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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애진 Jan 21. 2021

01. 팜프라를 계속하게 된 이유

[2019년 연말정리] 타의는 없어 자의만 있지

1.1. 구성원의 변화: 타의는 없어, 자의만 있지

1.2. 어쩌면 무브먼트: 문제 해결을 위한 비즈니스



2019년을 시작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2018년 연말 정리를 하면서 세웠던 새해 계획들은 2019년 봄을 지나면서 흩어지고 말았다. 제 아무리 구체적인 계획일지라도 주변 환경이 바뀌면 무의미해진다. '의성이 가진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한국의 미래와도 연결될 것’이라는 포부 가득했던 계획은 상상으로 끝났다. 의성에는 가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다. 애초에 팜프라는 구성원의 꿈을 먹으며 커왔기 때문에 한 명 한 명이 가진 영향력은 팀의 방향을 바꿔버릴 정도로 강력했다. 올해 초의 가장 큰 변화는 구성원이 반으로 토막 난 일이었다. 



1.1. 구성원의 변화: 타의는 없어, 자의만 있지

“행여 이 관계가 깨질 것 같은 순간이 오면 지금 하는 모든 일을 그만 둘 거다” 

2018년 2월, 낯선 첫 만남에서 조차 함께 고개를 끄덕였던 문장이었다. 


관계는 우리의 만남에 있어 가장 주요한 단어이자 지켜내야만 하는 핵심 가치였다. 관계를 섬세하게 맺는 일도 중요했지만, 관계를 알맞게 발전시키는 것 역시 중요했다. 그리고 관계를 발전시키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기존의 관계를 새로운 관계로 만드는 일이기도 했다. 


일 년 내 제대로 된 공간을 갖지 못한 채로 추운 겨울이 다가왔다. 의성과의 팜프라촌 계획은 계속되었지만 수정과 논의를 반복하면서 우리 모두는 지쳐가고 있었다. 버티고 견디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예민해지고 날카로워지는 신경이 어느 순간 서로를 겨누기 시작했다. 회의는 매번 싸움으로 마무리되었다. 누군가의 "최고의 팀은 서로에게 칼날을 겨누지 않아요."라는 말이 아득하게 떠올랐다. 분명 우리가 누가 보기에도 부러워하는 팀이었던 적이 있었는데.. 


그리고 2019년 2월, 팜프라는 네 명에서 두 명이 되었다. 우리가 일 년 동안 애써 만들어 놓았던 안전한 울타리가 깨지는 기분이었다. 하고 싶었고, 해야 한다고도 생각했다. 하지만 ‘해야 한다’가 너무 강해지기 시작하면서 관계가 틀어지고 실수를 하게 되고 결국 길을 잃게 되었다. 


"우리는 동의된 가치로 모였기 때문에 한 번 끊어지면 결코 회복이 불가능할 것이었다.” 

그날은 이 문장이 무겁게 내려 앉은 날이었다

.

.

그날로부터 며칠 뒤, 건축가님을 만나 무력하고 답답한 심정을 털어놓았다. “저는 자의가 아닌 타의로 중단될 위기에 처한 거예요. 팜프라 아니면 난 이제 뭐하지 고민하고 있어요” 내 한탄과도 같은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건축가님이 답했다. “절대 타의는 없어. 자의만 있지.” 그 순간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갑자기 정신이 확 들었다. '타의... 그래.. 내 자의는 무엇이지?' 예상치 못하게 찾아온 상황 속에서도 내 의지를 오롯이 마주 볼 수 있어야 했다. 나는 분명 이틀 전에 “그럼에도 나는 잘 버텨낼 거야”라고 말했지 않았던가. 


1년 전 팜프라를 할지 말지 고민하던 내게 지인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건 너가 가보지 않고 그들의 삶을 밖에서만 소비해서야.” 직관적으로 아직 끝까지 안 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왕 가기로 한 거, 어디 한 번 끝까지 가봐야 하지 않나. 적어도 앞으로 2년 동안은. 첫 3년을 버티면 무언가가 되리라는 것을 확신했다. 지금까지만으로도 남은 것들은 많았다. 그러니 중심만 잘 잡고 있으면 사람들은 언제나 오고 가고 할 일이었다. 그게 팜프라가 하는 일이니까. 


또한 애초에 다 함께 동의했던 가치를 ‘일'로 만들어나가는 과정 속에서 누구 하나 다치지 않기를 바랐다. 우리의 일 년이 어느 누구에게도 상처로 남지 않기를 바랐다. 관계 역시 이대로 끝내버린다면 오히려 더 아픈 기억이 될 것이었다. 모두에게 팜프라가 와해된 기억이 아니라 쌓여가는 기억으로 남기를 바랐다. 나를 걱정하는 세모에게 말했다. "내가 길을 잘 가면 우리 서로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야” 나는 나와 우리를 위해 잘 버텨내고 싶었다. 



그래, 자의는 변화 없다. 



1.2. 어쩌면 무브먼트: 문제 해결을 위한 비즈니스

졸업하기 전 마지막으로 지도 교수님과 저녁 식사를 하던 때였다. 졸업 이후의 팜프라 계획에 대해 말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한참을 듣고 계시던 교수님이 말했다. "일종의 운동을 하는 거네. 쉽지 않겠다." 속으로 뜨끔! 했지만 의연하게 답했다. "남들이 보기에는 운동이 아닌 것처럼 보이게끔 (재밌게) 보이도록 만드는 게 제 숙제예요.”라고. 이 말을 들은 교수님은 너털너털 웃다가 “화이팅"을 말하셨다.


말마따나 우리는 결국 ‘운동’을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꿈꾸는 이상을 실현함으로써 선례를 만드는 것. 이상은 급진적으로 가지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 이상을 좇기 위해서는 반드시 현실적인 발판을 마련해야 한다. 이상과 현실, 이 넓은 간극을 좁힐 수 있는 매개체, 이 둘을 ‘자연스럽게' 연결할 수 있는 무리하지 않는 방식, 그 수단으로써의 사업을 해야 한다. 


하지만 웃프게도 나는 여전히 외부인에게 팜프라에 대해, 팜프라촌에 대해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 지황이 꿈꾸는 그림을 따라가지 못한 것일 수도 있고, 불확실한 상황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면서 자신감이 줄어든 것일 수도 있고, 이게 과연 실현이 가능할지, 그리고 무엇보다 돈을 벌 수 있는 모델일지 내심 회의하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래서 매번 매 순간마다 확인해야 했다. 

내가 어디를 왔는지 그리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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