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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애진 Feb 04. 2021

02. 도시와 촌 그 사이의 접점

[2020년 연말정리] 경계에서 이루어졌던 두 가지 프로젝트

2.1. 촌의 결핍: 맛있게 읽고 재밌게 먹는 잡지, 팜프라 매거진

2.2. 도시의 결핍: 유채꽃축제를 보내드립니다


통역과 연결. 내가 팜프라에 왔던 이유는 촌과 도시의 시스템과 문법을 모두 이해함으로써 둘 사이를  통역하고 연결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서로가 가진 결핍감을 채울 접점을 만들어냄으로써 각자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것. 그런 프로젝트들을 많이 만들어내고 싶었다. 비록 코로나로 인해 물리적인 접촉은 더욱 어려웠지만, 오히려 애초의 바람대로 접점이 되었던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 수 있었던 한 해였다. 진영으로부터 "팜프라를 하면서 가장 즐거웠던 때는 언제예요?"하고 질문을 받았을 때, 나는 곰곰이 생각한 후 "시금치 매거진과 유채꽃축제를 팔았을 때요"라고 답했다.



2.1. 촌의 결핍: 맛있게 읽고 재밌게 먹는 잡지, 팜프라 매거진

기후가 온화한 두모마을은 이모작을 한다. 봄부터 가을까지  재배를 마치면 시금치 철이 다가온다. 덕분에  겨울에도 마을은 늦봄 마냥 푸르다. 이렇게 마을에서 나는 농산물은 대부분 농협을 통해 도매로 판매된다. 그 흔한 소비자와 직거래를 하기란 평균 연령이 65세가 넘는 이곳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사무장님은 말했다. “시골 사람들은 했던 것만 하지 새로운 것을 알려주면  습득하는 기간이 너무 많이 걸려


그러던 어느 날 이장님이 말했다. “학교 옆 시금치 400평, 한 번 팔아보려?”

그게 팜프라 매거진의 시작이었다.


| 교류 촉발제로서의 매거진

팜프라 다운 농산물 판매 방식을 고민했다. 농산물에 간단한 생산자 소개를 덧붙여 판매하는 곳들은 점차 많아졌다. 우리는 거기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야 했다. 단순히 유통에만 그치지 않고 지속적인 교류를 이끌어내는 확장 가능한 플랫폼 같은 무엇을 상상했다. 매거진을 통해 제철 먹거리를 알고 직접 생산자를 만나고 나아가 비슷한 결을 가진 타 지역의 커뮤니티도 알 수는 없을까?

| 먹거리의 본모습

먹거리 이면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이상으로 먹거리의 원 상태를 보여주는 것 역시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정제되고 다듬어지는 도시 속 농수산물의 모습이 아닌 자연 그대로인 촌의 농수산물의 모습을 아는 것도 호기심의 시발점이 될 것이었다. 그래서 시금치의 뿌리를 자르지 않고 꽃 같은 상태 그대로 보냈다. 동시에 직접 와서 보지 않으면 알 수 없고 생각할 수 없는 것들 역시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팜투테이블이란 이름으로 직접 이곳에 와서 시금치를 수확하고 시금치 요리를 해보는 시간을 기획했다.


| 로컬 셰프들과의 연계

애초의 목적은 마을 사람들이 가진 남해스러운 레시피를 발굴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교류'라는 것은 시골의 것을 일방적으로 전달만 해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었다. 마을 외에도 타 지역의 사람들과 함께 레시피를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 란 생각으로 이어졌다. 그 결과 다양한 레시피가 나올 수 있었고 이를 본 마을 어르신들 역시 신기한 눈빛으로 말했다.  "아니 도시 사람들은 시금치를 이렇게도 요리 해먹 고만"


매서운 칼바람을 맞으며 마을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시금치 인터뷰를 하고, 1톤 이상의 시금치를 캐고 개리며(=고르다) 몇 주간을 보냈다. 다행히 팜프라 매거진의 수요는 기대 이상이었다. 순식간에 1쇄가 매진되었고 2쇄를 찍었다. 우체국 앞을 가득 메운 택배 상자들을 상주우체국 국장님은 말했다. “아니 이런 적은 없었는데..” 사무장님도 뿌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다른 마을에서도 매거진 보고 싶다고 난리여서 내가 오늘 얼마인지 물어본댔다” 이장님은 어마어마하게 칭찬을 했다. "시금치가 영어로 SPINACH여? 외국인들도 시금치를 먹어? 어느 누가 이런 걸 생각했겠냐”


