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

난임과에서 산과로

by 아라온

"이제 진짜 엄마가 된 거예요. 축하해요."

수정란을 이식해준 의사 선생님이 말했다. 산모수첩은 쌍둥이를 초음파로 확인한 그 순간 이미 받았는데 선생님은 임신 12주 차에 접어든 '이제' 진짜 엄마가 됐다고 사뭇 진지하게 말해주었다. 초기 유산의 위험 고비를 넘어선 순간이었던 것이다. 더불어 이제 난임과 진료는 끝났고 산과로 넘어가라고 안내했다. 같은 병원이지만 새로 문진표를 작성했고 차트를 만들었다. 난임을 겪는 이들 사이에서는 이를 '졸업'이라 한다. 1차 정밀 초음파 검사 결과, '정상'이라는 소견과 함께 4년 만에 '졸업'이란 것을 한 것이다.



임신 16주 차, 입학을 하는 마음으로 산과를 찾는다. 복도에 앉아 선생님과의 첫 만남을 기다리며 주변을 관찰한다. 분명 같은 병원, 같은 층인데 산과와 난임과는 분위기가 다르다. 걱정과 위로의 말들이 흐르는 난임과와는 달리 산과에는 편안한 얼굴의 배부른 산모들이 대기실에 앉아 있다. 기분 탓인지도 모르겠다. 진료실에서는 담당 선생님의 밝고 높은 목소리가 새어 나온다.


목소리만큼 친근한 선생님이 환하게 맞아준다. 난임으로 힘겹게 얻은 아이들임을 상기시키고 그간의 마음고생을 짧게 다독이고 노산임을 굳이 강조한다. 난임과에서는 듣지 못했던 말이다. 오히려 나보다 더 나이 많은 사람도 시험관으로 임신을 했다는 격려의 말을 들었는데 산과 선생님은 참 솔직하다는 생각을 한다. 딱히 부인할 수 없음에 멋쩍은 미소를 짓는다. 산부인과에서는 만 35세 이상이면 노산으로 분류된다.


난임과 선생님도 내게 '노산'임을 강조한 적이 한번 있다. 1차 기형아 검사를 앞두고였다. 졸업하던 그날 선생님은 일반적인 기형아 검사가 아닌 니프트 검사를 권했다. "아무래도 노산이고..." 산모가 나이가 많으면 기형아 확률이 높다는 결과가 있으니 좀 더 정확한 니프트 검사를 하는 게 좋겠다고 말이다. '노산'이라는 말이 늙은 산모를 무력하게 한다. 어떤 저항도 하지 못한다. "그럼 그거로 해야죠". 보험이 안돼도, 비싸도.


졸업 때 별 걱정 없이 한 그 검사 결과를 산과에서 듣는다. 결과 값이 나오지 않았다고 전한다. 쌍둥이는 종종 그런 경우가 있다고 한 번 더 해보자고 한다. 12주 차에는 아직 태아의 염색체를 구분하기가 어려우니 16주 차에 해보면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하지만 안 나온 쌍둥이 산모가 최근에 있기는 했다는 말을 슬며시 덧붙인다. 추가 비용은 당연히 없다. 피를 한 번 더 뽑았을 뿐이다. 보험이 되는 쿼드검사를 하지 않고 니프트를 한건 노산이기도 했지만 두 번 피를 뽑기 싫어서였는데 결국 두 차례 피를 뽑고 결과도 꼭 그만큼 시간이 걸리게 되었다. 더욱 허망했던 것은 의사가 어느 정도 예견한 대로 2차 검사 결과도 '산모 혈액으로 태아 기형 여부를 알 수 없다'는 결론을 받아 들었다는 것이다.


1주일 만에 다시 병원을 찾는다. 양수검사를 하기 위해서다. 99%의 정확도를 가진 니프트 검사를 한 건 99.9%의 정확도를 가진 양수 검사를 대체할만한 결괏값을 제출해주기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두 차례 모두 결괏값을 낼 수 없다는 허무한 결과를 마주하고 양수검사를 하기에 이른 것이다. 의사는 양수검사를 앞두고 "꼭 안 해도 돼요. 안 하는 부모도 있어요!" "만에 하나 기형아라 하더라도 어쩌겠냐 받아들이겠다고 하는 거죠." 산과 의사는 왜 검사를 받으러 온 날 그런 얘기를 하는지 모르겠다. 검사 전 얘기하면 더 좋을 것을. 이미 고민하고 결정한 일이다. 인터넷으로 양수검사를 수없이 검색해 본 후다.


기다란 주사 바늘이 배를 찌른다. 의사는 잘못 찔렀는지 한 번 더 다른 곳을 찌른다. 아프다. 매우 아프다. 안 아팠다는 후기도 본 것 같은데 왜 이리 아픈 것인지 그만 눈물이 난다. 고통이 한번 찾아오니 모든 감각이 그곳에 머문다. 쌍둥이라 한 번 더 찔러야 한다고 말한다. 겨우 끝났나 싶었는데 또 한 번 의사는 잘못 찌른다. 이번에도 역시 두 번 만에 성공. 네 차례 바늘이 들어가고 나서야 양수를 뽑아냈다. 멈추지 않는 눈물도 같이 쏟아냈다. 바늘을 찔러댄 고통보다 마음이 아팠다. 임신도 어렵게 했는데 유지도 어렵게 하고 있는데 검사 결과도 잘 안 나오고 하다 하다 양수검사까지 하게 되다니. 뭐 이렇게 힘든 임신이 있을까, 내 인생은 왜 이렇게 시련이 많을까 하는 자기 연민에까지 빠지고야 말았다. "애들 건강할 거예요. 나도 양수검사했는데 괜찮았어요."라는 간호사들의 다독임에 더 울컥한다. 한참을 병실에 누워 있다 집으로 돌아왔다.


또 1주일이 흘렀다. 양수 검사 결과를 들으러 병원에 가는 날이다. 대개는 한 달에 한 번 산부인과를 찾는데 나는 3주째 연속 병원을 드나들고 있다. 걱정하실까 부모님께도 말씀드리지 않고 오로지 남편과 나 둘만 아는 검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양수검사는 니프트처럼 결과가 안 나오는 허무한 일은 없다. 제발 별일 없이 건강한 아이들이기를 수없이 기도하고 바라면서 의사 선생님을 만났다. "다행이에요. 양수 검사로 알 수 있는 유전자 질환은 없네요." 의사도 나도, 남편도 함께 안도했다. "이제 기형아 검사는 끝났어요"라는 선생님의 말에 해방을 맞은 듯 행복했다. 더 이상 마음 졸일 일은 없겠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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