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리카팕 Nov 02. 2022

주택청약통장 해지하고 난 후

불안과 배영

주택청약통장을 해지하고 얼마 후

자영업 선배인 지혜 대표님을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뇨끼로 광명 찾아 후련했던 나머지 ”제가 최근에 주택청약 통장을 깼거든요 “ 라며 뇨끼 칭찬에 운을 떼려던 차,


“에리카 심난했겠는데요?”


맞다. 꽤나 무거운 주제였지. 청약통장 깬 얘기를 너무 가볍게 운을 떼어버렸다는 걸 인지했지만 본론이 뇨끼 찬사였기 때문에 가볍게 맞받아쳤다.


”심난했죠. 심난했지~ 근데 이 시국에 대출받느니~ 있는 돈 써야져 뭐. “ 엊그제 영끌했던 비관주의는 며칠새 너스레 소재가 되었다. 훌훌 털듯 이야기를 이었다. 에리카처럼.


뇨끼 활동의 칭찬은 산책을 하느라 마주 보지 않고 이야기하다가 식당에 앉아 수저를 놓고 물 잔을 채우고 마주 보게 되자 지혜 슨생님이 이런 말을 했다.


”자영업을 하면, 프리랜서도 그렇고. 내 일을 하게 되면 불안하지 않기 위해서 많은 에너지를 쓰게 돼요. “


그녀는 강박적으로 산책을 한다고 했다.


”직장인일 때는 이해는 하지만 사실 모르잖아요. 그러니까 도무지 격차가 줄어들 수 없겠어요. 그 이해관계의 격차가.”


나는 그 대화가 좋았다. 또 다른 불안의 선배가 이끌어준 더 큰 불안의 세계. 같은 건물에 사는 또 다른 불안의 선배는 이렇게 이야기하기도 했다.


“진동이 너무 빠르면 그게 정적으로 보이잖아. 내가 그래 지윤아.”


매일 같은 시간에 요가를 하고 달리기를 하는 선배는 사실 진자처럼 불안을 밀어내고 있던 것이었다.


어릴 때 생각했던 운동하는 30대의 멋짐은 사실 살기 위한 몸부림이었듯이 자기 일을 하는 사람들이 시간을 쪼개어 운동을 하는 부지런함 역시 살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미칠 것 같으니까.


산책, 요가, 달리기 그리고 나의 아르바이트까지 같은 이유로 맞닿아 있었다.


직장생활을 할 때도 이렇게 ‘선배다운 선배’를 만난 적이 없었다. 내 속에 들어갔다 나온 것 같은, 내 미래까지 다녀온 것 같은 말들.


<선배 : 先輩 >라는 한자는 먼저 선, 무리 배 한자를 쓴다. 그러나 단 한 번도 같은 무리, 같은 조직, 같은 직무를 경험한 사이가 아님에도 같은 자영업자라는 이유로 철석같이 선배 같을 수 있는지. 어쩜 이럴까.


피는 물보다 진하고 불안이라는 경험은 물보다도 진한 것이었다. 물 흐르듯 사는 것처럼 보이는 셀프 임플로이드의 삶에 물처럼 흐르는 것은 불안이다. 불안을 물장구치고 첨벙 대고 덤벙대다가 물도 먹고 잠겼다가 결국엔 배영 하듯이 불안에 머리를 베고 흐르는 것.


나는 어디쯤 진도가 나갔을까? 나는 불안을 헤엄칠 수 있을까? 개구리 자세 정도 나갔을까? 아님 막 이미 조오련일까? 밤하늘의 별을 헤며 유유히 배영 할 수 있을까?

작가의 이전글 주택청약통장을 해지한 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