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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인 Apr 15. 2024

낳을까? - 딩크로 살아도 괜찮을까

나 비주류로 살 자신 있나?


아이 안 낳을 거면 왜 결혼해?


출산율이 계속 최저치를 경신하고 있지만 둘러보면 우리 빼고는 다 아기를 낳는 것 같다. 벌써 둘째까지 있는 친구들도 심심찮게 보인다. 통계청에서 발표한 '2022년 신혼부부통계 결과'에 따르면 5년 미만 신혼부부 중 딩크의 비중은 28%라고 한다. 결혼을 잘 안 하는 추세지만 결혼을 한 부부 중 70% 이상은 5년 내에 출산을 한다는 거다.


미혼도 아니고 기혼 중에서는 소수인, 딩크 부부는 어딘가 애매한 존재다.

"아이를 안 낳을 거면 왜 결혼해, 혼자 살지?"라는 말도 심심찮게 들린다. 결혼의 완성이 곧 자녀라는 생각이 지배적인 사회에서 딩크는 여전히 마이너리티, 소수이자 비주류다.


@Pinterest Joy Guidone


대한민국에서 스무 살이 되기 전까지의 최우선 목표는 대입이다. 삶의 철학이나 내가 삶에서 진정 이루고 싶은 것을 고민할 기회 없이 성인이 된다. 여기서 끝나나 했는데 그다음엔 좋은 직장을 위해, 좋은 집을 위해 달려야 한다.


이렇게 정상성에 대한 압박이 너무나 큰 우리 사회가 너무 지긋지긋했고, 이것이 아이를 낳고 싶지 않은 주된 이유기도 하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정상적이라 여겨지는 인생 경로'를 꽤 충실히 따라온 사람으로서 문득 고민이 된다.


나, 비주류로 살 자신 있나?


남들 다 하는 거 한 번도 안 한 적 없었는데. 나 이래도 되는 걸까, 꼭 해야 할 숙제를 안 한 기분이랄까.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외딴섬 같은 신도시 딩크 부부  


최근에 다양한 가족의 형태가 소개되고 있지만 여전히 '가족' 하면 떠오르는 전형적인 이미지는 엄마와 아빠, 그리고 아이가 둘인 4인 가족이다. 우리 부부는 이른바 정상 가족이 살기에 최적화된 신도시에 살고 있다. 그래서일까, 동네 안에서는 유독 더 소수라는 것이 체감된다.


신도시에서 마주하는 내 또래의 대부분은 어린아이의 엄마다. 오후 5시쯤 반려견을 산책시킬 때 나와 비슷한 나잇대의 여성들이 하원 후 삼삼오오 놀이터에 모여있는 모습을 본다. 반면 나처럼 개를 산책시키는 사람들은 대부분 나이가 지긋한 중년 여성이다. 아이 없이 매일 부지런히 강아지와 걷는 30대 여성은 드물다.


@ZERO PER ZERO


농담 반, 진담 반 "나이가 들면 교회나 성당이라도 다녀야 하나"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아이가 있으면 아이를 중심으로 자연스러운 동네 커뮤니티가 생긴다. 아이의 친구, 아이의 학교, 아이의 학원 등. 반면 딩크 부부는 동네에서 외딴섬에 떠 있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로컬에 뿌리내리기 위한 자연스러운 방법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 의도적으로 부지런하게 노력해서 관계망을 만들어야만 한다.




딩크 선배님들은 어디에 있나요?


지금에야 둘이 사는 것이 부족함 없이 좋지만 나이가 들어서도 여전히 좋을까. 이럴 땐 선배 딩크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딩크로서의 좋은 역할 모델이 많지 않은 것도 확고한 결정이 망설여지는 이유 중 하나다. 출산이 의무가 아닌 선택이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니 전 세대에서는 쉽게 찾아보기 어렵다.


얼마 전 우연히 옛 인간극장 시리즈에서 60년째 자발적 딩크로 살고 있는 안일웅, 한소자 부부의 일화를 마주했다. 너무나도 새로웠고 이런 아름다운 본보기가 있다는 사실에 큰 위안을 받았다. 아무도 가르쳐주거나 보여준 적은 없지만 내가 정확히 살고 싶은 인생 형태를 드디어 만난 것이다.


내가 살고 싶은 모습, 안일웅 X한소자 부부


하지만 여전히 미디어나 주변에서 메인 서사를 차지하는 건 유자녀 가족이다. 작년에 처음으로 방문한 한의원 원장님이 초산은 절대 35세를 넘기지 말라면서, 아이를 꼭 낳으라고 잔소리를 했다. 이렇듯 정상성에 대한 압박이 큰 대한민국에서 딩크로 산다는 건 어쩌면 더욱 신념이 필요한 일이다.



안전한 선택을 하고 싶은 겁 많은 마음


긴 시간 비혼주의였지만 나의 신념과 달리 결혼을 하게 되었다. 결혼 생활은 여러모로 만족스러운데,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결혼의 장점 중 하나가 바로 사회적인 제도 안에 편입되었다는 안정감이다. 모두가 으레 그 나이쯤 하는 통과 의례를 나 역시 경험했다는 것으로부터 동시대 인류와 유대감을 느낀달까.


@Pinterst


모두가 온전히 스스로의 주체적인 행복을 찾는다면 좋겠지만 우리는 그것을 자라면서 훈련받거나 배운 적이 별로 없다. 그럴 때면 '남들 다 하는 선택이 안전하지 않을까'하는 멋없는 생각이 올라온다. 내가 결혼을 통해 경험한 것처럼 수많은 사람이 선택한 길이 좀 더 안정적인, 보장된 길처럼 보이는 것이다.


비주류로 떳떳하게 살 용기가 없어서 하는 바보 같은 고민이지만, '낳을까?'로 기우는 데에는 이 겁쟁이 같은 마음도 한몫한다고 솔직히 고백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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