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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인 Apr 08. 2024

낳지 말까? - 육아적합성 0%

모두에게 육아가 천직일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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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드는 것의 큰 장점 중 하나는 나 자신을 더 잘 알게 되는 것이다. 30대가 되고 나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이해가 더 깊어지며 수월해지는 것들이 있다. 적어도 취향과 기질에 맞지 않는 일을 선택할 수 있다.

어울리지 않는 옷을 억지로 입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그런데 나를 더 잘 알수록 분명해지는 것이, 나는 육아라는 일, 그리고 엄마라는 역할에 적합한 사람이 아닌 것 같다는 거다.



내 맘대로 안 되는 육아, 나 견뎌낼 수 있을까?


나는 대체로 예측 불가능한 상황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계획을 세우고 그 안에서 안정감을 느낀다. 장점이라면 어쨌든 해야 하는 일은 꼭 해내곤 하는 것. 하지만 계획이 틀어지고 바뀌는 상황에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이 큰 문제다. 계획대로 완수해 가면서 희열을 느낀다기보다 혹시 계획대로 되지 않을까 걱정과 압박에 시달리는 쪽에 가깝다.


그렇다, 결국 나의 통제 성향은 불안감에 기초한다. 인생이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많이 연습하고 있지만 여전히 갑작스러운 회사 일 앞에서는 심장이 두근거리고, 계획이 어그러지는 상황에는 화가 난다. 


그런데 육아만큼 세상에서 내 맘대로 안 되는 게 없다고 한다. 그 불확실성을 내가 견뎌낼 수 있을까?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에게 그 불안감을 물려주지 않을 수 있을까.


@Pinterest


예를 들어 아기를 낳는다면 나는 미디어 노출을 최대한 피하고 싶다. 하지만 온 세상이 미디어인 환경에서 이를 완벽히 차단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린이집에서도 학습용 미디어를 보여줄 테니 말이다. 상상만으로도 벌써 스트레스다. 그리고 현실에서 이 스트레스는 고스란히 남편과 아이에게 전해지겠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을 통제하려는 마음을 놓지 않는다면 모두가 괴로워질 텐데, 이게 참 어려울 것 같다.



비교하지 않을 수 있을까?


"결국 끝에 가서 행복하게 사는 사람은 행복할 줄 아는 사람이다.


얼마 전 유튜브 <조승연의 탐구생활>에서 본 인상 깊은 문장이다. 행복할 줄 아는 사람이란 자신의 인생을 사는 사람이 아닐까. 남들이 뭐라 하든, 어떻게 살든 나의 행복이 뭔지 아는 사람. 그리고 그걸 추구하는 사람.


반면 대한민국의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나는 계속해서 남과 나를 비교하고, 세상의 기준에 비추어 내 삶을 살아왔던 것 같다. '남들만큼은 잘 살고 싶다.'라는 마음은 어떤 것을 성취하는 데 있어 원동력으로 작용할 때도 많았다. 하지만 그것이 행복한 삶인가?라는 질문에는 긍정적으로 답하기 어렵다.


유튜브 <조승연의 탐구생활>


입시 경쟁도, 취업 경쟁도 다 끝났다. 어느 정도 인생의 항로가 정해진 것처럼 보이는 30대가 되어서야 나는 비로소 온전한 나만의 행복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아이라는 존재가 생기는 순간 또 다른 욕망이 올라오면 어쩌지. 남들만큼은 키워내고 싶다는 욕망, 남들보다는 잘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 같은 것 말이다. 만약 내 아이와 다른 아이를 비교한다면, 우리의 양육 환경과 다른 가정의 양육 환경을 비교한다면 그때부터 육아는 지옥이 될 텐데.



쉽게 방전되는 나


인생의 중요한 발견 중 하나는 내가 에너지가 많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이걸 받아들인 이후로 삶이 어찌나 편해졌는지. 그래서 나의 하루는 정적인 모습에 가깝다. 집에서 요가하고, 차를 마시고, 강아지와 산책하며 일하는 것이 거의 전부다. 좋은 곳일지라도 시끄럽고 사람이 많은 곳은 피하고 싶다. 좋아하는 이들이라도 누군가를 만나면 소진이 된다. 


누가 봐도 에너자이저인 선배들도 육아는 힘들다던데, 과연 내게 그걸 해낼 에너지가 있을까? 어쨌든 눈 감는 순간까지 신경 써야 할 가족 구성원 하나가 추가되는 것인데 말이다.


@Pinterest


잠을 못 자서 체력적으로 힘에 부치는 신생아 시기는 어찌저찌 몸을 갈아 버틴다 쳐도 다양한 감각 자극이 필요한 유아기도 걱정이다. 아이를 키우는 동료들을 보면 주말이 어찌나 다채로운지. 키즈카페부터 놀이공원, 캠핑, 수영장, 여행.. 지금의 우리 부부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스케줄을 매주 소화하는 모습은 놀랍고 대단하다. 


부모가 쉴 새 없이 수다도 떨어주고 넓은 세상도 보여주는 건 당연한 일인데, 루틴과 안정이 절대적으로 중요한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인 걸까. 



모두에게 육아가 천직일 순 없다. 


여행지 하나를 선택할 때도 취향과 성격이 작용한다. 일상생활에서 긴장과 불안이 높은 나는 볼거리가 많은 도시보다는 파도 소리를 들으며 이완할 수 있는 휴양지가 좋다. 직업을 고를 때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다른 면에서 유능하다고 한들 사람들과 만나는 것만으로도 에너지 소진이 큰 내가 영업직을 맡기란 어렵다. 


출산이 필수가 아닌 선택이 된 시대, 최소 20년을 바라보고 하는 육아인 만큼 내가 과연 이 여정에 적합한지 잘 따져보는 것도 당연하다는 생각이다. 분명 육아가 천직인 사람도 있겠지만 누군가에겐 이만큼 힘들고 안 맞는 일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실행취소 가 되는 선택도 아니고 말이다. 


아마 나는 육아가 적성인 사람은 아닐 것이다. 이제 그 정도의 판단은 된다. 이렇게 안 맞을 게 뻔한데 그냥 아이 없이 살아도 좋지 않을까? 아니, 이런 나도 아이를 낳아서 잘 키울 수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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