 일하면서 삶의 행복을 다른 곳에서 찾겠지만 의사로서의 소명의식이 앞섰던 사람은 더 많은 시간을 일하면서도 일 자체에서 행복을 누리며 살아갈 것이다. 즉 의사인 두 사람의 소득은 비슷하지만 저마다 누릴 수 있는 행복의 총량은 다를 것이다. 그렇다면 만약 당신이 의사가 되기 원하다면 당신 인생의 스토리라인은 무엇인가? 만약 당신이 환자라면 어떤 의사를 만나기 원하는가?  

물론 나는 사람들이 직업을 찾는 목적과 그로인해 서로 다른 하루와 일상을 보내는 것을 평가하려는 것이 아니라 일과 직업에 대해 어떤 스토리라인을 가졌는지가 삶의 행복과 일에 대한 생명력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말하고 있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들이 의사와 같은 고소득 전문직으로 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또한 스토리라인이라는 것이 인생과 사회에서 어떤 고귀한 가치를 실현해야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AI와 싸우면서 자칫 지긋지긋할 수 있는 100세 시대를 살아야하는 당신에게 일의 생명력을 통해 행복의 총량을 높이면서 더 오랫동안 일할 수 있는 것만큼 좋은 선물은 없다. 그렇다면  우리 주변에서 일과 직업에 대한 다양한 스토리라인을 가지고 더 많이 일하면서 행복이 습관인듯 사는 사람들을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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