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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애진 Feb 07. 2021

05. 2020년의 역량과 수익모델

[2020년 연말정리] 지속가능성에 대한 고민

5.1. 역량에 대한 고민: 전략을 세우는 법

5.2. 수익모델에 대한 고민: 숫자로 환산하는 법


'나는 현재 성장해가고 있는가? 배워가고 쌓아가고 발전하고 있는가? 어떤 역량을 키우고 싶은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하고 싶은 것을 어떻게 ‘돈’으로 만들어낼 것인가?' 연초부터 항상 머릿속에 맴돌았던 문장들이다.



5.1. 역량에 대한 고민: 전략을 세우는 법

대개 책상에 앉아 온갖 업무를 작업하지만 종종 강연도 하고 인터뷰도 나간다

나는 스스로를 잡부라고 부를 만큼 잡기에 능하다. 중요한 것은 가치와 방향이었기 때문에 그에 필요하다고 생각이 들면 어떤 업무든 알아서 독학해서 진행하곤 했다. 로고, 포스터, 굿즈를 디자인하고, SNS를 운영하고 웹사이트를 만들고, 사업계획서를 쓰고, 영상이 필요하면 프리미어 프로와 애프터 이펙트를 배워 영상 편집을 했다. 잡기에 능하다는 것은 다양한 일들을 물어다 준다는 장점이 있었다. 하지만 언제나 결국은 결핍감을 느끼게 한다는 것이 최대의 단점이었다. 할 줄 아는 것이 많다는 것은 할 줄 아는 것이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 남해바래길2.0 디자인 개발

지난 4월, 팜프라에 잠시 방문한 바래길 탐방센터 팀장님이 불쑥 제안을 했다. 남해 바래길을 이번에 리뉴얼하는데 로고를 비롯한 전반적인 디자인 가이드라인 개발을 맡아달라는 것이었다. (남해 바래길은 제주 올레길처럼 남해를 두르는 걷는 길이다) 팜프라만 생각하던 차에 정신을 환기할 수 있는 신선하고도 재밌는 일이었다. 더불어 수익 측면에서도 나쁘지 않았다. 무엇보다 자체 로고, 일러스트 작업에서 이제는 외부 브랜딩 업무까지 확장해나간다는 사실에 내심 설렜다.


하지만.. 바래길 로고 작업을 하면서도 끊임없이 찾아왔던 감정은 ‘자괴감’이었다. 스스로의 역량에 다시 한번 장벽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도 그럴게 비전공자인 나는 그저 순간순간 필요하다고 느끼는 것을 해가고 있을 뿐, 이를 실제 업계에서는 무엇이라고 부르는지 개념조차 몰랐다. 나는 디자인만 했을 뿐이지 전체에 대한 전략을 세우고 결과를 측정하는 것까지는 하지 못했다. 애초에 전략이 없었다. 매일을 스스로에게 되물었다. '나는 문제 해결로서의 디자인을 하고 있는가? 단순히 시각적으로 만족스러운 디자인은 아닌가? 바래길을 이렇게 디자인한 이유는 무엇인가? 내가 여기에서 드러내고자 했던 가치와 철학은?'


전문성이라는 것에 대한 갈망이 더 커져만 갔다. 도시의, 서울의 다른 스튜디오들은 어떻게 작업을 할지 궁금했다. 전문성을 갖추지 못함은 다시 내가 촌에 있기 때문으로 귀결되었다. 도시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라기보다는 내 역량이 정체될 것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나는 스스로가 가진 것이 없고, 자신이 없다고 여겨졌다. 결국 내 능력이 이렇게 결정되어버리지 않을까 두려워졌다. 어쩌면 나는 경쟁자가 없는 판에 있기 때문에 그나마 눈에 띌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경쟁자의 등장을 두려워하는 것은 아닐까? 내가 내 능력에 자신을 갖고, ‘잘’ 한다고 말할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내 능력에 자신이 없기 때문에 여유가 사라지면서, 마음이 점점 삐뚤빼뚤해지는 것 같았다.


"자유란 결국 내가 어떻게 일하고 싶은지 선택할 수 있어야 하는 거거든요. 인디판에만 계속 있는다고 자유가 아니거든."



5.2. 수익모델에 대한 고민: 숫자로 환산하는 법

시금치 매거진, 고사리 매거진, 돌문어 매거진

지속적으로 생존하기 위해서는 수익을 내야 한다. 그 실험으로서 우리는 일 년 동안 3차례 팜프라 매거진을 진행했다. 그리고 컨설팅을 받으면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지금까지 만들었던 제품(워크웨어 폿, 유채꽃축제, 시금치&고사리&돌문어 매거진)들의 총 매입 매출을 살펴보는 일이었다. 모든 결과를 숫자로 환산하여 정확히 수익성을 검토하는 것이었다.


엑셀의 빨간 숫자는 처참했다. 가장 큰 허점은 지금까지 우리가 현재 지원받고 있는 인건비는 고려하지 않은 채 순수익을 계산했다는 점이었다. 실질적인 수익률을 알기 위해서는 이 또한 포함해야 했다. 우리의 노력과 시간에 정당한 인건비를 책정하고 엑셀을 돌리자 수익은 -40% 그 이상이 되었다. 그나마 매거진을 만들지 않았던 유채꽃축제를 보내드립니다 프로젝트가 수익률이 가장 높았다...


나름대로 빠른 실행력과 피드백을 바탕으로 진행해왔으나, 결론적으로 팜프라 매거진은 더 이상 지속 불가능했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당시 팜프라는 책을 만드는 일도 처음, 농산물을 수확하는 일도 처음이었다. 무엇하나 지속 가능한 수준까지 끌어올려진 것 없는 상태에서 두 가지 토끼를 한 번에 잡겠다는 마음은 과욕이었다. 사업을 확장하는 것은 기존의 사업이 지속가능할 때 하는 일이다.


팜프라에서 대안이라고 할 수 있는 어떤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노력했고, 기존의 시스템에 조금씩 유의미한 균열을 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수익 없이는 지속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었다. 법인이라는 새로운 생명체까지 탄생한 마당에 영원히 지원사업과 용역으로 생계를 지속해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애초에 현실에 발붙이자며 ‘회사’를 표방하고 이에 대한 공동의 동의로 시작했다. 정책의 틈새를 발견하고 제안할 수는 있으나 그걸 입법하는 것은 회사가 하는 일은 아님이 분명했다. 돈은 결국 회사의 생명을 지속하게끔 하는 ‘피’와 같았다. 단순히 좋은 활동에 그치지 않고 삶으로서 지속 가능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제대로 된 수익이 있어야 한다. 애초에 문제를 제기하는 운동이 아닌, 문제를 해결하는 비즈니스를 하겠다고 시작했던 것 아닌가.


“그래도 (집에) 여유가 있어서 이 일을 지속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이 말 자체가 잘못되었던 것이었다. 이는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이 ‘문제의식’ 에만 치우쳤다는 뜻이었다. 유의미한 ‘수익’은 전혀 보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런 말은 애초에 하면 안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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