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태

임신이 이렇게 어려울 줄이야

by 아라온

마음만 먹으면 가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결혼을 하고 자연스레 따라오는 "애는 언제 낳을 거야?"라는 주변의 질문에 "아직은 생각이 없다", "생기면 낳아야지"라고 답했다. 그렇게 3년쯤 지나자 지인들이 채근을 한다. "한약을 지어주마"라는 시어머니와 "병원에 다녀보라"는 친구까지. 지극히 사적인 자녀계획도 스스럼없이 개입하는 사람들에게 진절머리가 나면서도 시어머니 손에 이끌려 한의원에 가고 친구가 추천한 병원에 다니게 됐다.


의사는 낙관적이었다. 호르몬 수치가 나이보다 젊고 건강하다고 말했다. 남편도 큰 문제는 없으니 임신이 잘 될 거라고 희망을 주었다. 그렇게 처음 인공수정을 하고 의사 선생님의 말처럼 임신이 되었다. 초심자의 행운 같은 것이 발휘되었나 보다.

'그럼 그렇지, 역시 마음만 먹으면 아이를 가질 수 있어'

하지만 그 배아는 곧 사라졌다. '처음이니까 그럴 수 있지' 싶었고 이내 재시도를 했다. 실패. 당연히 수정되고 착상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조금 의아했지만 심각해지지는 않았다. 그리고 세 번째 시도. 임신이었다. 배아는 커갔고 아기집을 봤다. 심장이 반짝거리는 것을 초음파로 확인했다. 쿵쾅 거리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유산이었다. 수술을 해야 했다.


황폐해진 몸과 마음을 회복하는 데는 1년 여의 시간이 걸렸다. 오랜만에 만난 의사 선생님은 습관성 유산 검사를 제안했다. 결과는 다소 충격적이었다. 건강을 자부했던 내 몸에 이상이 있다고 했다. 몇 번을 다시 들어도 잘 이해가 되지 않는 질환이었다. 평소에는 아무 문제가 없지만 임신이라는 상황에서는 문제가 될 수도 있는 그 질환. 피 딱지가 지려고 하는 게 있다며. 자궁으로 혈액이 잘 가지 않는다고 했다. 아스피린을 처방받았다. 크녹산이라는 주사를 매일 배에 맞으라 했다.

"언제까지요 선생님?"

"보통은 12주까지지만 간혹 임신기간 내내 맞는 산모도 있어요"

절망적이었다. 주사를 매일 맞으라니. 과배란 주사도 모자라 크녹산 주사까지 맞으라니. 내 몸을 망쳐버리는구나. 애가 뭐라고, 애 하나 낳겠다고. 내 몸은 망가져버리는구나.


아스피린을 먹고 과배란 주사를 맞으면서 유트로게스탄을 삽입했고 매일같이 크녹산 주사를 배에 찔렀다. 이따금 배에서 피가 흘러나왔고 멍이 늘어갔다. 정신은 더욱 말라갔다. 나는 사라지고 애를 낳으려는 기계가 남은 것 같았다. 당연히 아이는 생기지 않았다. 인공수정을 포기하고 시험관을 택했다.


한 번만 난자를 채취하면 된다. 한 번만 과배란 주사를 맞으면 되는 것이다. 그동안 괜히 인공수정을 한다고 과배란 주사를 매회 맞았구나 생각하니 억울하기까지하다.

'그래 딱 한번 고생하자'

의사는 과배란 주사와 약이 잘 통했다며 기뻐한다. 난자가 무려 10개가 생겼다며 좋아한다. 순간 포도송이를 닮은 개구리 알이 떠올랐다. 수면마취를 하고 수술대에 올라 난자를 채취했다. 실험실의 개구리가 된 기분이 들었다.


10개의 난자는 5개의 수정란이 되었다. 어려울 때마다 꺼내쓰는 드래곤볼이 생긴듯해 든든했다. 앞으로는 이식만 하면 된다는 생각에 소소하게 기뻤고 의사는 뿌듯해했다. 시험관 시술을 위한 준비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신선배아로 하는 첫 번째 시도에서 임신일 수도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유의미한 1차 피검사 결과, 그러나 장담할 수는 없었다. 2차 피검사 결과 수치는 다시 떨어졌고 3차 피검사 결과는 다시 올랐다가 4차 때 조금 또 올랐다가 5차 때 다시 내려갔다. 일주일 내내 팔에서 피를 뽑았다. 주사기 가득 피가 빠져나갈 때면 희망도 빠져나갔다. 결국 자궁외 임신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시험관만 하면 쉽게 될 줄 알았던 1차 시술이 허탈하게 끝이 났다. 드래곤볼을 잊고 1년을 바쁘게 지냈다. 주변에서는 끊임없이 아기 소식을 물어왔지만 병원에 다시 갈 생각이 들지 않았다. 동결된 배아의 보관 기간이 만료되기 직전에야 병원을 다시 찾아갔다. 5개의 드래곤볼 중 3개를 차례로 하나씩 몸에 넣었고 번번이 실패했다. 애매한 기대조차 하지 못하게 이식 후 아예 착상이 되지 않았다. 점점 임신이 어려워지는 것일까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드래곤볼을 다 쓰면 더 이상은 임신 시도를 하지 않을 거라고 다짐했다. 남편에게도 선포했다. 그래서 마지막일지도 모를 두 개의 드래곤볼은 꽤 오랜 시간 더 방치되어 있었다. 동결 기간을 1년 더 연장하고 마흔을 앞둔 겨울 다시 병원을 찾았다. 의사 선생님 앞에 놓인 내 파일은 그동안의 시간과 노력을 보여주는 듯 두꺼웠다. 이리도 안 되는 것에 이렇게 열정적으로 노력하고 있구나 나는. 씁쓸한 생각에 입안이 써진다. '어떻게 도와 드리면 될까요?' 말하는 의사에게 쓴 미소를 흘렸다. '선생님, 이제 저는 그만하렵니다. 이번이 정말 마지막이에요.' 속으로 말하며 "이번에는 두 개를 한 번에 넣으려고요."라고 입 밖으로 내뱉었다. 의사는 내 속은 알지도 못한 채 환하게 웃는다. "그래요, 좋아요!"


크녹산 주사를 배에 찌르는 것은 여전히 고통스럽다. 그럼에도 달라진 것은 '아이만 생긴다면 임신이 유지만 된다면 이것쯤은 별 것 아니다'라는 생각을 가끔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피검사 결과 호르몬 수치가 높고 임신이 확실시되었다. 하지만 남편을 제외하고는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언제 또 어떻게 달라질지 두려움이 앞섰던 까닭이다. 아기집을 볼 때까지, 아기의 심장 소리를 들을 때까지 안심할 수 없었다. 아기집 2개를 확인하고 쿵쾅거리는 두 개의 심장 소리를 들었다. 쌍둥이였다.

'하늘이 나를 버리지 않았구나, 피폐해진 내게 선물을 줬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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