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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애진 Feb 07. 2021

03. 여전히 갈길 많은 팜프라촌

[2020년 연말정리] 팜프라촌 시즌2 그리고 종료

3.1. 민원의 등장: 새로운 긴장감을 불어넣었다.

3.2. 팜프라촌이 남긴 것: 그리고 나아가야 할 방향


서울시 청년청 연결의 가능성 지원사업에 연속으로 선정되었다. 덕분에 작년에 이어 팜프라촌 시즌2를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 이번도 역시 두모마을 양아 분교에서 진행하기로 했다. 하지만..



3.1. 민원의 등장: 새로운 긴장감을 불어넣었다.

학교 민원이 들어왔다고 한다. 들어보니 생각보다 심각한 상황이었다. '영업행위' '시정명령' 같은 낯설지만 보통 문제는 아닌 듯한 단어들이 들려왔다. 그러더니 끝내 하는 말은 "학교에서 다 나가야 한다"란다. 이 갑자기 무슨 일이지.


가장 문제가 되었던 것은 2개월 동안 운영했던 '웰컴하우스'였다. 팜프라촌이 위치한 외진 마을 특성상 숙박할 곳이 없으면 외부 방문객이 찾아오기 힘들었다. 주로 수도권에서 찾아오기 때문에 당일치기를 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교통비도 교통비였지만 유난히도 비싼 남해 숙박비를 고려할 때 양아 분교의 방갈로 1개를 숙박 형태로 제공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양아 분교는 상주중학교에서 임대하고 있었으나 공과금은 우리 측에서 지출하고 있었으므로 소정의 비용만 받는 방식으로 몇 차례 운영했다. 이 부분에서 민원이 들어왔던 것이다.


한 달이 넘는 갈등과 타협 끝에 내린 통보는 현 양아 분교를 사무 목적으로는 사용할 수 있어도 주거 목적으로는 이용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주거를 다른 곳에 구해야 한다지만 대체 어디에? 두모마을에는 빈집이 없다. 아니 빈집이 있어도 시골의 빈집을 임대하는 게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당연히 여기도 집이나 토지에 관해서는 이해관계가 복잡하다. 마을 사람들에게 땅은 문화유산과 같이 보존해야 하는 대상이다. 웬만큼 생계가 급하지 않은 이상 절대 팔지 않는다. 결국 우리가 또 할 수 있는 것은 단지 주변 어른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민폐를 끼치는 것뿐이었다. 이토록 가장 기본적인 주거 인프라부터 해결되지 않는 곳에서 앞으로 계속 사업을 해나갈 수 있을까.. 회의감에 휩싸였다.


메일로 온 [민원 상황 정리] 파일을 읽어보는데 마지막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1차 민원에 답변을 올렸으나 2차 추가 답변을 요구하여 또다시 답변을 올린 상태임 (또다시 3차 답변을 요구하고 있음)’ 이를 보면서 내가 지금 대체 왜 무엇을 하자고 여기에 있는 것인지, 무엇이 부족하고 무엇이 모자라서 이 민원에 대해 하나하나 반박을 하고 결국은 쫓겨나야 하는 것인지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 이제는 그냥 다 때려치우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남해군을 비롯한 온갖 타지자체에서는 우리를 "대안"이라 치켜세우며 자문을 구하러 오면서 결국에는 이상한 논리로 학교에서 나가라고 한다. 지역의 관심과 시기를 동시에 받는 상황에 답답함이 밀려왔다.


망연자실한 우리를 보며 가던 길 멈추고 이야기하던 마을 어르신들

이런 우리의 상황에 사무장님이 말했다. “내 같으면 지금 이렇게 되블면 떠나겄다. 우리가 잡고 있으니까 못 떠나는 거지” 신기하게 그 순간 위로를 받은 듯해 웃음이 났다. 우리를 이해해주는 사람이라서. 상주중학교 교장선생님 역시 말하셨다. “사고 많이 쳐라. 우리가 다 커버 쳐 줄게” 그래도 여기 이곳에는 우리를 도와줄 이런 어른들이 계셨다. 알아서 앞에 나서서 차단하고 지지해주시는 분들. 사람의 존재가 우리가 함부로 섣부르게 떠날 수 없는 이유였다.


결국 우리는 두모마을의 체험관과 펜션을 임대하기로 했다. 양아 분교 역시 농업회사법인 팜프라를 임차인으로 정식 임대를 시작했다.


돌이켜 보면 이 민원의 등장은 팜프라 뿐만 아니라 남해와 촌에 큰 시사점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지역에도 조금씩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오고 있음을 기존 사람들에게 인식시키고 새로운 긴장감을 자아냈다는 것. 애초에 내가 목표했던 '교류'의 과정에서 마주해야 할 당연한 수순이었다.



3.2. 팜프라촌이 남긴 것: 그리고 나아가야 할 방향

팜프라촌 시즌2 촌민들과 함께 보낸 크리스마스

나에게 팜프라촌은 한 마디로 '딜레마'였다. 앞으로 나아갈 수도, 뒤로 갈 수도 없는, 진퇴양난 같은 시간이었다. 내 안의 모순도 발견했다. 나는 도시의 경쟁과 바쁨에서 벗어나 자연 속에서 현재를 온전히 느끼는 그런 삶을 살기 위해 팜프라를 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나는 굉장히 미래지향적인(어쩌면 미래만 있는) 포부를 가지고 왔다. 아름다운 자연을 보는 것은 때때로 좋지만 그게 목적은 아니었기에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 일하는 것이 더 충만한 시간이었다. 팜프라를 만들어 가고 키워가는 게 좋았다. 언제나 더 크지 못해 안달이었다. 하지만 이런 나의 모습을 보는 외부인들은 더러 실망했다. 여기서도 그렇게 도시처럼 아니 도시보다도 더 바쁘게 지내면 대체 촌에 사는 이유가 뭐냐고 물었다. 그 간극 사이에서 나는 어려웠다. 대안적인 삶의 방식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남을 보여주고 싶었으나, 이를 굳이 내가 지역의 플레이어가 되어서 하는 게 맞는 걸까 회의감이 들었다.


팜프라에게도 역시 팜프라촌은 딜레마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1) 팜프라의 정체성을 공고히 하기 위한 수단이자, 2) 팜프라의 정체성을 흐리게 한 원흉이었다. 팜프라촌으로 인해 팜프라의 ‘촌 인프라’를 만든다는 점이 보다 확실하게 전달될 수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팜프라 = 팜프라촌이 되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실제로 팜프라와 팜프라촌을 동일시하는 외부인들이 많았다.


어찌 됐든 사람들에게 각인을 시켰으므로 팜프라에게 중요한 자산이기는 했으나 동시에 짐이기도 했다. 사실 민간 차원에서 진행하기에는 팜프라촌은 수익성 없이 단순 운영에 그치는 프로젝트였다. 심지어 우리는 군유지에서 사업을 진행하고 있었으므로 여기에 투자한 돈이 우리에게 남는 것도 아니었다. 팜프라촌 자체가 적합한 비즈니스 모델이 되지 않는다면 지원사업이 끝나는 순간 사라져 버릴 게 분명했다. 솔직히 팜프라촌은 팜프라의 경제적 지속가능성을 중시한다면 더 이상 진행하기 쉽지 않다는 게 우리의 결론이었다. 조금 씁쓸하지만 시원 섭섭하기도 했다.


이에 준민이 말했다.


팜프라촌을 중단한다고 하면  중단이 아쉽다기보다는 오히려 박수를 받아야 하지 않나 싶어요.  민간회사가 하기 힘든 일을  번이나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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