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

웅녀가 되었다

by 아라온

원장님은 이것저것을 설명해 주신다. 천국 생활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날, 꼭 알아야 할 것들을 말씀하고 계신다. 귀로는 집중해 들으면서도 불쑥불쑥 두려움이 앞선다. 앞으로 어떻게 키워야 되는 것인지 막막하다.

아기 모형을 들어 등을 팍팍 두드리는 시범을 보여 주신다. 하임리히법이란다. '저런 상황은 안 생겨야 할 텐데' 아이들 돌볼 일이 무섭기까지 하다.


바깥은 계절이 바뀌었다. 늦여름 기운은 온데간데 사라지고 쌀쌀함이 느껴지는 초가을로 접어들었다. 속싸개에 겉싸개로 아이들을 꽁꽁 싸매고 집으로 돌아왔다. 단태아였다면 아직도 내 뱃속에서 자라고 있었을 아가들은 3kg에 지나지 않았다. 남편과 둘이 살던 곳에 아가들이 자리를 잡는다. 안방 침대 옆에 쌍둥이의 잠자리를 준비해 두었다. 꽉 찬 안방만큼이나 마음이 벅차오른다.


잠을 잘 못 잘 각오는 되어 있었다. 3시간마다 분유를 먹어야 하니 새벽에 깨야 하는 것은 당연했다. 다만 둘이 동시에 깨면 좋으련만 두 아이는 자신만의 배꼽시계에 맞춰 울었다. 기저귀가 찝찝할 때도 울었다. 밥 먹을 시간이 아닌데 우는 건 십중팔구 기저귀였다. 그마저도 아니면 그냥 안으라는 요구였다. 안아서 재워달라는 아가들의 요구. 육아는 고된 노동임을 깨닫기 시작했다. "진 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시네" 노랫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날이 밝으면 산후관리사님이 오신다. 산모의 건강관리와 육아의 구세주가 아침 9시면 집으로 오는 것이다. 그분이 오시면 비로소 자유로워진다. 조리원 천국에 버금갈 만큼 편한 시간이 주어지는 것이다. 산후관리사님은 산모를 위해 식사를 챙겨주고 아이들을 돌봐 주신다. 덕분에 산모의 몸도 편하지만 마음도 편하다. 잘 모르는 초보 엄마에게는 조언자가 필요했다. 옆에서 코치해줄 사람이, 출산 후 허탈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코로나로 나가지도 못하기에 더욱이 그랬다. 다행히도 잘 맞는 분을 만나 그 분과 100일을 함께했다.


아이들은 빠르게 커갔다. 분유량이 급속하게 늘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많이 먹어도 되나 싶을 만큼 1회 섭취량이 증가해 소아과 의사에게 질의를 했을 정도다.

"괜찮다. 그것도 다 한때다."

세상의 이치를 다 달관한 듯한 노(老) 교수님이 말했다. 그제야 안심을 하고 아이가 원하는 양을 마음 편히 주기 시작했다. 덕분에 이른둥이 아가들은 제 때 태어난 아기들의 평균 몸무게와 비슷해졌다. 오로지 아기들의 체중 증량에만 관심을 둔 보람이 있었다. 잘 키워준 산후관리사님에게도 감사했다.


"100일 되면 괜찮아져요"

산후관리사님도, 먼저 아이를 키운 지인들도 말했다. 저녁에 잠들기가 힘든 아가들, 새벽에 자꾸 깨어나는 아가들 때문에 힘들다는 하소연을 하면 이내 돌아오는 대답이었다. 그 희망으로 버텼다. 우리 아이들도 100일이 되면 밤에 잘 잘 거라는 희망으로. 게다가 조리원에서 교육받기로 '태어나 100일까지 잘 크는 게 정말 중요하다'라고 했던 게 기억에 남았다. 왜 인지는 잊어버렸지만 여하튼 100일까지는 조심 또 조심하며 아이를 안고 , 들고, 먹이고, 재우고, 씻기고 뉘었다. 절대 화를 내지 않았다.


웅녀의 마음이었다. 인간이 되기 위해 마늘과 쑥만 먹으며 100일을 기다려 온 고된 인내. 쌍둥이를 집으로 데려와 난관에 부딪힐 때마다 난 웅녀를 떠올렸다. '100일의 기적'이란 게 있다고 하니. 100일 즈음되면 아이 키우는 게 조금 수월해진다고들 하니. 그때까지만 잘 견뎌보자는. 하지만 그것은 희망고문이었다. 100일이 지나고 확실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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