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서 조리원으로
걸으라고 했다. 제왕절개 후 찾아온 후불제 고통은 많이 걸을수록 빨리 낫는다고 의사와 간호사가 말했다. 특별한 약은 없다며 그저 시간 나는 대로 병원 복도를 걸어야 한다고 말이다. 허리를 구부정하게 숙인 채 배를 움켜쥐고 남편 혹은 엄마를 붙잡고 복도를 걸어 다녔다. 아기들을 보기 위해서였다. 대학병원 중환자실에 가 있는 아가들을 보려면 나는 움직여야만 했던 것이다. 하루라도 빨리.
생살을 가른 고통은 거짓말처럼 나날이 좋아졌다. 부지런히 걸어 다닌 덕분인지 퇴원하는 날은 제법 허리도 펴고 걸을 수 있게 됐다. 신생아 중환자실에 있던 쌍둥이들도 다행히 상태가 좋아졌다. 큰 수술은 필요 없었다. 다만 이런저런 검사 결과를 기다려야 했다. 엄마인 나는 퇴원을 하는데 아기들은 아직 병원에 있었다. 아기들이 없이 퇴원을 했다. 조리원에 전화를 걸어 입실을 미뤘다. 아기들 없이는 가고 싶지 않았다.
주말을 집에서 보냈다. 아이들 소식을 노심초사 기다리며 부모님과 함께 집에 있었다. 검사 결과는 월요일이나 되어야 알 수 있었다. 마음이 불편해서인지 몸이 아픈 걸 잊고 있었다. 아이를 낳은 산모라는 사실을 깨달은 건 자려고 침대에 누웠을 때였다. 온 뼈 마디가 저리고 쑤셔왔다. 눈물이 주르륵 흐른다. 남편을 붙잡고 아프다고 호소한다. 부스스 눈을 뜬 남편이 조용히 등을 토닥인다. "아기들 괜찮을 거야. 월요일에 조리원 가자"
조리원은 평온했다. 코로나로 밖은 시끄러운데 이곳은 다른 세상인 듯 마스크를 벗고 다녔다. 몸을 푼 산모들 사이에 무슨 마스크가 필요 있겠냐는 듯, 서로를 믿는다는 듯. 눈빛만으로도 서로를 응원하는 게 느껴졌다. "네 고통 내가 안다"는 그 무언의 눈빛이 무척 위로가 됐다. 게다가 우리 아가들처럼 작게 태어난 아가들도 꽤 많았고 출산할 때 어려움을 겪은 산모도 있었고, 나처럼 아기와 함께 퇴원하지 못한 산모도 있었다. 그 모든 걸 겪은 산모들이 내게는 그 무엇보다 위로가 되었다. 결국에는 다 괜찮아졌다는 게 특히나 마음에 안정을 찾아 줬다.
쌍둥이는 내가 입실한 다음 날 들어왔다. 아기 가방에 쏙 들어갈 만큼 작은 두 아기가 할머니, 할아버지 품에 안겨 왔다. 혹여 부서질까 조심스레 아기를 안은 부모님과 작은 아가들을 보니 마음이 애잔하다. 엄마와 아빠도 내가 아플 때 이런 마음이었겠지 싶어 눈물이 그렁 차오른다. 부끄러워질까 애써 눈물을 삼키고 아이들을 바라본다. 작은 몸으로도 잘 버텨준 쌍둥이들이 그저 기특하고 고마웠다. 신생아 실로 들어간 아가들을 유리창에 기대어 하염없이 바라봤다. 꿈뻑꿈뻑 눈을 뜨고 앵앵 우는 아가들이 내가 낳은 아가들임을 기억한다. 잘 실감 나지 않지만 엄마가 되었다는 것을, 책임져야 할 아가들이 있다는 것을 되새긴다.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애틋한 존재가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