비록 큰 매출을 달성하거나 큰 물량을 소비한 것은 아니었지만 주변인들의 놀라움과 기쁨 가득한 얼굴은 우리가 그래도 촌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구나 생각하게끔 했다. 무엇보다 매거진을 기획하고 제작하면서 스스로도 마을과 촌에 대한 이해도가 올라가는 것 또한 느껴졌다.



2.2. 도시의 결핍: 유채꽃축제를 보내드립니다

봄이 되면 두모마을의 10만여 평의 다랭이논에는 유채꽃이 만발한다. 하지만 코로나가 닥치자 사람들의 발걸음은 멈췄다. 마을 사람들 역시 개화기 전 유채나물 수확을 포기했고 야속하게도 유채꽃은 더더욱 만발했다. 누구에게도 보이지 못하고 그대로 갈아엎어질 유채꽃을 우리만 즐기고 있기에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황이 유채꽃을 팔아보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나는 덧붙였다. "코로나 때문에 유채꽃축제도 취소하고 있잖아. 유채꽃축제를 보내드린다고 하는 거 어때?"

그 즉시 기획을 하고 포스터를 제작했다. '유채꽃축제를 보내드립니다.'


| 기존에 없던 새로운 수익창출

밤새 주문이 폭주하기를 여러 번. 꽃을 딸 때도 샤워를 할 때도 쉴 새 없이 진동음이 울렸다. 며칠 뒤에는 전화가 왔다. "유채꽃축제를 보내드립니다가 인상 깊은데 취재를 할 수 있을까요?" 단 일주일만 판매하려 했던 유채꽃은 방송에 나가자 도저히 물량이 감당 안 될 정도가 되었다. 급하게 일시 품절 공고를 올렸지만 다시 주문창을 열자마자 몇십 건이 순식간에 들어왔다. 매일같이 유채꽃을 따고 있는 우리들을 보며 마을 어르신들은 의아해했다. "유채꽃을 왜 따?" 하염없이 택배를 나르는 우리들을 보며 상주 우체국장님은 또 한 번 놀랬다. "유채꽃을 보낸다고요??" 당연한 반응이었다. 마을에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하디 흔한 유채꽃이었으니까. 대동강 물을 파는 봉이 김선달이 된 기분이었다.  


| 우리는 지나칠 뻔한 봄을 팔았던 거야

사실 유채꽃은 집에 두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꽃이었다. 유채꽃축제가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꽃이 피는 기간은 길지만 매일 꽃잎이 우수수 떨어지는 유채꽃은 명백히 야외 관상용 꽃이었다. 그럼에도 봄을 받은 사람들은 기뻐했다. "떨어진 꽃잎들도 금싸라기 같이 너무 예뻐요" "남해의 봄을 보내줘서 감사해요!" 제발 판매해달라는 메시지도 왔다. "엄마가 가장 좋아하는 꽃이라서 매년 봄마다 유채꽃축제를 보러 갔었는데 이제는 엄마가 아프셔서 못 가거든요. 다시 판매하시게 되면 꼭 알려주세요" 유채꽃축제를 주문한 사람들이 단순히 꽃을 주문한 것이 아니라 매년 만끽하던 봄날을 산 것이었다. 우리는 유채꽃이 아니라 지나칠 뻔한 봄을 판 것이었다. 제품에 있어서 시의성이 얼마나 중요한가 다시 한번 깨달았다. 트렌드를 파악한다는 것은 결국 시기의 흐름을 얼마나 잘 읽으며 지금 사람들이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음을 뜻했다.


촌과 도시의 이토록 다른 반응은 촌에는 넘쳐나는 자원이 도시에는 부족하다는 것을 의미했다. 촌에는 흔한 것이 도시에는 값진 가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촌의 유휴자원을 활용해 새로운 수익원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프로젝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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