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와 다르지 않은 당신
그날도 오드리는 차에서 잠이 들었다. 정처 없이 차를 몰고 동네 주변을 돌았다. 딸인 스티비 때문이다. 침대에서는 도통 자지 않는 0세 아가. 아이를 토닥이다 안아주다를 반복하다가 마침내 찾은 방법이 차에 태우기였다. 다행히도 아기는 차에서 곤히 잠들곤 했다. 그제야 오드리도 차를 잠시 멈춘 채 운전석에서 그대로 잠이 든 것이다. 넷플릭스 호주 드라마 "The let down"의 이야기다.
남일 같지가 않았다. 아기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몰라 허둥지둥 대는 오드리에게서 내가 보였다. 안는 것도 먹이는 것도 재우는 것도 서툰 1년 전 내가 겹쳐졌다. 국경을 초월한 육아 현실에 공감하며 한동안 매일 밤 오드리를 만났다. 일종의 동지의식을 오드리에게 느낀 것이다. 다행히도 오드리에게는 육아 동지가 있었다. 양육자 모임에서 만난 아기 엄마와 아빠였다. 나만 힘든 게 아니라는 걸, 나만 엉망진창이 아니라는 걸 방증해줄 누군가가 있다는 것만으로, 그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도 힘이 날 때가 있다. 오드리도 그랬다.
임신을 하고나서부터 많은 것들이 하강곡선을 그린다. 외모도 커리어도 체력도 끝을 모르고 떨어지는 것만 같다. 나보다는 아기를 우선순위에 둘 수밖에 없는 현실 때문이다. 거친 피부에 자글자글 해진 얼굴을 거울로 확인할 때면 한숨이 깊어진다. 이전만큼 머리도 빠릿빠릿 돌아가지 않아 속상할 때도 많다. 일하는 친구들 앞에서는 괜스레 작아지기도 한다. 오드리가 그랬듯 나 역시도 그랬다. 무엇이든 해보려고 나간 직장에서 오드리는 하루 만에 사표를 쓰기도 한다. 일하고 싶은 마음에 잘할 수 없는 일을 선택한 까닭도 있지만 고용주의 불편하고도 무리한 요구에 응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경력단절녀가 겪는 좁은 고용시장의 문과 불합리한 행태도 여기나 거기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오드리는 이번에는 잘할 수 있는 일을 구한다. 지역 공중화장실의 위생상태를 조사해 보고서를 쓰는 일이었다. 하찮고 힘들어 보이는 일도 그녀는 마다하지 않았다. 아이를 썩 내키지 않은 곳에 맡겨야 했지만 그녀는 사회로 나가고 싶었다. 돈이 문제가 아니었다. 그저 '나'로 온전히 사는 순간이 필요했을 뿐이다. 점점 아이와의 짧은 이별이 익숙해지고 냄새나는 화장실 확인도 익숙해질 즈음, 아이가 수족구에 걸린다. 오드리는 괜한 자책감에 시달린다. 아기가 아픈 게 자기 탓인 것만 같다. 결국 친구의 도움으로 겨우 화장실 프로젝트를 끝내고 다시 전업주부로 돌아온다.
양육자 모임에서 만난 젊은 엄마, 조지아는 오드리에게 자극제가 되었다. 철없기만 한 줄 알았던 조지아가 사실은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엄마였다는 것과 조지아의 또래 친구들이 아기 엄마임에도 모두 전문직을 준비하는 학생이라는 사실에 말이다. 오드리는 6년 만에 석사과정을 마치러 학교로 돌아가기로 마음을 먹는다. 학교 내에 어린이집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는 것도 큰 이유가 되었다.
오드리처럼 사회로 뛰쳐나온 지 3달이 되었다. 비로소 나를 찾은 것 같아 행복하지만 일도 육아도 다 못하는 것만 같아 속상하다. 강사 평가에서 받은 부정적인 피드백에 마음이 상한다. 아이들을 많은 시간 베이비시터에게 맡기는 것도 미안하다. 무엇하나 놓치고 싶지 않은데 현실은 둘 다를 놓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다시 머리가 복잡해진다. 마음이 어지럽다. 인생은 살만하다 싶으면 장애물이 어김없이 등장한다. 결국에는 넘어서거나 돌아가겠지만 당장은 언짢다. 봄이 오면 좀 나아지겠지 하고 바랄 뿐이다. 마침내 오드리가 일과 육아에서 자기 자리를 찾은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