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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애진 Feb 07. 2021

04. 공동체 말고 회사인데요..

[2020년 연말정리] 팜프라 경영컨설팅을 받다.

4.1. 우리가 스타트업이 맞는가? : 공공성에 잠식되다

4.2. 경영 컨설팅을 받다: 현 상태에 대한 객관적 자각


2년 전, 어느 회사의 대표님이 말했다. “운동적 성격을 가지고 있어야 해. 그래야  혁신적인 무언가가 나오지”  하지만.. 운동적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과, 운동을 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었다.  지난 3년 동안 나는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내가 하는 일이 스타트업인 걸까?" 나는 명확하게 대답할 수 없었다.



4.1. 우리가 스타트업이 맞는가? : 공공성에 잠식되다

어엿한 4대 보험 대상자다...

사회적 의미에 갇혀 공공의 영역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 우리의 최대 한계였다. 우리는 분명 어엿하게 사업자등록증을 가지고 있고 영리를 추구하는 회사였지만, 외부에서는 자꾸 청년 단체 혹은 도와주어야 할 팀으로 보였다. 팜프라는 '지역에서 훌륭한 일을 하고 있는 청년 단체 혹은 팀'으로 불렸다.


혹자는 사업에는 무브먼트, 프로젝트, 비즈니스 세 가지 단계가 있다고 했다. 비즈니스에서 무브먼트로 나아갈 수는 있어도, 무브먼트에서 비즈니스로 나아가기는 몹시 어렵다고 했다. 나는 우리가 프로젝트에서 비즈니스로 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정신 차려보니 오히려 프로젝트에서 무브먼트로 가고 있었다. 아니 애초부터 무브먼트였던 것일지도..


특히나 팜프라촌 프로젝트는 우리가 공공 지원사업을 지속하게끔 만들었다. 팜프라촌은 군유지와 공공자원을 활용한 공공사업이었기 때문에 외부적으로 팜프라가 애매한 포지션이 되는 결과를 낳았다. 이해관계자가 많아지자 어느 순간 하나를 결정할 때도 이게 팜프라의 결정인지 타인에 의한 결정인지 헷갈리게 되었다. 그 결과 팜프라는 우리가 초기에 바랐던 이상을 꿈꾸되 현실에 발 딛고 사는 '균형'을 이뤄내지는 못했다. 3년 동안 지속 가능한 수익모델을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뜻이다.


무엇보다 팜프라촌 프로젝트가 야기했던 가장 큰 문제는 팜프라가 다른 일을 할 수는 없게 만든 것이었다. 우리를 회사로 인식하지 않는 주변인의 인식 때문이었는지 마을에 위치한 회사라는 장소적 한계였는지는 모르겠다. 우리 업무 시간에 지자체 사람들이 갑자기 불쑥 끼어들거나, 마을 분들이 개인적인 일을 부탁하는 등 업무를 방해받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공공에서도 끊임없이 용역 제안이나 자문은 많이 왔지만 업무 시간만 빼앗길 뿐 수익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팜프라는 중간지원조직도 아니고 용역을 전문으로 하는 회사도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하지만 단순히 업무 시간의 문제는 아니었다. 자꾸 공공 지원사업 계획서를 쓰는 데에 익숙해지면서 자체적으로 ‘수익모델’을 생각하기 어렵게 되었다. 행정과 자꾸 일하다 보니 행정에 맞춰 목차를 짜게 됐다. 사실 스타트업의 가장 장점은 빠르게 치고 빠지는 것임에도 몸집은 자꾸만 커지고 무거워져 갔다.


이런 우리를 스타트업이라고 할 수 있을까? 말마따나 프로젝트는 주어진 일을 하는 것이고 비즈니스는 내가 일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팜프라는 용역의 비중이 커지고 있었다. 물론 그것도 지속 가능한 수익모델이 될 수 있었으나, 애초에 우리가 바라던 모델은 아니었다는 점이 문제였다.



4.2. 경영 컨설팅을 받다: 현 상태에 대한 객관적 자각

그럼에도 3년을 달려왔더니 나름의 데이터들이 쌓여 있었다. 마침 팜프라촌 시즌2 입주민이었던 쑤비가 컨설팅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남해에 지내는 동안 팜프라 컨설팅을 받기로 했다. 그를 통해 우리는 처음으로 외부인의 시선으로 팜프라를 샅샅이 객관적으로 돌아볼 수 있었다.


| 브랜드의 목적

우리는 팜프라와 팜프라촌은 가치가 다르다고 생각했다. 팜프라가 만들고자 하는 다양한 촌 인프라 중 '주거'에 해당하는 것이 팜프라촌이기 때문이었다. 팜프라촌은 팜프라가 가진 수많은 비즈니스 모델들 중 하나였다.  하지만 제아무리 비즈니스 모델이 다르다고 한들 팜프라라는 브랜드의 관점에서는 같아야 했다. 팜프라의 정체성이 팜프라촌으로 인해 흔들렸던 이유는 팜프라의 각 비즈니스들이 지향하는 목적이 일관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 뒤섞인 많은 수익모델

처음으로 우리의 현 수익모델 상황이 한눈에 들어왔다. 팜프라는 비영리와 영리 사업이 섞여 있었다. 가장 문제는 실제 유의미한 수익을 내는 비즈니스가 되지 못할 사업들에 들이는 투자가 너무 컸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건 투자라기보다는 비용에 가까웠다.


| 핵심 타겟이 불분명

수익모델이 여러 가지라는 점은 핵심 타겟 설정을 어렵게 만들었다. 팜프라촌에 입주하는 사람, 팜프라 매거진을 구매하는 사람, 용역을 제안하는 사람이 모두 달랐다. 물론 각각의 팔로워와 고객이 다른 사람이라는 것은 문제가 안 되었다. 구매자의 다양성은 문제가 되지는 않았으나 우리의 '핵심 고객'이 누군가에 대해 여전히 애매한 것은 문제였다.


| 조직은 PM 집합소

쑤비가 말했다. "지금 팜프라는 PM 들로만 구성된 형태예요. 경영인은 없는 거죠."  한 프로젝트를 성공시키기 위해 협력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맡은 일을 알아서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생각해보니 우리는 경영컨설팅 업체 마냥 한 사람이 하나의 프로젝트를 온전히 맡아서 하고 있었다. 그렇다 보니 우리의 회의는 논의하고 발전시키는 것이 아니라 각자 업무를 공유하고 자문을 구하는 데에 그쳤다. 심지어 대표인 지황 조차 팀원들의 업무나 진행 상황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다. 우선순위를 정해 쳐내지 못한 채 모든 것을 다 하려고 한 것이 과욕이었을까. 언젠가부터 팜프라는 각자가 PM인 상태로 제각기 굴러가고 있었다. 애초에 우리는 각자가 원하는 것을 향한다고 하였지만 그건 여러 프로젝터들이 모인 코워킹 그룹일 뿐, 하나의 회사가 되는 길이 아니었다. 회사가 되기 위해서는 결국 누군가는 하고자 했던 것을 일시적으로(하지만 보장받지 못한 채로) 포기했어야만 했다.



지금 돌아보면 왜 '그 당시에 우리가 그런 선택을 내렸을까?' 기가 찰 정도로 어이가 없어 스스로도 의문스러운 경우가 있다. 물론 그 당시에는 최선이라고 생각했던 결정이었다. 그 사실이 웃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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