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 육아와 자유가 공존할 수 있나요
"학창 시절이 좋았지"라는 말에 공감하기 어렵다. 과거보다 늘 지금이 더 좋다고 생각하자는 주의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나의 10대는 자유가 부재했던 시기로 기억되기 때문이다. 원하는 것을 먹을 자유가 없었고(급식), 원하는 옷을 입지 못하고(교복), 원하는 장소에 있지 못했다(학교). 부모님이 주는 용돈이 수입의 전부였으니 경제적 자유도 없었다.
살아갈수록 내가 생각보다 자유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라는 걸 깨닫고 있다. 아이 있는 삶을 생각하면 기쁨과 사랑의 이미지가 떠오르지만, 거의 동시에 나 자신으로 살지 못할 거라는 두려움이 뒤이어 따라온다.
그렇다면 내가 원하는 자유로운 삶이란 뭘까?
임신, 출산, 육아와 자유는 공존할 수 있을까.
가족과 일 다음으로 내 삶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있다면 요가다. 요가를 시작한 지는 햇수로 9년째, 4년 전부터는 지도자 과정을 계기로 단순한 취미 이상이 되었다. 운동이라곤 전혀 안 했던 내가 매일 자발적으로 몸을 움직이는 생활을 하게끔 해 준 요가는 무척 소중하다. 언젠가는 직업으로 요가를 나누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꿈도 생겼다.
낳을까? 쪽으로 생각이 기울 때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걱정 중 하나가 '요가 수련을 계속할 수 있을까'다. 아기를 몸에 품고 있는 10개월 동안, 그리고 육아에 집중하는 몇 년 동안은 지금과 같은 정도와 빈도로 수련하긴 어려울 거다. 오랜 시간 동안 차근차근 부드럽게 늘리고 단단하게 조여왔던 몸, 아주 느리게 점점 섬세해져가고 있는 감각들이 다시 무뎌진다고 생각하면 무섭다.
물론 임신과 출산을 경험하고 복귀하는 멋진 요가 수련자들이 많다. 내가 그만큼 담대하지 못한 것이겠지. 강도 높은 육체 수련만이 요가의 전부는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이틀만 매트에 오르지 않아도 온몸이 뻐근하고 마음 어딘가가 초조한 나로서는 자신이 없다.
임신 중에 채식을 지속할 수 있을까? 페스코테리언식을 한 지 5년째다. 달걀과 유제품, 생선은 허용하지만 소, 돼지, 닭 등 육류는 일절 먹지 않는다. 지금은 재택근무를 하니 큰 문제가 없지만 출퇴근하는 회사를 다닐 땐 먹을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아 굉장히 힘들었다. 어떠한 동물성 음식도 섭취하지 않는 완전 비건식을 하고 싶지만 선택지가 많지 않아 페스코테리언으로 타협한 부분도 있다.
혼자서도 힘든 채식, 임신을 하면 그 난이도가 배로 높아질 것이다. 산모가 섭취하는 것이 태아에게는 유일하고 절대적이지 않나. 완전 비건식으로도 균형 잡힌 식단을 통해 영양소를 골고루 섭취할 수 있다는 것은 과학적으로 증명된 사실이다. 해외에는 완전 채식으로 임신 기간을 보내고 이유식을 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그렇게 영양소를 따져가며 식단을 잘 꾸리는 일은 쉽지 않다. 특히 아직 비건 진화적이지 않은 우리나라에서는 더 그렇다.
게다가 내가 고기를 안 먹는다는 것을 아는 주변 사람들의 우려도 걱정된다.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하고 하루 세 번 찾아오는 '먹는 일'에 신경이 곤두선다는 것은 삶의 질을 크게 떨어뜨린다. 임신과 출산을 하면서도 원하지 않는 것을 먹지 않을 자유를 지킬 수 있을까.
나는 해외여행을 참 좋아했다. 공휴일과 징검다리 휴가를 붙여 매년 3~4번은 어딘가로 떠나곤 했다. 여행을 충분히 해봤기에 더 이상 욕심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4년 전 강아지를 입양하고 나서 크게 깨달은 사실이 있다. 안 가는 것과 못 가는 것은 정말 다른 일이라고.
토리와 함께한 4년 동안 우리 부부는 딱 한 번 큰 마음을 먹고 해외여행을 갔다. 여행뿐 아니라 일상적인 둘 만의 외출에도 제한이 생긴다. 5시간 이상 집을 비우지 않으려 하고 그런 일이 생긴다면 반드시 펫시터를 부르거나 유치원이나 부모님 댁에 맡긴다. 여기에 당연히 공짜는 없다. 비용도 비용이지만 남의 손에 맡긴다는 게 마음이 초조하기도 하고 돌아오면 미안하기도 하다.
강아지랑 함께 여행하면 되지 않냐고? 물론 국내 여행은 가능하다. 다만 강아지랑 함께하는 여행은 남편과 나 둘만의 여행과는 차원이 다르다. 갈 수 있는 숙소 자체가 적고, 갈 수 있는 식당도 몇 없다. 토리와 함께하는 여행에선 둘이서라면 절대 선택하지 않았을 퀄리티의 숙소에서 묵고, 식사는 매 번 테이크아웃을 해 차에서 먹는다.
아기랑 함께하는 여행은 제한이 훨씬 덜 하겠지만, 나의 여행할 자유보다는 아기의 컨디션이 1순위가 된다는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여행을 1년에 몇 번이나 간다고, 그게 그렇게 중요하냐 싶겠지만 원할 때 가볍게 훌쩍 떠날 자유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일상을 버틸 큰 힘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강아지에 아기까지 생긴다면 떠나기까지 너무 많은 것을 생각해야만 한다.
아기가 주는 기쁨과 행복에 비해서 내가 추구하는 자유는 하찮아보일지도 모른다. 그렇더라도 지금 이 순간 내 삶에 가장 중요한 것이기에 그것을 잘 지켜가며 살고 싶다.
30대에 이르러 겨우 얻은 자유다. 그렇기에 자유보다 우선이 되어야 할 무언가가 생긴다는 것은 설렘보다는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기쁨보다 자유, 오늘도 ‘낳지 말자’로 기우는 나의 마음을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