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오전
알람이 필요 없어진 지는 오래다. 해가 뜨기도 전에 아이들이 눈을 뜬다. 아직 5시 30분밖에 안 됐는데, 왜 이렇게 일찍 눈을 뜨는 것인가, 그 이유가 무척 궁금하다. 여하튼 아이들이 눈을 뜨면 엄마 아빠에게 돌진을 하고 몸을 부비적 댄다. 그럴 때면 정말 사랑스러운 존재를 내가 낳았구나, 이런 게 행복이지 싶다. 하지만 행복도 잠시, 하루가 또 시작되었고 해야 할 일들이 기다리고 있다.
거실 카펫을 건조기에 털고, 거실 매트를 닦는다. 아이들 손이 닿는 알파벳, 한글 등등 방문과 벽면에 붙은 포스터 6개도 닦고, 주방과 거실 사이에 설치한 울타리까지 다 닦으면 첫 번째 일과가 끝난다. - 오전 6시 40분
아침 먹일 준비를 한다. 이유식은 시판 이유식, 내가 만든 것보다 훨씬 잘 먹는다. 전자레인지에 데우고 아이들을 이유식 의자에 앉힌다. 얌전히 앉아서 밥을 잘 먹는 아이는 없다. 답답하고 지루해서 그런지 울음과 짜증을 쏟아낸다. 밥은 먹여야 하고 아이들은 달래야 한다. 엄마의 본격적인 원맨쇼가 펼쳐지는 이유다. 구연동화를 하는 듯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다가 아이들이 입을 꽉 다물면 노래를 시작한다. 흥이 나서 몸을 흔드는 아이들이 입을 벌리고 엄마는 잽싸게 숟가락을 아이의 입에 집어넣는다. 30분가량의 쇼에 이른 아침 엄마의 목소리는 갈라지기 일쑤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해서 울지 않고 먹으면 그래도 성공적인 편이다. 열 번 중 두세 번 정도는 이마저도 통하지 않는다. 그럴 때는 정말이지 '나는 누구인가, 왜 사는가' 싶은 깊은 회의에 빠진다. -오전 7시 40분
밥을 흘리지 않으면 아이가 아니다. 먹여줘도 흘린다. 입에 들어간 걸 뱉어서 손으로 조몰락 거린다. 밥풀이 붙은 손을 마구 흔들어 주방에 흩뿌리기도 한다. 밥을 다 먹은 아이들을 싱크대로 데려간다. 간단하게 세수를 씻기고 옷에 묻고 짓이겨진 밥풀들을 띄어낸다. 이를 닦인다. 거실 놀이매트에 아이들을 두고 다시 주방으로 돌아와 이유식 의자에 덕지덕지 붙은 밥풀과 반찬을 떼어낸다. 주방 바닥에 떨어진 음식물들을 줍고 닦는다. 설거지가 남았다. 아이들 식기와 물컵, 저녁내 물고 잔 공갈 젖꼭지 등이다. 설거지를 치우는 동안 첫째가 안 울면 다행이다. 그 애가 보채기라도 하면 설거지를 치우다 말고 가서 달래고 다시 와서 치우고를 반복한다. 엄마가 만리장성 너머에 있는 것도 아니고 울타리 하나 넘어 주방에 있는데 왜 이리 싫어하는지 모르겠다. 자기 옆에 꼭 붙어 있으라는 첫째는 정말이지 애증의 대상이다. -오전 8시 30분
아침 놀이 시간이다. 그림책 토이 책 등등을 본다. 버튼을 눌러 노래를 듣고 그림이 많은 책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나뭇잎, 나비, 나무, 토끼, 고양이, 강아지, 자동차 등을 짚으며 '어, 어'한다. 그럴 때면 엄마는 솔(sol) 톤을 유지해 대답을 해주고 노래를 불러준다. 강아지를 가리키면 강아지라고 말해주고 "우리 집 강아지는 복슬강아지"같은 노래를 부르는 식이다. 손에 쥘 수 있는 자동차 장난감을 좋아한다. 자동차를 밀고 기어 다닌다. 노래나 소리가 나는 타요 버스나 소방차, 구급차 등이다. 자동차를 밀다가 "어, 어"하면 어김없이 노래를 불러줘야 한다. "빨간 자동차가 에엥에엥" 노래가 나오는 장난감보다 엄마의 목소리를 아이들이 더 좋아한다.
보통 놀이시간에 아이들은 큰 일을 치른다. 적게는 한 번, 많게는 세 번씩 똥을 싸는 것이다. 먹는 시간이 같은 아이들은 변을 보는 시간도 비슷하다. 아침에만 적게는 두 번, 많게는 여섯 번 똥 기저귀를 치우게 되는 것이다. -오전 9시 30분
돌 무렵의 아이들은 4시간가량을 깨어 있을 수 있다. 컨디션에 따라 3시간부터 졸려서 보채기도 한다. 아침 놀이를 끝내고는 아이들 방으로 들어간다. 10개월 이후부터는 안아서 재우지 않는다. 공갈 젖꼭지를 물리고 자장가를 부르면 아이들은 자야 하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방 안에서 이리저리 뒹굴거리다가 잠이 든다. 잠이 잘 오지 않는 날은 책장에 있는 책을 몽땅 꺼내 들여다본다. 키가 커지고 나서는 서랍장 위에 있는 물건에도 손을 대고 블라인드 손잡이에도 손을 뻗치며 방 안을 이리저리 탐색한다. 이것저것을 다하고 나서 더 이상 졸음을 참을 수 없는 지경이 되면 아이들은 부드러운 이불에 누워 스르르 잠이 든다. -오전 10시 30분
비로소 엄마가 한숨을 크게 내쉰다. 밥을 먹는다. 맛이 있는지도 없는지도 모르게 허기를 채운다. 아이들이 잠들고 난 후 조용한 집, 좋아하는 라디오를 켜 놓은 채다. 먹고 나면 설거지가 쌓인다는 사실이 왜 이리 싫은지 모르겠다. 새집으로 이사를 가면 반드시 식기세척기를 쓰리라 다짐한다. - 오전 11시
문을 활짝 열어 환기한다. 제법 쌀쌀한 공기가 들어온다. 아이들의 열기로 데워진 집 안의 온도를 낮춰 준다. 답답했던 마음을 슬쩍 풀어준다. 잔뜩 어질러 놓은 장난감을 정리한다. 다시 식탁에 앉는다. 곡기로 채워지지 않은 허기를 연아 커피로 달랜다. 달달한 커피가 온몸으로 퍼지며 마음에도 당을 충전한다. - 오전 11시 30분
"아!, 잉" 아기 소리가 들린다. 하던 일을 멈추고 아이 방문을 활짝 연다. 잘 자고 일어난 아가들은 울지 않고 엄마를 쳐다본다. 웃는다. 엄마는 아이보다 더 활짝 웃으며 아이들을 안고 뽀뽀하며 매트 위에서 뒹군다. 에너지가 충전된 아이들은 다시 놀 준비가 되었다. 거실로 나온다. 정리한 장난감을 다시 집고 던지며 논다. 순식간에 난장판이 된다. 하지만 30분만 힘내서 놀아주면 구원의 시간이 온다. 엄마는 다시 힘을 낸다.
"띵동-띵동"
인터폰이 울린다. 아이들이 인터폰을 가리킨다. 드디어 베이비 시터가 왔다. -오후 12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