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갈아 너를 키운다
나는 점점 희미해진다. 이러다 완전히 사라지고 마는 건 아닐까 싶다. 임신 후 하던 일을 쉬고 출산 후 육아에 이르는 14개월 동안 '나'라는 인간은 차츰 소멸해 가고 있다. 소멸해 텅 빈자리는 '엄마'라는 페르소나가 채운다.
임신을 했을 때는 그래도 이름이 남아 있었다. 내 이름 석자를 병원에서는 불러주었다. 아기를 낳았을 때도 달라지지 않았다. 아기는 나의 아기 1, 2로 불리었으니 여전히 내가 주(主)였던 것이다. 물론 출산 후에는 이름 뒤에 산모님이 붙어있었다. 간혹 간호사들은 이름을 생략한 채 "산모님"이라고만 부르기도 했다. 어색한 호칭도 계속 듣다 보니 익숙해졌다. 조리원에서도 산후 도우미도 나를 그렇게 불렀으니.
"엄마, 우리 아기 직수해 볼 거예요?"
조리원에서 처음 '엄마'로 불렸다. 처음 들어보는 나를 부르는 호칭, 엄마. 아기를 낳은 지 일주일, 저 아이들이 내 자식들인가 싶을 때 듣게 된 엄마라는 말이 여간 어색한 게 아니었다. 아기는 말을 못 했지만 제 3자들은 아기에게 이야기했다. "너희 엄마가 늙어서 너희를 낳아서 힘들다", "엄마랑 잘 놀아라" 등의 말들을 건넸다. 불쑥불쑥 듣게 되는 '엄마'라는 말이 여전히 내가 아닌 타인을 지칭하는 말처럼 느껴졌다.
나는 주가 아닌 종(從)이 되었다. 아이들이 집에 오고 생활이 바뀌었다. 보살펴야 할 연약한 존재들이 생겼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아기가 울면 시간에 상관없이 눈이 떠졌다. 잠깐 눈을 붙였다가도 순식간에 깨 총알처럼 아이에게로 뛰어갔다. 때가 되면 밥을 챙겨주고, 짜증을 내면 달래주고, 놀아주고, 대소변을 치워주면서 나는 차츰 옅어지고 있었다. 생활의 전부가 아이가 되었다.
소아과에서 나를 '**엄마'나, '**어머니'로 부른다. 첫 예방 접종에서는 그렇게도 어색했던 말이 이제는 자연스럽다. 아이들과 울고 웃고 부대끼는 시간이 엄마라는 말을 익숙하게 만들었다. 이제는 삶에서 아이들을 빼고 나면 남는 게 무엇인가 싶은 생각마저 든다. 이따금 나는 영영 사라져 버린 것인가 싶어 공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