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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애진 Jan 24. 2021

03. 실현된 상상 속 마을, 팜프라촌 시작

[2019년 연말정리] 남해 팜프라촌 시즌1 시작하다

3.1. 마을을 준비하는 과정: 남해군, 상주중학교, 두모마을

3.2. 마을을 일궈가는 과정: 월요회의, 식사당번, 공동규칙


지원사업에 선정된 덕분에 마을을 준비하고 운영할 자금은 마련이 되었다. 하지만 공간은 사업 시작 직전인 7월까지도 준비되지 못한 상태였다. 봄이 지나고 여름이 한창 시작된 날까지도 우리는 여전히 부유하고 있었다.



3.1. 마을을 준비하는 과정: 남해군, 상주중학교, 두모마을

제 아무리 예산이 있다고 한들 풀어낼 장소가 없으면 소용없는 노릇이었다. 지황은 폐교 리스트를 만들어 막연히 남해 내에 있는 온갖 폐교는 다 돌아다녀 본 후, 군청을 찾았다. 하지만 남해군이 소유하고 있는 폐교는 많지 않았다. 이미 사용되고 있거나 그나마도 진단 결과 안전등급 E가 나와 건물은 사용할 수도 없는 분교만 있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난감해하던 중, 상주면의 상주중학교 교장선생님이 우리를 두모마을에 소개해주셨다. 마침 두모마을에는 상주중학교가 임대하고 있는 양아 분교가 있었다. 그곳을 첫 실험지로 사용하는 게 어떠냐며 마을의 이장님을 한 번 만나보라는 것이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찾아뵌 이장님은 마을의 최연소 어른으로 마을의 미래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계신 분이셨다. 이야기를 한참 듣던 이장님은 지황이 말을 마치자 딱 한 마디 말하셨다. "그래, 한 번 같이 살아보세" 그제야 우리는 말할 수 있었다. "팜프라촌민을 모집합니다~ "



이제 진짜 촌 살이의 시작이었다. 시간이 촉박한 만큼 공간 준비와 모집 준비를 동시에 시작했다. 물품을 받으러 진주, 거제, 통영을 비롯해 서울까지 트럭을 타고 전국을 돌아다녔다. 마을 만들기 말은 참 거창했으나, 실상은 물품 정리하기, 의자 운반하기, 바닥 청소하기, 창고 정리하기, 분리수거하기.. 등 일상을 만들어가는 소소한 모든 것들을 하나씩 해 나가는 일이었다. 눈에 잘 띄지도 않기 때문에 진척되는 과정 역시 잘 드러나지는 않았다. 성취감을 느낄 구석 하나 없이 그냥 당장 눈앞에 보이는 일들을 계속해나갈 뿐이었다.


제 아무리 직관과 마음을 따라 택한 길이었지만, 그 과정에 설렘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다. 이제는 눈앞의 일 너머의 일까지 보이기 시작한 탓이었다. 실은 기대보다 걱정과 암담함이 가득했다. '정말 우리는 한 달 뒤, 정확히는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시간 후, 사람들을 받을 수 있을까? 여태껏 머릿속에 그려온 그림을 실현해 낼 수 있을까?..’ 그건 모를 일이었다. 다만 한 가지, 미치게 힘들 거라는 것, 절대 쉽지는 않을 거라는 것. 그것만 확신했다. 그러자 과정을 즐기자는 마음이 희미해졌다. '더 효율적인 방법은 없을까? 우리가 미련하게 일을 하고 있는 걸까?'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그런 우리에게 사람들이 말했다. "항상 행복해야 한다는 생각을 버려. 힘들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지도 마. 안 힘들려면 죽어야지 왜 살어.” “아무리 쉽게 하려고 해도 어차피 노력은 들 수밖에 없더라고요” 분명 힘 빠질법한 말들이지만 신기하게도 당시의 나에게는 묘한 위안이 되었다. '아, 원래 힘든 거구나. 나만, 우리만 이런 거 아니구나' 하고 말이다.



3.2. 마을을 일궈가는 과정: 월요회의, 식사당번, 공동규칙

서울에서 두 차례의 설명회를 진행하는 동안 "그동안 지켜봐 왔어요" "2년 후에 갈테니 그때까지 꼭 계속해주세요!"라고 말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 말들 덕분에 빛 바랜 줄 알았던 지난 나날들이 다시 빛나기 시작했다. 모집은 성공적이었다. 생판 모르는 촌에서 무려 3개월 이상을 살아야 하는 프로그램임에도 불구하고 경쟁률이 3:1을 넘었다. 선발을 하게 될 거라는 생각도 하지 않았었는데, 어쩔 수 없이 2차 심사(면접 과정)까지 봐야만 했다. 그 결과, 2018년 8월, 우리를 포함한 총 12명의 사람들이 두모마을 양아 분교에서 팜프라촌 살이를 시작하게 되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모여 산다고 바로 마을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살아온 환경도 가진 배경도 다른 12명의 사람들이 함께 지내기 위해서는 필요한 이야기와 정해야 할 룰이 많았다.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시간이 지나니 자연스레 논의 자리를 만들어 가고 있었다. 일례로 식사 당번제를 도입했다. 밥 먹을 시간이 되면 주방에 사람들이 모여들긴 하지만, 정작 필요한 손은 한정되어 있고, 이 바람에 나머지 사람들은 방황을 하는 상황을 겪었다.  당번을 정하자, 공통 생활비를 걷자, 반찬 워크숍을 하자 등 식사와 관련한 다양한 의견들이 나왔다. 논의 끝에 일주일마다 2명의 셰프(당번은 벌칙 같은 느낌을 준다며)들이 식사를 맡기로 했다. 또한 장을 보러 가는 사람에게는 유류비를 지원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함께 살다 보면 갈등도 생기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갈등이 발생하는 것은 부끄러워할 일도, 문제도 아니었다.  하물며 너무  아는 가족과도 다투기 마련인데 생판 모르는 사람 사이에 있어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때문에 갈등은 어찌 됐든 있을 것이라고 전제를 하는 것이 좋다. 다만 중요한 것은 갈등이 일어났을  어떻게 대하느냐, 해결하느냐. 오히려 갈등이 없을 것이라고 확신하는 순간 모든 문제가 시작되는 것일지도.

시간이 멈춰있는 듯했던 공간이 어느새 사람들의 손때와 생기로 가득한 공간이 되었다.



팜프라촌을 더 알고 싶다면

 <판타지촌> https://www.farmfra.com/fantasych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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