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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애진 Jan 27. 2021

05. 2019년의 업무와 직함 - 전문성에 대한 갈망

[2019년 연말정리] 잡기에 능하지만 전문가가 되고 싶어

5.1. 전문가란 무엇인가?: 다각적으로 볼 줄 아는 사람

5.2. 잡기에 능합니다: 전달을 위한 모든 일을 하는 사람


팜프라의 환경이 바뀌고 팜프라에서의 시간이 길어짐에 따라, 이곳에서의 내 기능적 정체성과 전문성에 대한 고민도 깊어졌다. 팜프라에서 어떤 일을 맡고 있어요? 하는 물음에 어물쩡거리는 나를 발견했다. 작년에는 나의 일을 어떻게 정의 내려야 할지 몰라 혼란스러워 그랬다면, 올해는 스스로의 전문성이 없다는 생각에 답을 머뭇거렸다.



5.1. 전문가란 무엇인가?: 다각적으로 볼 줄 아는 사람

디자인도 하고 집도 짓고 농사도 짓고 영상도 만들고.. 내 전문성은 뭐지...?

내가 처음에 ‘디자이너’라는 직함을 싫어했던 것은 거기에 한정되고 싶지 않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일 년이 지난 후 스스로를 디자이너라고 해야 하나 뜸 들이게 되는 것은 무엇하나 전문성을 가지고 싶다는 바람이었다. 하지만 디자인이 내가 과연 장기적으로 가져갈 수 있는 능력인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업계를 전혀 모르는 비전공자라는 문제도 컸지만, 나 자신이 그걸 바라는 지도 알 수가 없었다. 이 안에서 나는 무엇을 얻고자 하는 걸까? ‘전문성’이라는 막연한 것에 대한 갈망은 커져가는 데에 반해 사실 스스로도 전문성의 정의가 잘 정립되어있지 않은 상태였다.


내가 전문성을 고민하는 것은 결국 기술로서, 기능으로서의 업에 대한 고민은 아닌가? 내가 여기서 이렇게 일한 후에 다른 곳에 가서 적용하고 적응할 수 있을까? 팜프라만 할 생각은 없어서 그런 것 아닐까? 다음 스텝을 밟아야 할 때는 분명 새로운 것일 텐데, 그때의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아니, 전문성을 가진다는 것은 결국 어딘가의 일부로 일한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나는 어딘가의 일부로 일하고 싶어 하는 사람인가? 다가오지도 않은 다음을 미리서 걱정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런 문장들이 머릿속에서 어지럽게 이어지고 이내 흩어지기를 반복했다.


그런 내게 지황이 말했다. “내게 너의 정체성은 명확한데. 너는 지금 너가 원하던 일을 하고 있어. 팜프라와 팜프라촌의 모든 일들을 전달하잖아. 내가 만난 모두들 네가 올린 글을 읽고 나를 만나. 전문성이란 건 이리저리 굴러봐야만 생기는 것 같아. 진짜 전문가는 전체를 볼 줄 알거든. 지금 네 나이에 너처럼 이만큼의 일을 맡고 이것저것 할 줄 아는 사람 없어. 그럼 네가 전문가인 거야." 하긴.. 내가 ‘똑똑하다’ 고 생각하고, 부러워했던 사람들은 모두 잡다한 일들을 해보고, 다각적으로 생각할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전문성은 어쩌면 상대적인 개념인 걸까. 두루두루 알아야 나만의 스페셜리티라고 할 수 있는 전문성이 생기는 걸까.


고민을 들은 아리님이 말해주었다.

“그래도 부품으로 속한 것이 아니라 이렇게 전체를 다루는 경험은 나중에 애진씨에게 큰 자산이 될 거예요.”



