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워 있었다
딱 10주였다. 보통의 쌍둥이 임신부가 병원을 방문하듯 다니던 시간이. 그나마 마음을 졸이지 않고 보낸 임신 시기가 18주부터 28주까지다. 기형아 검사와 양수검사를 마치고 남들처럼 3주에 한번 병원에 다녔다. 진료실에 들어가 산부인과 의자에 앉을 때면 가슴이 콩닥거리기는 했지만 대개는 평온한 시기였다. 흑백 초음파로 보는 아이들은 매번 놀랍게 크고 있었다. 아이들의 심장은 쿵쾅거리며 잘 뛰었다. 그 소리를 듣고 나서야 안심이 되었다. 이어 의사 선생님은 태아의 신체를 계측했다. 키, 머리 둘레, 가슴둘레, 다리 길이 등. '두 아이
들 모두 정상으로 잘 크고 있다'라고 말했다. '산모의 자궁경부 길이도 괜찮다'라고 했다. 단조로웠지만 평화로운 날들이 흘러갔다. 계절은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며 초록의 싱그러움을 마음껏 뿜어내고 있었다.
"갑자기 자궁경부 길이가 짧아졌네요!"
평온한 날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의사는 짧아지는 게 정상이긴 하지만 갑자기 짧아졌다며 이제부터는 매주 병원에 와서 확인해야 한다고 했다. 되도록 움직이지 말고 누워만 있으라고 조언도 잊지 않았다. 조언대로 일주일에 겨우 두 번 나가는 강의를 관두었다. 친정으로 가 부모님과 함께 지냈다. 누워만 있기 위해서는 그 방법이 최선이었다. 엄마가 해주는 밥을 먹고 아빠가 청소하는 집에서 아무런 집안일을 하지 않고 오로지 내 몸만 건사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다행히도 자궁경부 길이가 4주 동안 많이 짧아지지 않았다. 임신 8개월이 그렇게 흘러갔다.
2.1 센티미터. 이제는 입원을 해야 한다고 의사가 말했다. 임신 33주를 앞둔 날이었다. 예상한 수순이었다. 언젠가는 입원을 할 거라고 생각했다. 많은 쌍둥이 산모들이, 게다가 노산이라면 더욱, 출산을 앞두고 입원을 한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자궁경부가 더 짧아져 조산을 하지 않도록, 주사를 24시간 맞기 위해 입원을 했다. 뜨거운 여름, 8월이었다. 바깥은 뙤약볕이 내리쬐고 있었다. 에어컨이 종일 가동되는 병실은 시원했다. 마치 여행을 온 듯 설레는 기분이 잠시 들었다. 매년 이맘때쯤에는 휴가를 떠나기도 했던 것이다. 문득 부른 배가 낯설어졌다.
마침 간호사가 들어온다. 호텔리어처럼 병실과 병동 안내를 해 준다. '잠시 후에 링거 주사를 가지고 오겠다'는 말만 안 했다면 꽤 오래도록 휴가를 온듯한 착각에 빠져 있을 뻔했다.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간호사가 다시 병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정맥을 찾아 링거 주사를 꽂았다. 따끔한 고통과 함께 빠르게 현실을 자각했다. 여기는 병원, 휴가가 아닌 입원을 하러 왔다. 간호사가 수액과 자궁수축을 막아주는 라보파를 연결했다. "힘들었을 텐데 잘 버텼어요. 조금만 더 힘내요. 어차피 밖은 덥잖아요. 병원에 있는 게 더 나을 거예요." 잘 버텼다는 그 말에 그만 울컥했다. 쌍둥이의 정상 출산은 37주. 예정일까지는 5주가 남았다.
병원 생활은 외로웠지만 할 만했다. 코로나 때문에 방문객 제한이 있었기에 남편을 제외하고는 어느 누구도 만나지 못했다. 태동을 체크하러 오는 간호사와 매일 방 청소를 해주시는 미화원 아주머니와 삼시 세끼 밥을 배달해 주시는 이모님들이 매일 마주하는 얼굴의 전부였다. 본의 아닌 자가격리를 하는 날들이 하루하루 쌓여갔다. 3평 남짓한 방 안에서 평소에는 안 보던 TV 프로그램을 보고, 넷플릭스를 몰아 봤다. 못 읽던 책을 집중해 읽고 졸리면 잠이 들었다. 지루하고 가슴이 답답했지만 나를 위한 시간이었다. 뱃속 아이들은 라보파 주사 때문인지 더 이상 밑으로 내려오지 않고 잘 버텨주었다. 그렇게 4주를 꼬박 채우고 36주가 되는 날 퇴원을 했다. 의사는 "환자가 원해서 퇴원하는 것이라며 이제 배가 아프면 애를 낳아야 한다"라고 잔뜩 겁을 줬다. '자기는 퇴원을 권고하지 않지만 당신이 굳이 퇴원하고자 하니 하라는. 조산을 하더라도 의사 책임으로 돌리지 말라'는 뉘앙스를 가득 담아 내게 말했다.
언제 아이들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시기였다. 부모님이 집으로 오셨다. 예정일은 1주일이 남았지만 어떻게 될지 모를 일이었다. 병원 밥이 아닌 엄마가 해주는 밥을 먹고 병상보다 넓은 침대에서 누워 자니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당연하게 받아들이던 것을 감사히 여기는 이틀을 보냈다. 집으로 돌아온 지 3일째 되는 아침, 양수가 새어 나왔다. 아침 준비를 하던 엄마를 재촉해 아빠와 함께 병원으로 갔다. 코로나가 한창이라 병원에는 오로지 환자만 올라갈 수 있게 되었다. 두려움을 애써 누르며 담담히 혹시 모를 출산에 대비했다. 예정일보다 5일이 빠른 36주 2일이 되는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