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혜인 Apr 29. 2024

낳을까? - 1,000억 주면 낳을래?

사실 마음 깊은 속에서는 아이를 원하는 게 아닐까

Pinterst

"진짜 돈 많이 벌면 뭐 할래?"


몇 년 전 봤던 조수용 카카오 전 대표의 인터뷰가 깊이 남아있다.

그는 "진짜 돈 많이 벌면 뭐 할래?"라고 스스로에게 자주 묻는다고 했다.


그리고 진짜 돈이 많다면 하고 싶은 일, 마음이 가리키는 그 행동을 최대한 지금, 돈이 없어도 실행하려 한다고 했다.


그것이 그의 커리어 상 다소 생뚱맞은 '잡지'였고 그렇게 10년째 많은 브랜드 애호가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는 매거진 <B>가 탄생했단다.


얼마 전 있었던 총선에서 우리 지역구 당선자인 안철수 의원의 재산 신고액을 보고 깜짝 놀랐다. 자그마치 1,400억이었기 때문이다. 1,400억이 있는데 왜 굳이 정치를 하려고 할까? 정치인으로서 그에 대한 호불호는 잠시 제쳐두고, 저 사람에겐 정치가 정말 본질적인 욕망이구나 생각했다.


그래서 1,000억이라는 돈을 기준 삼아 내게도 질문을 던져본다.

1,000억이 있다면 뭘 할 건지.


우선 서울의 한적한 동네에 살고 싶다. 반려견이 뛰어 놀 작은 마당도 있었으면 좋겠다. 매일 요가를 하고 싶다. 소박하지만 건강한 제철 음식을 먹고 싶다. 이거면 된다. 의외로 호화로운 여행이나 사치는 떠오르지 않는다.


그렇다면 아이는 어떨까?




1,000억이 있다면, 낳을래?


남편에게 이 질문을 던져봤다.

"1,000억이 있다면 아기 낳을래?"  

"낳아도 괜찮지 않을까?"
"나도 그렇게 생각해"


우리의 대답은 의외로 Yes였다. 이왕이면 쌍둥이였으면 좋겠다. 어쩌면 셋째까지도 괜찮지 않을까.


대체로 낳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지배적인 우리 부부인데 왜 1,000억이라는 숫자 앞에선 다른 대답이 나오는가. 이 모순을 어떻게 설명한담?


혹시, 우리가 돈이 없어서 아기를 못 낳는 걸까?

사실 마음 깊은 속에서는 아이를 원하는 게 아닐까?




아이 키우는 데 드는 돈, 3억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존 도구인 돈은 너무나 중요하다. 그래서 우리는 하루의 대부분의 황금 같은 시간을 돈을 버는 일에 사용한다. 일 하며 산 지 10년째, 고된 노동 시간과 교환해 얻는 돈은 정말 소중하다. 한 해 한 해 조금씩 올라가는 월급은 감사한 존재다.


다행히 둘이 벌어 둘 만 사는 딩크의 삶은 여유롭다. 대단한 사치는 아니라도 먹고 싶은 걸 먹고, 가끔 사고 싶은 것도 큰 고민 없이 산다. 평범한 직장인이지만 이만하면 풍족하다 느낀다. 이렇게만 평생 지낼 수 있다면 좋겠다고 자주 말한다.


가끔 노후 걱정이 밀려오지만 우리 둘 뿐인데 뭐, 건강하기만 하다면 어떻게든 되겠지 싶다.



출처: 조선일보



한 아이를 성인이 되기 전까지 키우는 데 약 3억이 든다고 한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을 주고, 인간으로서의 성장을 가능케 하는 아기지만 아기를 키우는 데 큰 비용이 드는 건 사실이다.


왜 그렇게 많은 돈을 쓰는지 충분히 이해가 간다. 두 명은 언감생심, 낳아봤자 한 명 일 텐데 하나밖에 없는 자식에게 어떻게 안 아낄 수 있을까. 나라도 그럴 것이다. 남들 하는 건 다 해주고 싶은 것으로 모자라 가능하면 최고로 좋은 것을 주고 싶을 거다. 내가 선택해서, 우리가 만들어서 이 땅에 태어난 존재니까.


그러면 지금의 여유로운 생활은 어쩌지?


어떻게든 살아질 거라는 걸 알지만, 더 큰 기쁨이 있겠지만 작고 소중한 우리의 재산이 아이에게 가장 많이 쓰일 거란 건 명백한 일이다.




돈이 많으면 뭐라도 수월하겠지


유전자를 남기고 싶은 건 생물종의 가장 원초적인 본능이다. 나 역시 호모 사피엔스인데 왜 번식 본능을 억제하고 있을까? 아기를 낳아 기를 환경이 충분히 좋지 못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1,000억이라는 돈은 물질적으로 좋은 환경을 의미한다. 그제야 비로소 가려져있던 인간 생물종으로서의 본성이 나오는 게 아닐까. 좋은 환경에서라면 어떤 생명체든 더 많이 번식할 테니까.


임신, 출산의 전 과정은 오롯이 엄마인 내가 감내해야겠지만 돈이 정말 많다면 뭐라도 더 수월할 거다. 매우 반인륜적이라고 생각하지만 할리우드 스타들은 대리모까지 쓰는 마당이니 말이다. 부잣집에서는 부모가 고된 육아를 할 필요 없이 그저 사랑만 주면 된다는 말도 흔하다.



Pinterest @frankie



그렇다면 도대체 얼마가 있어야 아기를 낳을만한 환경일까?


기사에서 말하는 3억이 있으면 될까?

정말 1,000억이나 있어야 할까?




여유롭지 못한 삶에 대한 두려움


나는 번식 욕구를 지닌 호모사피엔스이기도 하지만, 다양한 경험체의 집합인 한 개인이다.


세상에 다양한 모습의 엄마가 있겠지만 적어도 우리 엄마는 하나뿐인 자식인 내게 많은 것을 희생했다. 입고 싶은 옷도, 사고 싶은 것도, 배우고 싶은 것도 많았겠지만 내 앞날을 위해 모두 투자했다. 어쨌든 그게 내가 경험한 유일한 엄마의 모습이기에 내게 모성, 그리고 아기를 낳아 기른다는 건 '희생'과 '여유 없음'을 의미하는 것 같다.


그래서 여유로운 지금, 우리의 삶이 너무 소중하다. 34살의 나는 34살의 엄마처럼 허덕이며 살고 있지 않아서. 어쩌면 나는 자식을 낳고 싶지 않다기 보단 지금의 풍요를 잃게 될까 봐, 나도 엄마처럼 알뜰살뜰 살아야 할까 봐 무서운 마음이 큰 걸지도 모른다.


출처: Pinterest


아직 대답을 내리지 못한 앞의 질문으로 돌아와 본다.

사실 마음 깊은 속에서는 아이를 원하는 게 아닐까?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이전 10화 낳지 말까? - 기쁨보다 자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