5.2. 잡기에 능합니다: 전달을 위한 모든 일을 하는 사람

아직은 내가 무엇에 전문성을 만들어 가고 있는지, 무엇에 전문성을 가지고 싶은지 모르겠다. 다만 현재의 나는 세영의 말마따나 익명의 대중을 향해 의사소통을 시도하는 사람, 그러한 시도들에 대한 반응과 인정을 먹고사는 사람, 것을 위해 모든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했던 일들은 영역을 넘나들었다.


| 디자인_시각적으로 표현하기

(1) 로고

초기의 팜프라의 CI, BI, 색상은 모두 진주의 숲을 기반으로 했던 것이었다. 양의 기운이 가득한 남해에는 어울리지 않는 색이었다. 남해는 좀 더 밝고 청량함이 더해져야만 했다. 그리고 팜프라의 또 다른 브랜드 팜프라촌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집은 코부기 1호와 3호 2채에서 여러 채가 되었다.


(2) 포스터

두모마을에 온 팜프라촌민들의 작은 일상 조각들이 모여서 하나의 그림이 되는 퍼즐 같은 그림을 생각했다. 천하제일 못질 대회, 코부기 워크숍, 우드 카빙, 캠프파이어, 비치코밍, 두모마을 사물놀이 등이 모여 이루어지는 팜프라촌을 그렸다. 신기하게도 마을에 들어오기 전과 후의 마을을 보는 내 시선에 차이가 생겼음을 발견했다. 이전의 팜프라촌 지도는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시선이었다. 아직 마을에 들어오기 전, 그저 상상하며 기획하던 단계였다. 두모마을은 산도 있고 바다도 있음을 한눈에 보여주고 싶었다. 하지만  정작 마을에 들어와 보니, 가장 많이 보게 되는 것은 마을 뒷자락에 위풍당당하게 자리한 금산이었다. 그래서 팜프라촌을 바라보는 시선도 아래에서 위로 바뀌게 되었다.


| SNS 운영_결국은 스토리텔링

효율적이고 지속 가능한 시스템을 위해서는 점차 지황의 이미지 노출을 줄여나가는 대신 브랜드를 키워야 했다. 초반에는 인지도를 높이기 위한 전략이었다. 하지만 지황 개인 스케줄 하나가 변동되면 모든 사람들이 대기하고 모두의 스케줄이 꼬이는 상황이 자주 발생하기 시작했다. 대표가 스타성이 지나치게 강해 모두가 브랜드가 아닌 대표를 보러 오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당장에 홍보할 수 있는 제품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2월 초에 진행했던 워크웨어는 가격 책정을 잘못하는 바람에 마진율이 현저히 떨어졌고 그 후로 추가 제작하지 못했다) 결국 지금 팜프라가 가장 주력하고 있는 것은 '팜프라촌'이었고, '팜프라촌 살이'를 잘 들려주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래서 여기에서 지금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어떤 일상을 보내고 있는지를 일지 형식으로 계속 풀어냈다. 지황 역시 파밍보이즈 관련 외부 출장은 줄이고 팜프라의 이야기를 많이 하기로 했다. 그러자 어느 순간부터는 팜프라나 팜프라촌은 알고 지황의 파밍보이즈는 모르는 방문객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 영상 제작_코부기 매뉴얼

집짓기 매뉴얼을 영상으로 만들어 보기로 했고, 코부기 4호를 지을 때는 매번 자세한 설명과 시공방법을 촬영했다. 매일 집 짓기와 촬영, 편집을 동시에 할 수는 없었다. 밤마다 그날 촬영한 영상을 백업하는 것만으로도 시간은 부족했다. 나중에 편집을 하고자 했으나 이 역시 팜프라촌 사업이 생기면서 일단락되었다. 당시 고작 2명에 불과했던 우리가 땅을 구하고 팜프라촌까지 준비하면서 영상까지 만드는 것은 역부족이었다. 결국 영상을 제작하는 일은 몇 차례 진행된 후 끝끝내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고 말았다. (코부기 매뉴얼 바로가기)



여느 스타트업이 다 그렇듯 인력이 부족하면 한 사람이 맡아야 하는 일은 끝이 없었다. 위의 일들 외에도 팜프라촌 사업계획서 작성, 지원사업 정산을 위한 세무, 팜프라촌이 공유지 사용을 위한 행정절차, 관련 법적 문제 해결 등 해야 할 일은 정말이지 너무 많았다. 하나의 조직을 둘러싸는 모든 것들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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