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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애진 Jan 21. 2021

02. 공공의 영역에 발을 들이다

[2019년 연말정리] 남해에서 마을 만들기의 첫 삽을 뜨다

2.1. 수익모델 실험에서 배운 교훈: 디렉션, 중간보고, 피드백

2.2. 결국 지원사업을 받다: 공공사업으로의 이행


사회문제만 걱정하는 것은 공무원이나 저널리스트처럼 국가와 회사에서 따박따박 월급이 나올 때나 가능한 일이다. 창업을 하겠다고 했으면 우선 '나의 지속가능성'을 고민하는 것이 먼저다. 청년/문화기획 단체들을 만나보면 하나같이 자체 수익모델의 부재를 제일의 문제로 꼽았다. 생계에 급급해 지원사업에 발을 들이게 되면 영영 옥죄이고 만다는 것이었다. 지원금에만 의지하다 보면 그 끝에는 제대로 된 수익모델은 만들지도 못한 채 어느새 대표직에 익숙해진 모습만 남게 된다. 팜프라가 최대한 지원사업을 미뤄왔던 이유다.



2.1. 수익모델 실험에서 배운 교훈: 디렉션, 중간보고, 피드백

첫 1년 동안 집도 짓고 농사도 지었으나, 그 외의 수익에 대한 고민 역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었다. 나름의 성과를 냈으나, 냉정하게 말해 초기 자본금도 없고, 사회 경험도 미숙한 이들이 열정만을 가지고 세상을 상대하기엔 녹록지 않은 게 현실이었다. 크게 두 가지의 수익모델을 시도했으며 각각의 실험을 통해 다음의 교훈을 배웠다.


코부기 매뉴얼   

목적: 코부기 매뉴얼 체계화 및 홍보를 통해 집짓기 문화 확산

내용: 코부기 1호 제작 일지를 바탕으로 코부기 책자 매뉴얼 제작 후 공유회

기간: 2018년 10월 ~ 2019년 2월 (5개월)

참여 부분: 표지 디자인, 내지 일러스트, 부록 제작

성과: 코부기 책자 매뉴얼 초안 완성!


워크웨어 폿   

목적: 촌 라이프에 적합한 워크웨어 제작을 통한 제품군(팜프라굿즈) 런칭

내용: 바고클로딩과 협업 하에 워크웨어 제작 후 크라우드 펀딩 판매

기간: 2018년 6월 ~ 2019년 2월 (9개월)

참여 부분: 촬영 모델, 와디즈 펀딩 스토리 작성 및 디자인, 로고 및 라벨 디자인

성과: 1400% 이상 달성! 재판매 문의




| 디렉션의 부재

두 프로젝트에서 내가 맡았던 업무는 시각적으로 표현하고, 효과적으로 알리는 일이었다. 쉽게 말하면 디자인과 마케팅. 하나의 프로젝트에 A부터 Z까지의 일이 있다면 V~Z의 역할이나 다름없었다. 단계별로 각각의 업무가 있을수록 잘 지시하고, 요구하는 일이 중요해졌다. 필요한 부분을 구체적인 디렉션 없이 요구받으면 상대방이 동료가 아닌 클라이언트 같은 느낌이 들었다. 차라리 전부를 맡겨버리는 방식이 나았다.


| 중간보고와 중요성

중간보고를 할 줄 몰랐다. 그럴듯하게 완성이 되어야만 보여주곤 했다. 결과 중심으로 일을 진행하니, 피드백을 받으면 전부 갈아엎고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경우도 생겼다. 그렇다 보면 마감 일정은 점점 촉박해질뿐더러 피드백을 받는 기분도 좋지 못했다. 중간보고는 함께 발을 맞추어 가는 과정이었다.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했던 중간보고가 사실은 가장 효율적으로 일을 진행하는 방법이었다.


| 피드백을 하는 법

피드백을   몰랐다. 행사가 끝나고 나면 잘한 일보다는 부족하고 아쉬운 점들만 눈에 보였다. 자연스레 칭찬에 야박해졌다. 피드백을 어떻게 주느냐에 따라 피드백을 받는 사람의 마음이 달라졌다. 개선할 점만 있는 피드백은 상대방의 의욕을 저하하고 상처를 주고 말았다. '피드백을 겸허히 받아들일  아는 사람이 되어야 ' 하고 다독일 일이 아니었다. 어떻게 피드백을 주어야 서로에게 좋은 피드백일까?



2.2. 결국 지원사업을 받다: 공공사업으로의 이행

첫 1년은 이곳저곳에 낚싯대를 던져 보면서 로드맵을 짜가는 시간이었다. 가을 무렵, 갑작스레 진주 숲에서 나오게 된 이후 물리적인 공간이 없던 우리가 당장에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때부터 막연하게 팜프라촌을 기획하기 시작했다. 팜프라촌은 촌에 연고 없는 도시 청년들이 촌살이를 경험할 수 있는 완충지 같은 청년마을이었다.


그 후 1년 동안 팜프라촌 구상도만 스무 번가량 그려왔다. 장기적인 구상을 보다 구체화하기 위함이었으나, 막연한 상상을 그려내는 일은 이따금 스스로에게도 회의감을 느끼게 하곤 했다. “그래서 팜프라촌은 언제 만들어져요?” “어디로 가면 볼 수 있어요?”라는 질문에 명쾌한 답을 하지 못했고, 자괴감과 막막함이 뒤섞이는 시간을 보냈다. 실제로는 5년 후에나 구현 가능할 것이라 생각했으나 시기적절하게 의성에서 제안이 왔다. 하지만 구성원이 축소되면서 두 사람이  40억이라는 큰 규모의 예산을 감당하면서 마을을 만들기 힘들다고 판단했다.  


2019년 4월, 거점을 남해군으로 옮겼다. 무작정 집을 지으며 남해를 탐색하고 있었다. 때마침 청년청 지원사업 공고가 떴다. 무려 1억의 사업이었다. 어쩌면 우리가 상상해오던 마을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지황이 남해군과 지역 어른들을 만나는 동안 나는 지원서를 쓰기 시작했다. 기존의 기획은 있었지만 난생처음 써 보는 사업계획서였다. 몇 날 며칠을 머리를 맞댄 결과, 우수팀으로 선정되었다. 그보다 더 기쁜 것은 더 이상 없는 것을 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있는 것을 있다고 말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몽상처럼 그려오던 것을 실제로 시작하게 된다니 마냥 신기했다.



그래도 첫 삽은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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