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

눈 깜짝할 사이 엄마가 되었다

by 아라온

누군가 나를 흔들어 깨운다.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린다. 모든 것이 끝나 있었다. 조금 전에 수면 마취 주사를 맞고 잠이 든 것 같은데 말이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파란 옷을 입은 의료인들은 수술 후 뒷정리로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부산한 와중에도 그들은 "수술은 잘 끝났다." "아이들은 건강하다."는 말을 잊지 않는다. "아빠가 아이들 사진을 많이 찍었어요"라는 말도 덧붙인다. 눈 깜짝한 사이 애가 둘인 엄마가 된 것이다.


하반신 마취와 함께 수면 마취를 해달라고 부탁했었다. 많은 산모들이 하반신 마취만 한 상태에서 배를 절개하고 아이를 꺼낸 후, 아이를 확인하고 품에 한 번 안은 후 수면 마취에 들어간다. 그 사이 봉합 수술이 이뤄진다. 세상 밖으로 나온 아이를 가장 먼저 품에 안아보는 일은 분명 아름답다. 다만 아무리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 해도 배를 자르고 일어나는 일련의 수술 과정을 맨 정신으로 보기 어려울 것 같았다. 마취과 선생님과 산부인과 선생님이 "하나도 안 아파요. 아이는 금방 나와요."라고 말했지만 결정을 바꾸지 않았다.


하체는 아직 감각이 돌아오지 않았다. 덕분에 배를 가른 아픔을 느끼지 못한다. 무의식으로 들어간 몇 십분 사이에 고통 없이 출산을 끝낸 것 같은 생각에 기분이 좋아진다. 무엇보다 감당하기 힘들 만큼 불렀던 배가 한결 가벼워진 사실이 또 좋기만 하다. 임신 준비와 시도부터 임신, 출산에 이르기까지의 지난한 과정이 드디어 끝난 것만 같아 마음 또한 날아갈 듯 가볍다. 수술실에서 병실로 이동하는 병상에 누워 잠시 행복에 잠긴다.


병실에는 남편이 기다리고 있었다. 기쁨에 찬 듯한 남편의 얼굴을 보니 안심이 된다. 아이들이 정말 건강하게 태어났구나 싶어서다. 보고 싶은 아이들을 남편이 촬영한 영상을 통해 처음 만난다. 2kg의 작은 두 아이들. 태지를 벗지도 못한 아이들. '너희들이구나. 너희가 내 뱃속에서 자라온 별과 달이구나'. 가슴이 벅차오르면서도 믿기지 않는다. 남편은 탯줄을 자르러 수술실로 향하는 길에 이미 울고 있었다고 고백한다.


혹시나 아이가 어떻게 될까 싶어 가까운 친구들에게조차 알리지 못했던 임신이었다. 출산을 하고 나서야 비로소 친구와 지인들에게 연락을 한다. 알리지 못했던 이유를 덧붙여 엄마가 되었음을 알린다. 그것도 쌍둥이임을 밝히고, 갓 태어난 아기들 사진을 함께 보낸다. 소식을 알리지 못했던 것을 탓하는 이들이 하나도 없다. 모두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다. 고맙게도 제 일처럼 기뻐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부모님을 비롯한 가족, 친척들에게 축하전화가 온다. 남편이 보낸 사진과 영상을 봤다며 잘했다고, 고생했다고 말해준다. 뭔가 대단한 일을 해낸 것 같아 우쭐해진다. 그러다 갑자기 코끝이 찡해지면서 눈물이 난다. 마음고생을 한 지난날들이 떠오른 것인지 무엇인지 정확히 그 이유는 모르겠다. 어쩔 줄 모르는 감정들이 소용돌이치고 있다.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던 다리를 조금씩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배를 가른 통증이 함께 찾아왔다. 병실로 돌아온 지 두 시간쯤 지나서였다. 너무 아프면 한번씩 누르라는 무통주사를 계속 눌러댔다. 배에 힘을 줄 수 없다는 것이 제 의지대로 몸을 뒤척일 수 없다는 것인지 알게 됐다. 하반신 마취가 풀리며 환희의 감정도 잦아들었다. 고통의 시간이 다가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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